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위험한 계약
고양이 여인숙
21화. 위험한 계약
* C.C.C : 대학생 선교회
[오, 당신이 그 유명한 이건석씨군요 . 항상 만나고 싶었어요 . 전 케시 베이커라고 해요
.]
내가 여자가 내미는 손을 외면한 채 천천히 탑 차 안을 살펴보았다. 탑 차 안으로 내가
들어섰을 때 맨 처음 본 것은 여덟 대의 모니터였다. 탑 차 안의 장비들은 중간치의 컴
퓨터 터미널과 블랙 박스 두 대 그리고 실험에 필요한 송수신 장비들 . 코넬 대의 지하
에서 본 것들을 축소해놓은 듯했다.
이미 혜수는 그 장비의 현람함에 흠뻑 취해있었고 이미 그녀의 마음 한 켠에는 이 장비
들과 선진의 이방인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복잡한 문제들을 모조리 해결해줄 것이라
는 막연한 희망 쪽으로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쾅하고 내 뒤의 탑차 문
이 닫히고 만다.
[친구 분이 몹시 아픈가보죠?]
미국인 남자가 특히 식크라는 발음에 액센트를 넣으며 비아냥거린다. 혜수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문제의 해결이 기억과 관계되어 있다는 건 저희들도 조금 압니다만 어때요? 테잎
을 보고싶나요?]
[자기 체면 동화상 프로그램 말인가요?]
남자가 여전히 차가운 웃음을 보이며 예의 그 캐시라는 여자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
의 손이 빨라지고 두번 째 모니터와 다섯번 째 모니터에 치직거리며 잔류 화상이 떠오른
다.
[지난번 이건석씨가 본 것과는 화질이 많이 향상된 겁니다.]
놈의 대화술은 아주 교묘했고 혜수가 나를 힐끗 쳐다본다. 마치 당신도 다 본 걸 가지고
뭘 그러냐는 눈치였다. 테잎은 계속 돌아가고 아, 내가 성황당의 나무 위에서 졸고 있는
모습이었다.
[세상에 맞아요 . 저 나무 .]
혜수가 넋이 나간 듯이 중얼거린다.
[아무 말도 하지 마! 혜수.]
내가 혜수에게 쏘아부치자 스티븐이 나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찬다. 화
면은 계속해서 어른거리며 성황당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분명이 은주의 시선이리라 .
그리고 잠시 후 내가 나무 위를 바라보며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거대한 인육의 덩어리
가 내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급히 나무에서 굴러 떨어지듯이 내려
가고 있었고 어느새 내 앞을 가로 막는 괴물로 화면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스티븐이
깨끗하다고 한 말은 말짱 거짓말이었고 화면은 치직거리는 노이즈로 인해 장면의 상황들
이 쉽게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난 알 수 있었다. 놈이 내 목을 내리치려고 할 때 재빨리 움직이는 화면의 상황
을 . 마치 스테디 캠을 사용한 듯이 카메라는 쉬이익 성황당 나무 아래로 날아간다. 그리
고 괴물이 나의 목을 날리려고 할 때 누군가가 괴물의 팔을 휙하고 잡는다.
어느 순간 화면이 멈추었다.
스티븐이 포즈 버튼을 눌렀기 때문이다.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
가는 내가 가련해서 인지 어느 순간 그가 일말의 동정심을 베푼 것이다.
[더 볼 필요가 있을까?]
[더 보여 주세요!!]
혜수는 광적이었다. 스티븐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측은했다.
[제발 제가 나오는 장면도 있겠죠?!! 그 여자의 시선으로 잡힌 거라면 그 버스 속에 그
여자도 있었단 말예요!!]
[헤이, 헤이 물론이야 . 얼마든지 보여주지 . 전집으로 준비해 놓았다구 . 시간은 얼마
든지 있다구. 우선 커피라도 한 잔 하지 .]
놈은 마치 강심술을 하는 도사와도 같았다. 완급을 이용한 사람 다루는 솜씨는 분명 놈이
심리학에서부터 군사 전략 지식까지 완벽하게 갖춘 국방부의 꽤 유능한 인재라는 것을 단
번에 알 게 했다. 이미 그의 포로가 된 혜수는 착한 소녀처럼 얌전히 고개를 떨구고 있
었다.
주한 미군 용산 기지에서 지원나온 헬기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백사장 탐색 임시 캠
프장은 백사장의 해변가 소나무 숲 아래로 결정되었다.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눈발에 얼
어 붙는 지독한 억세풀들이 바람에 광란하고 있었다. 캠프장 주변으로 쳐놓은 제 1 막사
안은 간이 난로가 놓여져 있었지만 가만이 있어도 강추위에 턱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
했다.
난 일찍부터 침낭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머리 끝까지 지퍼를 올린 채 잠을 청하고 있었
다. 펄럭이는 텐트 소리에 온통 신경이 갈 뿐 잠은 쉬이 오질 않았다. 이들은 대체 또
무슨 끔찍한 참극을 불러 일으킬 참인가? 가슴이 마구 조여왔다.
그때였다. 앰브란스 소리가 요란하게 캠프 쪽을 향하여 달려오고 있었다. 제 3 막사 쪽으
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허리 업!! 허리 업!! 컴 온!! 비 캐어펄!!
그리고 이어서 혜수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조금만 더 참아!! 신혜야 이들이 널 고쳐줄 거야 .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밖은 저녁부터 폭풍의 형태로 변한 눈보라로 인해 하얗게 뒤덮혀 가고 있었다. 혜수의 친
구를 실으러 갔던 앰브란스가 아직도 붉은 전조등을 사방에 흩뿌리며 앵앵거리고 있었다.
내가 눈발을 헤치고 천천히 막사 쪽으로 걸어갔다. 바람에 발광하는 막사의 껍질 위로 막
사 내의 사람들의 동작들이 인형극의 잔상처럼 어른거리고 있었다. 막사를 지키던 미군
이 문을 비켜준다. 이따위 보초조차 자기네 족속들을 세운 걸 보면 이들의 근본 의식 속
에 아직도 우리 민족을 여전히 식민사관에 절은 엽전 정도로 치부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
해주는 것 같았다.
애꿎은 국수주의를 달래며 내가 막사 안으로 들어서자 정말 혜수의 친구라는 신혜는 거의
유령의 모습에 가까운 형상을 하고 있었다. 눈을 허옇게 뜬 채 거품을 가득 문 입에는
재갈을 물려 놓았고, 천정을 올려다보는 눈은 측은함 그 자체였다. 한국인 군의관 한
명이 다급하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진정제 투여하고 혈압부터 체크해 .
혈압을 재던 간호병이 다급하게 말한다.
이상합니다 혈압계가 엉망입니다 .
동시에 혜수가 친구의 손을 잡고 울먹인다.
[신혜야 . 신혜야 . 우리 고통은 이제 다 끝났어 .]
스티븐이란 놈이 혜수의 어깨를 껴안으며 뭐라고 다독거린다. 난 얼른 밖으로 나왔다.
눈발이 일제히 드넓은 해변의 표면 위에서 우르르 떠오른다. 그리고 어두운 저쪽으로 황
량한 벌판의 흙먼지처럼 다시금 본향으로 몰려가는 눈의 무리들 .
닥터 지바고의 그 처연한 겨울 벌판도 지금 이 백사장 해변가의 정경보단 덜 을씨년스러우
리라 .
파도가 부숴지고 무너지고 있었다. 소나무 숲이 웅웅 소리를 내며 괴성을 지른다. 분주
한 병사들이 막사 주변을 오가고 있었고 헬기가 뜰 수 없다는 보고를 무전기로 해대는 소
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다시 나의 막사로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저쪽 예의 탑차의 문
이 열리며 불빛이 환하게 새워나왔다. 그 열려진 문을 통해서 캐시란 여자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난 쳐다보기조차 싫었다. 돌아서는 나를 향해 그 여자가 고함을 지른
다.
[이봐요, 커피 한 잔 어때요?]
내가 무시하며 여전히 막사 속으로 기어 들어가려고 할 때 다시 여자가 소리지른다.
[그렇게 비싸게 굴 필욘 없잖아요!!]
그래, 저 여자 말대로 비싸게 굴 필요 없이 이 기회에 은주에 대해서나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급히 돌아서서 뚜벅뚜벅 탑차 쪽으로 걸어간다.
탑차 속은 훨씬 더 따뜻하고 좋았다. 환기통으로 탁한 공기들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간헐
적으로 들린다.
[은주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
난 여자가 따라주는 커피에는 아랑곳 없이 모든 신경이 오직 은주의 근황에만 맞추어져
있었다.
[보세요 . 제 자랑부터 좀 하죠 . 전 제 또래의 여자애들이 한참 아빠 무릎 위에서 아양
을 떨 나이에 하버드 대 물리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했죠 . 그리고 비참하게도 서른의 나
이가 넘도록 사랑이니 뭐니하는 것들은 내가 마시는 커피 한 잔의 가치보다도 더 천하게
여기곤 했죠 . 나사(NASA) 측에서 지원자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도 전 이번 사건을 흔
히
일어나는 우주의 불가사의 어쩌구의 한 단편이라구만 치부했죠 .]
대체 이 여자가 뭐라고 떠들고 있는가? 난 여자가 뱉어내는 현란한 단어들을 조합하고 짜
맞추기에 바쁠 뿐이었다.
[그러면서 성은주씨를 가까이 하게 되고 당신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일종의 무한한 매력
을 느끼게 되었죠 . 제가 이번 선발팀에 왜 자원했는지 아세요 ?]
[그딴 건 제가 알바가 아닙니다. 은주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상태가 어느 정도입니까?]
여자가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힘없이 대꾸한다.
[스티븐이 말한 그대로예요 . 성은주씬 치명적이죠 . 일 주 전 35번째 심장을 복개했을
땐 더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까지 가있더라구요 . 순간 공간 전이 이동도 한계가 있더
군요 .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어요 .]
[세상에 .]
나의 눈이 금새 붉어져왔다.
[우리만 야만인으로 몰아부치지 마세요 . 이젠 자유롭게 해주겠다고 해도 그녀는 이건
석씨의 안전을 믿지 못하더군요 . 아니면 .]
내가 캐시를 바라본다.
[아니면 자신의 몰골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이기 싫어서겠죠.]
거기까지 듣던 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탑차의 문 손잡이를 돌리자 거센 바람이
확하고 나를 덮쳐온다. 어디선가 개짖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여자가 나를 바라보
며 소리쳤다.
[당신을 만나고서야 알게됐어요!! 그녀가 목숨을 걸고 사랑할 만한 사람이란 걸!!]
비틀거리며 해변을 걸어간다. 생각을 않겠다고 무진 다짐을 하며 그렇게 휘청이며 눈발
을 헤치고 걸어간다. 파도가 보고싶었다. 집채처럼 일어나서 일순간에 가루가 되어서 조
각나 나뒹구는 그 파도가 왠일인지 가까이서 보고싶었다. 내가 바닷가로 걸어가자 미군
한 명이 잽싸게 내 뒤를 따른다.
미친 놈들 . 이 나라까지 와서도 주인 행세를 하려들다니 . 하여튼 저들의 인종 우월주
의란 못말리는 중증이란 조소를 보내며 그렇게 바닷가로 향했다.
바다가 다가오자 저만치에서 불빛이 일렁이는 것이 보인다. 그것은 너무도 아름다운 한
편의 그림같은 장면이었다. 미친듯이 일어나는 파도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
그 빈공간을 무아경에 빠진 무희의 춤사위와도 같이 빼곡히 채우는 눈발, 다시 그 속에
서 장작더미가 불에 활활 타고 있고 .
불빛은 현란했고 그 곁에 조용히 앉아 가루가 되는 파도의 과정을 지켜보는 남자의 모습
또한 무척 신선했다. 불 가까이 바짝 다가갔을 때야 예의 그 목사라는 남자임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옆에 우두커니 서있자 남자가 나무토막을 하나를 건네주며 깔고 앉으라
고 한다. 우리 두 사람은 한참 깊어가는 어두운 바다를 향해서 한동안 그렇게 앉아만
있었다.
[인사나 하죠. 전 최익훈 목사라고 합니다.]
[예 . 전 이건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침묵만이 두 사람 사이에 가로 놓인다. 내가 다시 최목사를 바라보았을 때
그의 얼굴과 성애가 탐스럽게 낀 안경 위론 불꽃이 빨간 꽃잎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목사님께서 여긴 .]
[한심하게 보이겠죠? 뭔가 있지 않나하고 졸졸 따라다니는 강아지 같습니까?]
[아뇨, 전 그런 뜻은 하지만 궁금하군요 . 어떻게 저들과 .]
최목사가 졈퍼 속으로 고개를 묻으며 나즈막히 말한다.
[할 린세이 박사라고 아시는지 ?]
[알다마다요 무척 존경하죠.]
[그분 대리로 온 것 뿐입니다. 자신이 오겠다고 고집을 부리더군요 .]
내가 아주 신기한 듯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본다.
[그분과는 어떻게 .]
[전 총신대 76학번입니다 하지만 그때 폭풍처럼 파고 들던 캠퍼스 내의 해방신학에 염증
을 느끼고 곧 미국 달라스 신학대로 건너갔죠 . 그곳에서 그해 C.C.C. 연합 예배의 초
청 강사로 오신 그분과 알게된 거죠 .]
내 눈빛이 반짝인다. 한때 한번이라도 만나보기를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사람의 측근이
라도 만나니 마치 이 최목사가 나의 요즈음 혼동을 다 정리해줄 것 같은 기대가 부푼다
.
[그럼 그분은 어떻게 이 사건을 알게됐죠?]
[유엔 본부 내의 유태인 보수 정권의 한 사람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죠. 물론 유엔 내부에
서 할 박사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다수입니다. 하지만 할 박사가 유엔의 세계
공동 문제안을 처리하는 과정이 세계 단일 정부 추진위>와 연관이 있다고 발표한 다음
부터는 많은 아군들이 적들로 돌변해 갔죠.]
아, 말로만 듣던 그가 정말 유엔 내부에서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자
사뭇 흥미로와졌다. 내가 재빨리 묻는다.
[물론 이번의 제 사건을 알려준 그 유태인은 할 박사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였던 자이겠죠
?]
[당연하죠. 할 박사는 평생을 유태인 선교라는 독특한 사역을 펼쳐왔고 무엇보다 영악한
유태인들의 사고를 전복시키기 위해서는 평범한 성서학으론 한계를 느낀 거죠. 결국
그런 남다른 사고와 영감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방대한 성서학의 새롭고, 아니 새롭지
도 않지만, 혁신적인 장을 꿰뚫게 된 게 아닐까요?]
[그럼 대체 이번 사건과는 무슨 .]
[아시다시피 지금 미국 내부의 각 분야는 실질적인 브레인들이 막후세력으로 장악하고 있
습니다. 그 막후세력이란 아시다시피 유대인들입니다.]
[그게 어제 오늘 일입니까?]
[안타까운 사실은 그들이 하나 둘 세계 통합 추진 단체로 빠져들어 간단 겁니다.]
[그럼 .]
[할 박사가 70년 초반에 발표했던 대유성 지구의 종말>에서 예언했던 것들이 하나 둘 현
실로 맞아 떨어지는 거죠.]
내 입에선 옅은 탄성이 새어나온다. 이 낯선 남자의 입에서 대학시절 내가 한 달 간이나
도서관에 쳐박혀 연구하고 머리를 싸매던 할 린세이의 엄청난 베스트 셀러(그해 뉴욕
타임즈지 선정 넌 픽션 부문 1 위) 대유성 지구의 종말(The Late Great Planet Earth,
There's A New World Coming, and The 1980's)>에 관한 말들이 쏟아져 나오자
기분이 묘해지기 시작했다.
[그럼 이번 제 사건과는 .]
[휴거를 증명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할 박사는 추측하죠.]
[휴거라구요?]
[그분이 83년에 발표했던 휴거(携擧-THE RAPTURE ; THRUTH OR
CONSEQUEN
CES)-주;우리가 알고 있는 어네스토 W. 앵글리의 소설 휴거와는 다른 책임)>는 사실상
미
국 내에 엄청난 파문을 가져왔습니다. 신학 계에서는 세대주의(주;우주의 역사는 7세대로
나뉘어져 있고 각 세대 마다 성령의 활동이 변한다는 사상 . 할 린세이, 빌리 그래함,
세익스피어와 같은 분량의 어휘를 사용한다는 스펄젼, 국내에서는 장두만 박사 등이 따르
는 교리)냐, 계약신학(주 ; 구약의 율법주의적 구원이 현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국
내 대다수의 교회들이 따르는 교리)이냐라는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그분이 고정 초청 강
사로 소속되어 있는 유엔 내부에서는 세계 단일 정부 추진위의 음모가 처음으로 바깥으
로 드러나는 충격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죠. 그 후 할 박사 대 뉴 에이지 단체의 전쟁은
표면화 되기 시작했고 그분은 지금 너무도 힘든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최목사의 안경에 끼인 서리 위로 어른거리는 모닥불빛들이 너무도 청명하게 어둠과 조화
를 이룬다.
[그분은 항상 이런 말씀을 해왔죠 . 혹자는 인간이 이룩해놓은 업적 중에서 가장 놀라운
분야가 물리학과 음악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인간이
이룩해 놓은 업적 중에서 가장 놀라운 분야는 성서에 녹아 들어간 물리학이라고 말씀드리
고 싶습니다.>라고요 이번에 이건석씨와 성은주씨가 경험했던 순간 공간 전이 이동이
증명된다면 세계 대통합을 꿈꾸는 니므롯(주 ; 성경 최초의 단일 정부를 꿈꾸던 루시퍼의
대변자)의 바벨탑으로 빠져들어 가는 유태인 실력자들을 구해낼 수 있는 철호의 기회
라고 믿고 있죠.]
[그렇다면 할 박사님은 틀리신 겁니다.]
최목사가 나를 힐끗 쳐다본다.
[저희들이 경험했던 것은 휴거니 뭐니 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들이었습니다 . 휴
거란 이 지랄같은 세상에서 천국으로의 순간적인 이동이지만 저희들이 경험했던 것은 철
저한 지옥이었단 말입니다.]
[이해합니다. 할 박사가 농담조로 이렇게 말하더군요. 자신도 인천 상륙 작전에 참가한
병사였고 한국은 다시 한 번 꼭 가보고 싶은 나라라며 웃어 넘길 때 이 사건과 휴거를
연관 짓는 것은 무리라고 저도 짐작했었습니다 . 하지만 .]
[하지만 뭐죠?]
파도가 다시 거대하게 일어나면서 안개꽃 무더기 같은 물안개를 실어 날라 우리 바로 앞
으로 가져온다. 나의 머리끝에 맺혀가는 얼음의 가루들이 조금도 춥게 느껴지지 않는 것
은 어인 까닭일까?
[하지만 이곳에 온 순간부터 이상한 기운이 살갖 하나 하나에도 파고 드는군요 . 일종
의 전율이랄까? 말할 수 없는 공포가 내 바로곁에서 스물거리는 느낌입니다 .]
[목사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돌아가십시요 . 미친 짓들입니다 . 보이지 않겠지만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주변으로는 목사님께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악마들이 득실거
리고 있단 말입니다!! 전 그것을 경험했고 단순한 호기심 정도로 덤벼들기에는 세상에,
모두 다 생각보다 훨씬 더 광적이군요 .]
[이 사건을 보는 미국의 시각이 얼마나 민감하게 휴거와 연관되어 있는가를 혈맥(血脈)
멧세지가 나타나면 곧장 스티븐이 발표할 겁니다.]
[혈맥 메세지라뇨?]
[아시지 않습니까? 주술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순결한 자아들이 최종적으로 피의 유압과
맥관(脈菅)을 사용해서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는 전통적인 방법이죠.]
[그럼 .]
[혜수라는 아가씨는 스티븐과 계약을 한 거죠 . 자신의 친구를 고쳐주겠다는 조건으로
친구를 넘겼나 봅니다 .]
내가 눈을 질근 감는다.
[목사님, 그건 말도 안되는 계약입니다. 너무도 위험하다구요!! 이제보니 그 치졸한 미
국 놈들은 애시당초 은주의 심장에서 항생제를 뽑아내구 어쩌구는 새빨간 거짓말이었군요
. 항생제 뽑아내는 데 군인들이 투입될 때부터 눈치를 챘어야 하는 건데 . 오직 그들
의 최종적인 혈안은 휴거를 증명해내어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는 데에 있었군요 .
크리스티애니티 제국이라는 미국이 갈수록 욕 먹는 게 그런 약삭 빠른 잔머리 때문이죠
. 그에 비하면 찢겨져 가는 지구를 지키자는 뉴 에이지 제국들이 훨씬 더 순수할지도 모
르겠습니다 . 그럼 말씀드리죠 . 목사님과 저 몇몇 인간들이 궁금해하는 세상에 대해서
.]
그때였다. 저 어둠 속으로부터 예의 그 캐시라는 여자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최목사님!! 이건석씨!! 나타났어요!!
최목사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가 허둥거리며 막사를 향해서 달려가
고 있었다. 난 비틀거리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다.
새벽 두 시가 되자 눈발은 더 거세어지고 있었다. 내 뺨에 후득후득 떨어지는 이 가느다
란 눈의 입자들이 낱낱이 느껴지는 것은 지금 내 감성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는 증거일
까?
나의 걸음도 혜수의 탄식소리가 새어 나오는 막사 속으로 사라진 최목사의 그림자를 향해
서 비틀거리며 옮겨지고 있었다. 이토록 쿵쾅이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21화. 위험한 계약
* C.C.C : 대학생 선교회
[오, 당신이 그 유명한 이건석씨군요 . 항상 만나고 싶었어요 . 전 케시 베이커라고 해요
.]
내가 여자가 내미는 손을 외면한 채 천천히 탑 차 안을 살펴보았다. 탑 차 안으로 내가
들어섰을 때 맨 처음 본 것은 여덟 대의 모니터였다. 탑 차 안의 장비들은 중간치의 컴
퓨터 터미널과 블랙 박스 두 대 그리고 실험에 필요한 송수신 장비들 . 코넬 대의 지하
에서 본 것들을 축소해놓은 듯했다.
이미 혜수는 그 장비의 현람함에 흠뻑 취해있었고 이미 그녀의 마음 한 켠에는 이 장비
들과 선진의 이방인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복잡한 문제들을 모조리 해결해줄 것이라
는 막연한 희망 쪽으로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쾅하고 내 뒤의 탑차 문
이 닫히고 만다.
[친구 분이 몹시 아픈가보죠?]
미국인 남자가 특히 식크라는 발음에 액센트를 넣으며 비아냥거린다. 혜수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문제의 해결이 기억과 관계되어 있다는 건 저희들도 조금 압니다만 어때요? 테잎
을 보고싶나요?]
[자기 체면 동화상 프로그램 말인가요?]
남자가 여전히 차가운 웃음을 보이며 예의 그 캐시라는 여자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
의 손이 빨라지고 두번 째 모니터와 다섯번 째 모니터에 치직거리며 잔류 화상이 떠오른
다.
[지난번 이건석씨가 본 것과는 화질이 많이 향상된 겁니다.]
놈의 대화술은 아주 교묘했고 혜수가 나를 힐끗 쳐다본다. 마치 당신도 다 본 걸 가지고
뭘 그러냐는 눈치였다. 테잎은 계속 돌아가고 아, 내가 성황당의 나무 위에서 졸고 있는
모습이었다.
[세상에 맞아요 . 저 나무 .]
혜수가 넋이 나간 듯이 중얼거린다.
[아무 말도 하지 마! 혜수.]
내가 혜수에게 쏘아부치자 스티븐이 나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찬다. 화
면은 계속해서 어른거리며 성황당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분명이 은주의 시선이리라 .
그리고 잠시 후 내가 나무 위를 바라보며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거대한 인육의 덩어리
가 내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급히 나무에서 굴러 떨어지듯이 내려
가고 있었고 어느새 내 앞을 가로 막는 괴물로 화면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스티븐이
깨끗하다고 한 말은 말짱 거짓말이었고 화면은 치직거리는 노이즈로 인해 장면의 상황들
이 쉽게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난 알 수 있었다. 놈이 내 목을 내리치려고 할 때 재빨리 움직이는 화면의 상황
을 . 마치 스테디 캠을 사용한 듯이 카메라는 쉬이익 성황당 나무 아래로 날아간다. 그리
고 괴물이 나의 목을 날리려고 할 때 누군가가 괴물의 팔을 휙하고 잡는다.
어느 순간 화면이 멈추었다.
스티븐이 포즈 버튼을 눌렀기 때문이다.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
가는 내가 가련해서 인지 어느 순간 그가 일말의 동정심을 베푼 것이다.
[더 볼 필요가 있을까?]
[더 보여 주세요!!]
혜수는 광적이었다. 스티븐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측은했다.
[제발 제가 나오는 장면도 있겠죠?!! 그 여자의 시선으로 잡힌 거라면 그 버스 속에 그
여자도 있었단 말예요!!]
[헤이, 헤이 물론이야 . 얼마든지 보여주지 . 전집으로 준비해 놓았다구 . 시간은 얼마
든지 있다구. 우선 커피라도 한 잔 하지 .]
놈은 마치 강심술을 하는 도사와도 같았다. 완급을 이용한 사람 다루는 솜씨는 분명 놈이
심리학에서부터 군사 전략 지식까지 완벽하게 갖춘 국방부의 꽤 유능한 인재라는 것을 단
번에 알 게 했다. 이미 그의 포로가 된 혜수는 착한 소녀처럼 얌전히 고개를 떨구고 있
었다.
주한 미군 용산 기지에서 지원나온 헬기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백사장 탐색 임시 캠
프장은 백사장의 해변가 소나무 숲 아래로 결정되었다.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눈발에 얼
어 붙는 지독한 억세풀들이 바람에 광란하고 있었다. 캠프장 주변으로 쳐놓은 제 1 막사
안은 간이 난로가 놓여져 있었지만 가만이 있어도 강추위에 턱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
했다.
난 일찍부터 침낭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머리 끝까지 지퍼를 올린 채 잠을 청하고 있었
다. 펄럭이는 텐트 소리에 온통 신경이 갈 뿐 잠은 쉬이 오질 않았다. 이들은 대체 또
무슨 끔찍한 참극을 불러 일으킬 참인가? 가슴이 마구 조여왔다.
그때였다. 앰브란스 소리가 요란하게 캠프 쪽을 향하여 달려오고 있었다. 제 3 막사 쪽으
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허리 업!! 허리 업!! 컴 온!! 비 캐어펄!!
그리고 이어서 혜수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조금만 더 참아!! 신혜야 이들이 널 고쳐줄 거야 .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밖은 저녁부터 폭풍의 형태로 변한 눈보라로 인해 하얗게 뒤덮혀 가고 있었다. 혜수의 친
구를 실으러 갔던 앰브란스가 아직도 붉은 전조등을 사방에 흩뿌리며 앵앵거리고 있었다.
내가 눈발을 헤치고 천천히 막사 쪽으로 걸어갔다. 바람에 발광하는 막사의 껍질 위로 막
사 내의 사람들의 동작들이 인형극의 잔상처럼 어른거리고 있었다. 막사를 지키던 미군
이 문을 비켜준다. 이따위 보초조차 자기네 족속들을 세운 걸 보면 이들의 근본 의식 속
에 아직도 우리 민족을 여전히 식민사관에 절은 엽전 정도로 치부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
해주는 것 같았다.
애꿎은 국수주의를 달래며 내가 막사 안으로 들어서자 정말 혜수의 친구라는 신혜는 거의
유령의 모습에 가까운 형상을 하고 있었다. 눈을 허옇게 뜬 채 거품을 가득 문 입에는
재갈을 물려 놓았고, 천정을 올려다보는 눈은 측은함 그 자체였다. 한국인 군의관 한
명이 다급하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진정제 투여하고 혈압부터 체크해 .
혈압을 재던 간호병이 다급하게 말한다.
이상합니다 혈압계가 엉망입니다 .
동시에 혜수가 친구의 손을 잡고 울먹인다.
[신혜야 . 신혜야 . 우리 고통은 이제 다 끝났어 .]
스티븐이란 놈이 혜수의 어깨를 껴안으며 뭐라고 다독거린다. 난 얼른 밖으로 나왔다.
눈발이 일제히 드넓은 해변의 표면 위에서 우르르 떠오른다. 그리고 어두운 저쪽으로 황
량한 벌판의 흙먼지처럼 다시금 본향으로 몰려가는 눈의 무리들 .
닥터 지바고의 그 처연한 겨울 벌판도 지금 이 백사장 해변가의 정경보단 덜 을씨년스러우
리라 .
파도가 부숴지고 무너지고 있었다. 소나무 숲이 웅웅 소리를 내며 괴성을 지른다. 분주
한 병사들이 막사 주변을 오가고 있었고 헬기가 뜰 수 없다는 보고를 무전기로 해대는 소
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다시 나의 막사로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저쪽 예의 탑차의 문
이 열리며 불빛이 환하게 새워나왔다. 그 열려진 문을 통해서 캐시란 여자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난 쳐다보기조차 싫었다. 돌아서는 나를 향해 그 여자가 고함을 지른
다.
[이봐요, 커피 한 잔 어때요?]
내가 무시하며 여전히 막사 속으로 기어 들어가려고 할 때 다시 여자가 소리지른다.
[그렇게 비싸게 굴 필욘 없잖아요!!]
그래, 저 여자 말대로 비싸게 굴 필요 없이 이 기회에 은주에 대해서나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급히 돌아서서 뚜벅뚜벅 탑차 쪽으로 걸어간다.
탑차 속은 훨씬 더 따뜻하고 좋았다. 환기통으로 탁한 공기들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간헐
적으로 들린다.
[은주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
난 여자가 따라주는 커피에는 아랑곳 없이 모든 신경이 오직 은주의 근황에만 맞추어져
있었다.
[보세요 . 제 자랑부터 좀 하죠 . 전 제 또래의 여자애들이 한참 아빠 무릎 위에서 아양
을 떨 나이에 하버드 대 물리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했죠 . 그리고 비참하게도 서른의 나
이가 넘도록 사랑이니 뭐니하는 것들은 내가 마시는 커피 한 잔의 가치보다도 더 천하게
여기곤 했죠 . 나사(NASA) 측에서 지원자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도 전 이번 사건을 흔
히
일어나는 우주의 불가사의 어쩌구의 한 단편이라구만 치부했죠 .]
대체 이 여자가 뭐라고 떠들고 있는가? 난 여자가 뱉어내는 현란한 단어들을 조합하고 짜
맞추기에 바쁠 뿐이었다.
[그러면서 성은주씨를 가까이 하게 되고 당신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일종의 무한한 매력
을 느끼게 되었죠 . 제가 이번 선발팀에 왜 자원했는지 아세요 ?]
[그딴 건 제가 알바가 아닙니다. 은주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상태가 어느 정도입니까?]
여자가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힘없이 대꾸한다.
[스티븐이 말한 그대로예요 . 성은주씬 치명적이죠 . 일 주 전 35번째 심장을 복개했을
땐 더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까지 가있더라구요 . 순간 공간 전이 이동도 한계가 있더
군요 .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어요 .]
[세상에 .]
나의 눈이 금새 붉어져왔다.
[우리만 야만인으로 몰아부치지 마세요 . 이젠 자유롭게 해주겠다고 해도 그녀는 이건
석씨의 안전을 믿지 못하더군요 . 아니면 .]
내가 캐시를 바라본다.
[아니면 자신의 몰골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이기 싫어서겠죠.]
거기까지 듣던 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탑차의 문 손잡이를 돌리자 거센 바람이
확하고 나를 덮쳐온다. 어디선가 개짖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여자가 나를 바라보
며 소리쳤다.
[당신을 만나고서야 알게됐어요!! 그녀가 목숨을 걸고 사랑할 만한 사람이란 걸!!]
비틀거리며 해변을 걸어간다. 생각을 않겠다고 무진 다짐을 하며 그렇게 휘청이며 눈발
을 헤치고 걸어간다. 파도가 보고싶었다. 집채처럼 일어나서 일순간에 가루가 되어서 조
각나 나뒹구는 그 파도가 왠일인지 가까이서 보고싶었다. 내가 바닷가로 걸어가자 미군
한 명이 잽싸게 내 뒤를 따른다.
미친 놈들 . 이 나라까지 와서도 주인 행세를 하려들다니 . 하여튼 저들의 인종 우월주
의란 못말리는 중증이란 조소를 보내며 그렇게 바닷가로 향했다.
바다가 다가오자 저만치에서 불빛이 일렁이는 것이 보인다. 그것은 너무도 아름다운 한
편의 그림같은 장면이었다. 미친듯이 일어나는 파도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
그 빈공간을 무아경에 빠진 무희의 춤사위와도 같이 빼곡히 채우는 눈발, 다시 그 속에
서 장작더미가 불에 활활 타고 있고 .
불빛은 현란했고 그 곁에 조용히 앉아 가루가 되는 파도의 과정을 지켜보는 남자의 모습
또한 무척 신선했다. 불 가까이 바짝 다가갔을 때야 예의 그 목사라는 남자임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옆에 우두커니 서있자 남자가 나무토막을 하나를 건네주며 깔고 앉으라
고 한다. 우리 두 사람은 한참 깊어가는 어두운 바다를 향해서 한동안 그렇게 앉아만
있었다.
[인사나 하죠. 전 최익훈 목사라고 합니다.]
[예 . 전 이건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침묵만이 두 사람 사이에 가로 놓인다. 내가 다시 최목사를 바라보았을 때
그의 얼굴과 성애가 탐스럽게 낀 안경 위론 불꽃이 빨간 꽃잎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목사님께서 여긴 .]
[한심하게 보이겠죠? 뭔가 있지 않나하고 졸졸 따라다니는 강아지 같습니까?]
[아뇨, 전 그런 뜻은 하지만 궁금하군요 . 어떻게 저들과 .]
최목사가 졈퍼 속으로 고개를 묻으며 나즈막히 말한다.
[할 린세이 박사라고 아시는지 ?]
[알다마다요 무척 존경하죠.]
[그분 대리로 온 것 뿐입니다. 자신이 오겠다고 고집을 부리더군요 .]
내가 아주 신기한 듯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본다.
[그분과는 어떻게 .]
[전 총신대 76학번입니다 하지만 그때 폭풍처럼 파고 들던 캠퍼스 내의 해방신학에 염증
을 느끼고 곧 미국 달라스 신학대로 건너갔죠 . 그곳에서 그해 C.C.C. 연합 예배의 초
청 강사로 오신 그분과 알게된 거죠 .]
내 눈빛이 반짝인다. 한때 한번이라도 만나보기를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사람의 측근이
라도 만나니 마치 이 최목사가 나의 요즈음 혼동을 다 정리해줄 것 같은 기대가 부푼다
.
[그럼 그분은 어떻게 이 사건을 알게됐죠?]
[유엔 본부 내의 유태인 보수 정권의 한 사람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죠. 물론 유엔 내부에
서 할 박사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다수입니다. 하지만 할 박사가 유엔의 세계
공동 문제안을 처리하는 과정이 세계 단일 정부 추진위>와 연관이 있다고 발표한 다음
부터는 많은 아군들이 적들로 돌변해 갔죠.]
아, 말로만 듣던 그가 정말 유엔 내부에서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자
사뭇 흥미로와졌다. 내가 재빨리 묻는다.
[물론 이번의 제 사건을 알려준 그 유태인은 할 박사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였던 자이겠죠
?]
[당연하죠. 할 박사는 평생을 유태인 선교라는 독특한 사역을 펼쳐왔고 무엇보다 영악한
유태인들의 사고를 전복시키기 위해서는 평범한 성서학으론 한계를 느낀 거죠. 결국
그런 남다른 사고와 영감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방대한 성서학의 새롭고, 아니 새롭지
도 않지만, 혁신적인 장을 꿰뚫게 된 게 아닐까요?]
[그럼 대체 이번 사건과는 무슨 .]
[아시다시피 지금 미국 내부의 각 분야는 실질적인 브레인들이 막후세력으로 장악하고 있
습니다. 그 막후세력이란 아시다시피 유대인들입니다.]
[그게 어제 오늘 일입니까?]
[안타까운 사실은 그들이 하나 둘 세계 통합 추진 단체로 빠져들어 간단 겁니다.]
[그럼 .]
[할 박사가 70년 초반에 발표했던 대유성 지구의 종말>에서 예언했던 것들이 하나 둘 현
실로 맞아 떨어지는 거죠.]
내 입에선 옅은 탄성이 새어나온다. 이 낯선 남자의 입에서 대학시절 내가 한 달 간이나
도서관에 쳐박혀 연구하고 머리를 싸매던 할 린세이의 엄청난 베스트 셀러(그해 뉴욕
타임즈지 선정 넌 픽션 부문 1 위) 대유성 지구의 종말(The Late Great Planet Earth,
There's A New World Coming, and The 1980's)>에 관한 말들이 쏟아져 나오자
기분이 묘해지기 시작했다.
[그럼 이번 제 사건과는 .]
[휴거를 증명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할 박사는 추측하죠.]
[휴거라구요?]
[그분이 83년에 발표했던 휴거(携擧-THE RAPTURE ; THRUTH OR
CONSEQUEN
CES)-주;우리가 알고 있는 어네스토 W. 앵글리의 소설 휴거와는 다른 책임)>는 사실상
미
국 내에 엄청난 파문을 가져왔습니다. 신학 계에서는 세대주의(주;우주의 역사는 7세대로
나뉘어져 있고 각 세대 마다 성령의 활동이 변한다는 사상 . 할 린세이, 빌리 그래함,
세익스피어와 같은 분량의 어휘를 사용한다는 스펄젼, 국내에서는 장두만 박사 등이 따르
는 교리)냐, 계약신학(주 ; 구약의 율법주의적 구원이 현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국
내 대다수의 교회들이 따르는 교리)이냐라는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그분이 고정 초청 강
사로 소속되어 있는 유엔 내부에서는 세계 단일 정부 추진위의 음모가 처음으로 바깥으
로 드러나는 충격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죠. 그 후 할 박사 대 뉴 에이지 단체의 전쟁은
표면화 되기 시작했고 그분은 지금 너무도 힘든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최목사의 안경에 끼인 서리 위로 어른거리는 모닥불빛들이 너무도 청명하게 어둠과 조화
를 이룬다.
[그분은 항상 이런 말씀을 해왔죠 . 혹자는 인간이 이룩해놓은 업적 중에서 가장 놀라운
분야가 물리학과 음악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인간이
이룩해 놓은 업적 중에서 가장 놀라운 분야는 성서에 녹아 들어간 물리학이라고 말씀드리
고 싶습니다.>라고요 이번에 이건석씨와 성은주씨가 경험했던 순간 공간 전이 이동이
증명된다면 세계 대통합을 꿈꾸는 니므롯(주 ; 성경 최초의 단일 정부를 꿈꾸던 루시퍼의
대변자)의 바벨탑으로 빠져들어 가는 유태인 실력자들을 구해낼 수 있는 철호의 기회
라고 믿고 있죠.]
[그렇다면 할 박사님은 틀리신 겁니다.]
최목사가 나를 힐끗 쳐다본다.
[저희들이 경험했던 것은 휴거니 뭐니 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들이었습니다 . 휴
거란 이 지랄같은 세상에서 천국으로의 순간적인 이동이지만 저희들이 경험했던 것은 철
저한 지옥이었단 말입니다.]
[이해합니다. 할 박사가 농담조로 이렇게 말하더군요. 자신도 인천 상륙 작전에 참가한
병사였고 한국은 다시 한 번 꼭 가보고 싶은 나라라며 웃어 넘길 때 이 사건과 휴거를
연관 짓는 것은 무리라고 저도 짐작했었습니다 . 하지만 .]
[하지만 뭐죠?]
파도가 다시 거대하게 일어나면서 안개꽃 무더기 같은 물안개를 실어 날라 우리 바로 앞
으로 가져온다. 나의 머리끝에 맺혀가는 얼음의 가루들이 조금도 춥게 느껴지지 않는 것
은 어인 까닭일까?
[하지만 이곳에 온 순간부터 이상한 기운이 살갖 하나 하나에도 파고 드는군요 . 일종
의 전율이랄까? 말할 수 없는 공포가 내 바로곁에서 스물거리는 느낌입니다 .]
[목사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돌아가십시요 . 미친 짓들입니다 . 보이지 않겠지만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주변으로는 목사님께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악마들이 득실거
리고 있단 말입니다!! 전 그것을 경험했고 단순한 호기심 정도로 덤벼들기에는 세상에,
모두 다 생각보다 훨씬 더 광적이군요 .]
[이 사건을 보는 미국의 시각이 얼마나 민감하게 휴거와 연관되어 있는가를 혈맥(血脈)
멧세지가 나타나면 곧장 스티븐이 발표할 겁니다.]
[혈맥 메세지라뇨?]
[아시지 않습니까? 주술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순결한 자아들이 최종적으로 피의 유압과
맥관(脈菅)을 사용해서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는 전통적인 방법이죠.]
[그럼 .]
[혜수라는 아가씨는 스티븐과 계약을 한 거죠 . 자신의 친구를 고쳐주겠다는 조건으로
친구를 넘겼나 봅니다 .]
내가 눈을 질근 감는다.
[목사님, 그건 말도 안되는 계약입니다. 너무도 위험하다구요!! 이제보니 그 치졸한 미
국 놈들은 애시당초 은주의 심장에서 항생제를 뽑아내구 어쩌구는 새빨간 거짓말이었군요
. 항생제 뽑아내는 데 군인들이 투입될 때부터 눈치를 챘어야 하는 건데 . 오직 그들
의 최종적인 혈안은 휴거를 증명해내어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는 데에 있었군요 .
크리스티애니티 제국이라는 미국이 갈수록 욕 먹는 게 그런 약삭 빠른 잔머리 때문이죠
. 그에 비하면 찢겨져 가는 지구를 지키자는 뉴 에이지 제국들이 훨씬 더 순수할지도 모
르겠습니다 . 그럼 말씀드리죠 . 목사님과 저 몇몇 인간들이 궁금해하는 세상에 대해서
.]
그때였다. 저 어둠 속으로부터 예의 그 캐시라는 여자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최목사님!! 이건석씨!! 나타났어요!!
최목사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가 허둥거리며 막사를 향해서 달려가
고 있었다. 난 비틀거리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다.
새벽 두 시가 되자 눈발은 더 거세어지고 있었다. 내 뺨에 후득후득 떨어지는 이 가느다
란 눈의 입자들이 낱낱이 느껴지는 것은 지금 내 감성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는 증거일
까?
나의 걸음도 혜수의 탄식소리가 새어 나오는 막사 속으로 사라진 최목사의 그림자를 향해
서 비틀거리며 옮겨지고 있었다. 이토록 쿵쾅이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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