16화. 새로운 지옥
고양이 여인숙
16화. 새로운 지옥
1992년 8월 28일.
뉴욕의 현관이라 불리우는 존 F. 케네디 공항에 내렸을 때는 어느새 팔월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뉴욕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시기였고 거침없는 더위로 숨이 턱하고 막
혀왔다. 개찰구를 비틀거리며 빠져나올 때 저쪽에서 미스터 이건석이라는 피켓이 흔들거
리며 주인을 찾고 있었다. 마중 나온 사람들은 체크 무늬의 남방에 빛이 바랜 청바지를
입은 몇 명의 대학생들이었다.
명문의 의과대생들 답게 그들은 한결같이 두터운 안경을 끼고 있었고 반갑게 활짝 웃으
며 내게 악수를 청해왔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도 수시로 회화 쪽으로 부단히
노력해 왔기에 난 그들과의 의사 소통에 조금도 피로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전 랜돌프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전 단테스라고 합니다.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죠.]
그들과 악수를 나누면서도 오직 은주에 대한 잡다한 상념으로 가슴이 타는 듯했다.
우리가 탄 스테이션 웨건은 어느새 공항을 벗어나 맨해턴 브리지를 지나서 프랭클린 루즈
벨트 해안 고속도로로 접어들고 있었다.
웨건 안에는 간이 탁자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나마 지성미와 선정미가 조화를 이루는 제니
퍼란 여학생이 커피를 따라주었다. 그 커피를 받아들고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멀리
허드슨 강으로부터 일몰하는 석양은 바로 몇 주 전에 은주와 함께 맞았던 서해안의 그 석
양과 흡사하지 않는가.
이유야 어찌되었던 S의 말처럼 지난 3년간 난 미쳤었던 게 분명했고 이제야 겨우 정신
을 차린 난 앞뒤 가릴 것 없이 은주가 입원했다는 코넬 의과대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것
이다. 내가 부재했던 3년이 채 못되는 세월동안 은주 혼자서 당했을 그 긴 적막과 고독
을 생각하자니 서러움과 아픔이 밀물처럼 밀려와서 저절로 내눈을 감게 만들었다. 창을 통
해 몰려 들어오는 서늘한 저녁 바람에 겨우 아픔을 감출 수가 있었다.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
내가 눈을 떴을 때 팀의 리더격으로 보이는 콧수염이 크락크 케이블을 닮은 그러나 몸매
는 죤 굿맨에 가까운 랜돌프란 남자가 말을 한다.
[지난 2년간 수차례 연락을 드렸지만 친구되는 분으로부터 갑작스런 건강 악화로 갈 수 없
는 상태라는 보고만을 받아왔습니다. 저희들은 사실 놀랐습니다 . 3년이 다 되어서 이
선생님께서 뜻하지 않게 전화를 해오셨고 또한 마침 그때 .]
[그때 뭔가요?]
내가 남자를 우울한 눈으로 바라봤다. 남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재빨리 말했다.
[그때 성은주씨가 코마 상태에서 깨어났습니다 .]
난 멍한 눈으로 코마라는 익숙한 단어의 뜻을 받아들이기 위해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랜
돌프가 그 커다란 눈을 껌벅이며 말을 잇는다.
[아시다시피 2년전 성은주씨는 심장 수술 도중에 코마 상태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 이유
는 차츰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그래서 .]
[그래서 뭔가요? 코마 상태는 또 뭐고, 그래서 산소 호흡기라도 뗐다는 건가요? 그런가
요?]
나의 입술이 바짝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건 부차적인 문제였습니다 . 당장 급한 문제는 .]
남자가 나의 초조한 표정을 슬쩍 슬쩍 살피며 애간장을 태운다.
[문제는 이 선생님께서 전화를 해오신, 그러니까 8월 24일 새벽에 코마 상태에서 깨어난
성은주씨가 갑자기 무지막지한 .]
[ 스튜핏 앤 러프 .]
그 상황에서 내가 해석해낸 단어들의 나열은 뒷통수를 맞은 듯한 지리한 긴장감으로 다가
왔다.
[2년 10개월 전, 성은주씨의 심장 이식 수술을 앞두고 저희 수술팀들은 조직 검사를 실시
했습니다 . 그리고 검사 도중 저희들은 놀라운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 효소
면역법(ELISA)을 비롯한 웨스턴 블럿법, 면역형광법 이 세 가지 테스트에서 한결같이
성은주씨의 심장 조직에서 너무도 우수한 고도의 면역체가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순간 나의 신경이 곤두섰다.
[면역체라뇨?]
[아직 지구상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안티 바이러스 계열의 정교한 면역세포였는데 어떠
한 치명적인 상처도 쉽게 치유시켜버렸습니다.]
그때 내게 커피를 따라주었던 제니퍼가 끼어 들었다.
[그것은 세포조직이라기 보다는 빛의 조립자에 가까웠어요 . 지금까지 인체의 면역기구
중 가장 우수한 체계라곤 T세포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게 전부였죠 . 성은주씨의 심장에
서 뿜어나오는 고단위 빛들은 상한 조직을 덮으면서 전혀 새로운 조직을 생성해내는 일종
의 리사이클 면역세포였죠 .]
난 어처구니가 없어서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4개의 웅장한 빌딩으로 이루어진 UN본부가 마침 떨어지는 태양의 역광을 받아서 불기둥
처
럼 활활 타고 있었다.
특히 4개의 빌딩 중에서 가장 높은 39층의 168미터의 빌딩에 비친 석양은 압권이었다. 버
몬트산 대리석 2,000톤과 유리 5,400 장의 알루미늄 패널로 이루어졌다는 이 놀라운 건축
물이 한순간 너무도 한심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너무 깊은 흑암의 골짜기를 헤쳐나왔
기 때문인가?
마치 원탁의 중요한 회의를 하듯이 학생들은 볼펜을 만지작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기에 바
빴다.
[그래서 수술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그 긴 침묵을 깨트리고 내가 말했다. 랜돌프란 남자가 괴로운 듯이 변명을 늘어놓는다.
[솔직히 처음엔 수술보다도 그 면역 세포를 연구하는 데 모든 촛점이 맞추어졌습니다 .
하지만 곧 저희 팀들은 잃어버렸던 양심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
[대체 수술을 했다는 겁니까?!! 뭡니까?!!]
[은주씨의 심장이 갈수록 악화가 되어서 .]
[흥, 그래서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을테니까 울며 겨자 먹기 식이었단 말이죠.]
그때 침묵하던 마이클이란 흑인 녀석이 랩 비트의 빠른 발음으로 끼어든다.
[생각해보십시요 . 지금 이 시간에도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면역체계의 파괴로
인한 질병으로 수도 없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암을 정복하기도 전에 빌어먹을 에이즈가
날뛰고 속수무책의 인간들은 그저 멍하니 앉아서 당해야만 할 판국입니다. 하지만 한 인
간의 심장 세포에서 공포의 에이즈 주바이러스인 <HTLV "> 정도는 어린애 장난으로 녹
여
버리는 초강력 항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단 말입니다!!]
내가 분노하듯이 쏘아부친다.
[난 그따위 박애론이나 토론하자고 온 게 아니요!! 만일 은주를 실험용 원숭이로 썼다는
조그마한 증거만 있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당신들을 고발하겠소!!]
나의 예상밖의 반응에 학생들이 주춤하는 것 같았다.
[흥 성은주씨가 인간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나마 고소 따위가 통하겠죠 .]
내가 쳐다본 쪽엔 제니퍼란 여자가 날 비웃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학생들이 난감한 표
정으로 그녀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기에 바빴다.
[이런 말씀까진 드리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순간 공간 이동까지 한다는 사실입니다.]
순간 내 가슴이 사정없이 뛰고 있었다.
[순간 공간 이동 .]
난 어안이 벙벙해 여자를 노려보았다. 곧이어 랜돌프란 남자가 조심스레 말을 잇는다.
[대학 내에 그런 이상한 소문이 나돌 때는 단순한 가쉽거리로 치부했습니다 . 그런데 하
룻 밤에 다섯 개의 혈액원에 배치되어 있는 피가 모조리 사라지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 그
리고 한결같이 성은주씨를 봤다는 목격자들이 속출했습니다 .]
나의 이마에서 땀이 베어나왔다.
[저희 대학은 철저히 이 사건을 비밀에 붙였고 외부 언론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무척 조
심하였습니다 .]
[그럼 은주가 확실했나요 ?]
내가 힘없이 물었다.
[안타깝게도 저희들은 성은주씨를 정상적인 인간이 아님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콧털의 그 단언적인 말과 함께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뉴욕행 KAL 안에서 구
름을 내려다보며 내가 얼마나 간절히 빌었는지 누구도 모를 것이다 .
지난 3년간 난 단순히 미쳤었던 게고 고양이 여인숙에서 보냈던 그 지리한 기억들이 여름
날 돗자리 위에서 꾸었던 단순한 악몽 정도였기를 얼마나 소원했는지 .
[일종의 카이오 현상의 총체적 집결이 바로 성은주씬데 성은주씨 자신도 혼동과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성은주씨에게 고밀도 최면 테스트를 실
시했습니다.]
나의 떨리는 손이 다시 커피잔을 집어들자 커피잔이 달그락거리며 소리를 낸다.
[예일 대 공학팀과 15년에 걸쳐 추진해온 프로젝트였는데 은주씨가 그 첫번째 사용자가
된 것이죠 .]
놈들 골고루 이용해 먹었구나라고 말하려다가 내가 억지로 참는다. 콧털이 계속 상기된
표정으로 말한다.
[성은주씨의 기억과 내재된 악몽들을 컴퓨터의 동화상으로 옮기는 작업이었습니다 .]
[그래서 그래서 그 테스튼 어떻게 됐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벽한 실패였습니다 . 테스트 도중에 성은주씨의 심장은 극도로 불
안정한 상태로 떨어졌고 마침내 당장이라도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으로까지 몰고
갔습니다.]
내가 천천히 남자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수술 도중 은주는 코마 상태로 빠졌겠군요 .]
차 안의 학생들이 아무 말이 없이 침묵하고 있었다.
이미 어두워진 고속도로 위를 차는 통과하고 있었다. 멀리 퀸즈보로 다리를 지나가는 차
들의 행렬이 언제나 영화에서 보아오던 그 아련한 미국의 향수로 다가오고 있었다. 난 가
슴이 아프지만 결국 물어야 할 것은 물어야만 했다.
[그 최면 테스트 도중에 뭔가가 잡혔겠죠 .]
순간 학생들이 섬찟한 표정을 지으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선생님과 끝없이 연락을 하려고 했던 겁니다.]
마이크라는 흑인이 여전히 재빨리 끼어든다. 내가 그 흑인 학생을 올려다 볼 때 곁의 제
니퍼라는 여자가 바짝 턱을 당겨 내 곁으로 다가온다.
[그 동화상으로 옮겨지는 작업 가운데서 그래픽으로 표현되는 것들이 한결같이 선생님에
관한 것들 뿐이었어요 .]
[나에 관한 것들 ?]
[보실래요?]
학생들은 단도직입적이었고 동시에 나의 입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 가슴 깊은
곳에서 북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러나 마침내 내 고개는 아래로 끄덕이고 있었다. 동시에 학생들의 손은 무슨 첩보 영화
에서나 볼 수 있는 것처럼 재빨리 움직여졌다.
테이블이 밀려져 나가고 탁자의 정면에 놓여 있던 간이 칸막이가 쭉 당겨지면서 아래로
털컹 R자로 꺽였다. 그리고 조그마한 14인치 모니터가 올려지더니만 비디오 트랜스퍼와
선을 연결되고 있었다.
학생들이 철컥하며 보턴을 눌렀다.
화면은 심한 잔상으로 알아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 화면을 바라보는 나의 얼굴에는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어가고 있었다. 랜돌프가 안경에 어른거리는 잔상을 내 앞으로 가져오
며 그가 볼펜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여길 자세히 보시면 수많은 잔상 속에서도 하나의 일정한 형상이 잡힙니다.]
정말 랜돌프의 말대로 사람의 형상을 한 물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카메라는 마치 핸드 헬드 기법으로 촬영하는 듯이 어둑한 곳에 숨어서 그 흔들
리는 잔상을 잠시라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 잔상이 정면을 바라볼 즈음에 랜돌프가 화면 정지 보턴을 누른다. 그리고 마우스의 보
턴을 딸깍이자 그 잔상의 얼굴 부분 위로 모양의 클릭이 생긴다. 랜돌프는 그 모양을
유연하게 움직여 사각형으로 잘라내고 있었다.
곧이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100% 150% 200% 250% 400% 600% .
마침내 익스트림리 줌 업이라는 표시가 생겨나면서 14인치의 화면 가득히 그 잔상의 얼굴
이 다 차지하고 있었다.
[다시 이쪽의 사각형 내부를 잘봐주십시요.]
랜돌프가 또 다른 윈도우 상의 그래픽 프로그램을 부르는 것 같았다. 곧이어 화일을 찾는
키보드 소리가 요란하게 이어지고 마침내 그 잔상의 왼쪽 상단으로 조그만 화면 박스가
하나 더 생겨난다. 그 화면 속엔 내가 환하게 웃고 있는 아주 선명한 사진 한 장이 담
겨져 나온다.
[은주씨의 패스포트 속에 든 선생님의 사진을 확대한 것입니다.]
그렇다, 저 사진은 결혼 후 우리가 경주의 어느 식당에서 외국인에게 카메라 셔트를 눌러
줄 것을 부탁하며 찍었던 사진이 아니었던가?
이윽고 그 사진과 그 잔상의 확대된 그림이 합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난 이미 알 수 있었
다. 그 잔상 속의 나는 고양이 여인숙의 성황당 나무 아래를 마구 헤메이며 허덕이고 있
을 때의 모습이라는 것을 .
[더 놀라운 것은 여길 보십시요 .]
화면은 노이즈를 일으키며 이 재빨리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화면이
멈추면서 난 거의 숨이 멈출 것 같은 충격을 참아야만 했다.
그곳은 누군가가 수천개의 혈액 봉지를 어깨에 매고 포구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 그
리고는 정박해 놓은 선박의 나무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 장면은 너무도 아찔해서 구토가 날 정도였다. 학생들이 나의 표정을 읽고는 재빨리 말
한다.
[저 배를 아십니까?!!]
난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얼어붙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이 화면은 은주의 시선
으로 잡히는 것이고 그렇다면 은주는 왜 저 많은 혈액을 훔쳐서 악마들이 낮잠을 자는 배
로 운반하고 있단 말인가?
다시 화면은 힘겹게 배의 갑판 위의 두껑을 열고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고 있었는데 안은
어두워서 뭐가 뭔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러나 가끔씩 희끗이며 날아다니는 혈액의 빈 봉지들로 보아서는 은주는 이 코넬 메디
컬 센터에서 혈액을 훔쳐 그들에게 식량으로 공급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왜, 왜 은주가 그런 짓을 해야만 했을까?
멀리 웰페어 섬으로부터 진득한 백사장의 피냄새가 몰려오는 듯했다. 난 우리가 탄 차가
저멀리 보이는 코넬 의과대학의 정문으로 채 다가가기도 전에 그 해답을 알 수가 있었다
.
은주와 고양이 괴물이 피의 혈전을 치루던 그날 밤 성황당 아래에서 괴물이 내뱉던 그
말이 번쩍하며 귓전을 울렸기 때문이다.
[ 어젯밤 니 미친 행동 때문에 모두들 미쳐서 날뛴다구!! 니가 가져다주는 피 몇 봉지
로 얼마나 저들을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하니?!! ]
은주는 날 지키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들에게 피를 공급해주는 댓가로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조건을 내걸었던 게 분명했다.
난 가슴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고 내게 주어지는 이 새로운 지옥을 온몸으
로 맞이해야만 했다 .
차가 천천히 웅장한 대리석으로 깍아놓은 코넬 의과 대학 정문을 통과할 때 랜돌프가 갑
자기 돌변하듯이 다그친다.
[말해주십시요!! 지난 10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왜 갑자기 그녀가 상상도 못
할 살인마가 된 겁니까?!! 말해주십시요!!]
난 대답 대신 우리가 탄 스테이션 웨건을 가볍게 추월하며 어두운 캠퍼스 안으로 급히 사
라져가는 군용 트럭 한 대만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다리는 사정없이 떨려오고 내 손바닥 안엔 땀이 흥건히 고여나왔다. 지금부터의 세상은
어쩌면 고양이 여인숙보다 더 끔찍한 지옥이 아닐까라는 막연한 공포감이 으스러지는 교
정의 신록과 함께 몰려왔다.
16화. 새로운 지옥
1992년 8월 28일.
뉴욕의 현관이라 불리우는 존 F. 케네디 공항에 내렸을 때는 어느새 팔월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뉴욕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시기였고 거침없는 더위로 숨이 턱하고 막
혀왔다. 개찰구를 비틀거리며 빠져나올 때 저쪽에서 미스터 이건석이라는 피켓이 흔들거
리며 주인을 찾고 있었다. 마중 나온 사람들은 체크 무늬의 남방에 빛이 바랜 청바지를
입은 몇 명의 대학생들이었다.
명문의 의과대생들 답게 그들은 한결같이 두터운 안경을 끼고 있었고 반갑게 활짝 웃으
며 내게 악수를 청해왔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도 수시로 회화 쪽으로 부단히
노력해 왔기에 난 그들과의 의사 소통에 조금도 피로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전 랜돌프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전 단테스라고 합니다.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죠.]
그들과 악수를 나누면서도 오직 은주에 대한 잡다한 상념으로 가슴이 타는 듯했다.
우리가 탄 스테이션 웨건은 어느새 공항을 벗어나 맨해턴 브리지를 지나서 프랭클린 루즈
벨트 해안 고속도로로 접어들고 있었다.
웨건 안에는 간이 탁자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나마 지성미와 선정미가 조화를 이루는 제니
퍼란 여학생이 커피를 따라주었다. 그 커피를 받아들고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멀리
허드슨 강으로부터 일몰하는 석양은 바로 몇 주 전에 은주와 함께 맞았던 서해안의 그 석
양과 흡사하지 않는가.
이유야 어찌되었던 S의 말처럼 지난 3년간 난 미쳤었던 게 분명했고 이제야 겨우 정신
을 차린 난 앞뒤 가릴 것 없이 은주가 입원했다는 코넬 의과대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것
이다. 내가 부재했던 3년이 채 못되는 세월동안 은주 혼자서 당했을 그 긴 적막과 고독
을 생각하자니 서러움과 아픔이 밀물처럼 밀려와서 저절로 내눈을 감게 만들었다. 창을 통
해 몰려 들어오는 서늘한 저녁 바람에 겨우 아픔을 감출 수가 있었다.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
내가 눈을 떴을 때 팀의 리더격으로 보이는 콧수염이 크락크 케이블을 닮은 그러나 몸매
는 죤 굿맨에 가까운 랜돌프란 남자가 말을 한다.
[지난 2년간 수차례 연락을 드렸지만 친구되는 분으로부터 갑작스런 건강 악화로 갈 수 없
는 상태라는 보고만을 받아왔습니다. 저희들은 사실 놀랐습니다 . 3년이 다 되어서 이
선생님께서 뜻하지 않게 전화를 해오셨고 또한 마침 그때 .]
[그때 뭔가요?]
내가 남자를 우울한 눈으로 바라봤다. 남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재빨리 말했다.
[그때 성은주씨가 코마 상태에서 깨어났습니다 .]
난 멍한 눈으로 코마라는 익숙한 단어의 뜻을 받아들이기 위해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랜
돌프가 그 커다란 눈을 껌벅이며 말을 잇는다.
[아시다시피 2년전 성은주씨는 심장 수술 도중에 코마 상태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 이유
는 차츰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그래서 .]
[그래서 뭔가요? 코마 상태는 또 뭐고, 그래서 산소 호흡기라도 뗐다는 건가요? 그런가
요?]
나의 입술이 바짝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건 부차적인 문제였습니다 . 당장 급한 문제는 .]
남자가 나의 초조한 표정을 슬쩍 슬쩍 살피며 애간장을 태운다.
[문제는 이 선생님께서 전화를 해오신, 그러니까 8월 24일 새벽에 코마 상태에서 깨어난
성은주씨가 갑자기 무지막지한 .]
[ 스튜핏 앤 러프 .]
그 상황에서 내가 해석해낸 단어들의 나열은 뒷통수를 맞은 듯한 지리한 긴장감으로 다가
왔다.
[2년 10개월 전, 성은주씨의 심장 이식 수술을 앞두고 저희 수술팀들은 조직 검사를 실시
했습니다 . 그리고 검사 도중 저희들은 놀라운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 효소
면역법(ELISA)을 비롯한 웨스턴 블럿법, 면역형광법 이 세 가지 테스트에서 한결같이
성은주씨의 심장 조직에서 너무도 우수한 고도의 면역체가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순간 나의 신경이 곤두섰다.
[면역체라뇨?]
[아직 지구상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안티 바이러스 계열의 정교한 면역세포였는데 어떠
한 치명적인 상처도 쉽게 치유시켜버렸습니다.]
그때 내게 커피를 따라주었던 제니퍼가 끼어 들었다.
[그것은 세포조직이라기 보다는 빛의 조립자에 가까웠어요 . 지금까지 인체의 면역기구
중 가장 우수한 체계라곤 T세포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게 전부였죠 . 성은주씨의 심장에
서 뿜어나오는 고단위 빛들은 상한 조직을 덮으면서 전혀 새로운 조직을 생성해내는 일종
의 리사이클 면역세포였죠 .]
난 어처구니가 없어서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4개의 웅장한 빌딩으로 이루어진 UN본부가 마침 떨어지는 태양의 역광을 받아서 불기둥
처
럼 활활 타고 있었다.
특히 4개의 빌딩 중에서 가장 높은 39층의 168미터의 빌딩에 비친 석양은 압권이었다. 버
몬트산 대리석 2,000톤과 유리 5,400 장의 알루미늄 패널로 이루어졌다는 이 놀라운 건축
물이 한순간 너무도 한심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너무 깊은 흑암의 골짜기를 헤쳐나왔
기 때문인가?
마치 원탁의 중요한 회의를 하듯이 학생들은 볼펜을 만지작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기에 바
빴다.
[그래서 수술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그 긴 침묵을 깨트리고 내가 말했다. 랜돌프란 남자가 괴로운 듯이 변명을 늘어놓는다.
[솔직히 처음엔 수술보다도 그 면역 세포를 연구하는 데 모든 촛점이 맞추어졌습니다 .
하지만 곧 저희 팀들은 잃어버렸던 양심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
[대체 수술을 했다는 겁니까?!! 뭡니까?!!]
[은주씨의 심장이 갈수록 악화가 되어서 .]
[흥, 그래서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을테니까 울며 겨자 먹기 식이었단 말이죠.]
그때 침묵하던 마이클이란 흑인 녀석이 랩 비트의 빠른 발음으로 끼어든다.
[생각해보십시요 . 지금 이 시간에도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면역체계의 파괴로
인한 질병으로 수도 없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암을 정복하기도 전에 빌어먹을 에이즈가
날뛰고 속수무책의 인간들은 그저 멍하니 앉아서 당해야만 할 판국입니다. 하지만 한 인
간의 심장 세포에서 공포의 에이즈 주바이러스인 <HTLV "> 정도는 어린애 장난으로 녹
여
버리는 초강력 항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단 말입니다!!]
내가 분노하듯이 쏘아부친다.
[난 그따위 박애론이나 토론하자고 온 게 아니요!! 만일 은주를 실험용 원숭이로 썼다는
조그마한 증거만 있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당신들을 고발하겠소!!]
나의 예상밖의 반응에 학생들이 주춤하는 것 같았다.
[흥 성은주씨가 인간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나마 고소 따위가 통하겠죠 .]
내가 쳐다본 쪽엔 제니퍼란 여자가 날 비웃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학생들이 난감한 표
정으로 그녀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기에 바빴다.
[이런 말씀까진 드리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순간 공간 이동까지 한다는 사실입니다.]
순간 내 가슴이 사정없이 뛰고 있었다.
[순간 공간 이동 .]
난 어안이 벙벙해 여자를 노려보았다. 곧이어 랜돌프란 남자가 조심스레 말을 잇는다.
[대학 내에 그런 이상한 소문이 나돌 때는 단순한 가쉽거리로 치부했습니다 . 그런데 하
룻 밤에 다섯 개의 혈액원에 배치되어 있는 피가 모조리 사라지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 그
리고 한결같이 성은주씨를 봤다는 목격자들이 속출했습니다 .]
나의 이마에서 땀이 베어나왔다.
[저희 대학은 철저히 이 사건을 비밀에 붙였고 외부 언론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무척 조
심하였습니다 .]
[그럼 은주가 확실했나요 ?]
내가 힘없이 물었다.
[안타깝게도 저희들은 성은주씨를 정상적인 인간이 아님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콧털의 그 단언적인 말과 함께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뉴욕행 KAL 안에서 구
름을 내려다보며 내가 얼마나 간절히 빌었는지 누구도 모를 것이다 .
지난 3년간 난 단순히 미쳤었던 게고 고양이 여인숙에서 보냈던 그 지리한 기억들이 여름
날 돗자리 위에서 꾸었던 단순한 악몽 정도였기를 얼마나 소원했는지 .
[일종의 카이오 현상의 총체적 집결이 바로 성은주씬데 성은주씨 자신도 혼동과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성은주씨에게 고밀도 최면 테스트를 실
시했습니다.]
나의 떨리는 손이 다시 커피잔을 집어들자 커피잔이 달그락거리며 소리를 낸다.
[예일 대 공학팀과 15년에 걸쳐 추진해온 프로젝트였는데 은주씨가 그 첫번째 사용자가
된 것이죠 .]
놈들 골고루 이용해 먹었구나라고 말하려다가 내가 억지로 참는다. 콧털이 계속 상기된
표정으로 말한다.
[성은주씨의 기억과 내재된 악몽들을 컴퓨터의 동화상으로 옮기는 작업이었습니다 .]
[그래서 그래서 그 테스튼 어떻게 됐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벽한 실패였습니다 . 테스트 도중에 성은주씨의 심장은 극도로 불
안정한 상태로 떨어졌고 마침내 당장이라도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으로까지 몰고
갔습니다.]
내가 천천히 남자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수술 도중 은주는 코마 상태로 빠졌겠군요 .]
차 안의 학생들이 아무 말이 없이 침묵하고 있었다.
이미 어두워진 고속도로 위를 차는 통과하고 있었다. 멀리 퀸즈보로 다리를 지나가는 차
들의 행렬이 언제나 영화에서 보아오던 그 아련한 미국의 향수로 다가오고 있었다. 난 가
슴이 아프지만 결국 물어야 할 것은 물어야만 했다.
[그 최면 테스트 도중에 뭔가가 잡혔겠죠 .]
순간 학생들이 섬찟한 표정을 지으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선생님과 끝없이 연락을 하려고 했던 겁니다.]
마이크라는 흑인이 여전히 재빨리 끼어든다. 내가 그 흑인 학생을 올려다 볼 때 곁의 제
니퍼라는 여자가 바짝 턱을 당겨 내 곁으로 다가온다.
[그 동화상으로 옮겨지는 작업 가운데서 그래픽으로 표현되는 것들이 한결같이 선생님에
관한 것들 뿐이었어요 .]
[나에 관한 것들 ?]
[보실래요?]
학생들은 단도직입적이었고 동시에 나의 입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 가슴 깊은
곳에서 북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러나 마침내 내 고개는 아래로 끄덕이고 있었다. 동시에 학생들의 손은 무슨 첩보 영화
에서나 볼 수 있는 것처럼 재빨리 움직여졌다.
테이블이 밀려져 나가고 탁자의 정면에 놓여 있던 간이 칸막이가 쭉 당겨지면서 아래로
털컹 R자로 꺽였다. 그리고 조그마한 14인치 모니터가 올려지더니만 비디오 트랜스퍼와
선을 연결되고 있었다.
학생들이 철컥하며 보턴을 눌렀다.
화면은 심한 잔상으로 알아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 화면을 바라보는 나의 얼굴에는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어가고 있었다. 랜돌프가 안경에 어른거리는 잔상을 내 앞으로 가져오
며 그가 볼펜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여길 자세히 보시면 수많은 잔상 속에서도 하나의 일정한 형상이 잡힙니다.]
정말 랜돌프의 말대로 사람의 형상을 한 물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카메라는 마치 핸드 헬드 기법으로 촬영하는 듯이 어둑한 곳에 숨어서 그 흔들
리는 잔상을 잠시라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 잔상이 정면을 바라볼 즈음에 랜돌프가 화면 정지 보턴을 누른다. 그리고 마우스의 보
턴을 딸깍이자 그 잔상의 얼굴 부분 위로 모양의 클릭이 생긴다. 랜돌프는 그 모양을
유연하게 움직여 사각형으로 잘라내고 있었다.
곧이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100% 150% 200% 250% 400% 600% .
마침내 익스트림리 줌 업이라는 표시가 생겨나면서 14인치의 화면 가득히 그 잔상의 얼굴
이 다 차지하고 있었다.
[다시 이쪽의 사각형 내부를 잘봐주십시요.]
랜돌프가 또 다른 윈도우 상의 그래픽 프로그램을 부르는 것 같았다. 곧이어 화일을 찾는
키보드 소리가 요란하게 이어지고 마침내 그 잔상의 왼쪽 상단으로 조그만 화면 박스가
하나 더 생겨난다. 그 화면 속엔 내가 환하게 웃고 있는 아주 선명한 사진 한 장이 담
겨져 나온다.
[은주씨의 패스포트 속에 든 선생님의 사진을 확대한 것입니다.]
그렇다, 저 사진은 결혼 후 우리가 경주의 어느 식당에서 외국인에게 카메라 셔트를 눌러
줄 것을 부탁하며 찍었던 사진이 아니었던가?
이윽고 그 사진과 그 잔상의 확대된 그림이 합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난 이미 알 수 있었
다. 그 잔상 속의 나는 고양이 여인숙의 성황당 나무 아래를 마구 헤메이며 허덕이고 있
을 때의 모습이라는 것을 .
[더 놀라운 것은 여길 보십시요 .]
화면은 노이즈를 일으키며 이 재빨리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화면이
멈추면서 난 거의 숨이 멈출 것 같은 충격을 참아야만 했다.
그곳은 누군가가 수천개의 혈액 봉지를 어깨에 매고 포구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 그
리고는 정박해 놓은 선박의 나무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 장면은 너무도 아찔해서 구토가 날 정도였다. 학생들이 나의 표정을 읽고는 재빨리 말
한다.
[저 배를 아십니까?!!]
난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얼어붙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이 화면은 은주의 시선
으로 잡히는 것이고 그렇다면 은주는 왜 저 많은 혈액을 훔쳐서 악마들이 낮잠을 자는 배
로 운반하고 있단 말인가?
다시 화면은 힘겹게 배의 갑판 위의 두껑을 열고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고 있었는데 안은
어두워서 뭐가 뭔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러나 가끔씩 희끗이며 날아다니는 혈액의 빈 봉지들로 보아서는 은주는 이 코넬 메디
컬 센터에서 혈액을 훔쳐 그들에게 식량으로 공급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왜, 왜 은주가 그런 짓을 해야만 했을까?
멀리 웰페어 섬으로부터 진득한 백사장의 피냄새가 몰려오는 듯했다. 난 우리가 탄 차가
저멀리 보이는 코넬 의과대학의 정문으로 채 다가가기도 전에 그 해답을 알 수가 있었다
.
은주와 고양이 괴물이 피의 혈전을 치루던 그날 밤 성황당 아래에서 괴물이 내뱉던 그
말이 번쩍하며 귓전을 울렸기 때문이다.
[ 어젯밤 니 미친 행동 때문에 모두들 미쳐서 날뛴다구!! 니가 가져다주는 피 몇 봉지
로 얼마나 저들을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하니?!! ]
은주는 날 지키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들에게 피를 공급해주는 댓가로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조건을 내걸었던 게 분명했다.
난 가슴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고 내게 주어지는 이 새로운 지옥을 온몸으
로 맞이해야만 했다 .
차가 천천히 웅장한 대리석으로 깍아놓은 코넬 의과 대학 정문을 통과할 때 랜돌프가 갑
자기 돌변하듯이 다그친다.
[말해주십시요!! 지난 10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왜 갑자기 그녀가 상상도 못
할 살인마가 된 겁니까?!! 말해주십시요!!]
난 대답 대신 우리가 탄 스테이션 웨건을 가볍게 추월하며 어두운 캠퍼스 안으로 급히 사
라져가는 군용 트럭 한 대만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다리는 사정없이 떨려오고 내 손바닥 안엔 땀이 흥건히 고여나왔다. 지금부터의 세상은
어쩌면 고양이 여인숙보다 더 끔찍한 지옥이 아닐까라는 막연한 공포감이 으스러지는 교
정의 신록과 함께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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