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에필로그

조회수 8 15세 이상 이용가 등록 2026.09.03
고양이 여인숙

26화. 에필로그


안면도로 가는 길은 그다지 경이로운 작업은 아니었다.
폭풍이 한 차례 휩쓸고 간 대지 위는 그나마 열기가 많이 수그러져 있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몰려온 북대서양의 해면 온도 상승은 뒤늦은 폭염을 동반한 채 한반도의 초가을을
뒤덮고 있었다.
S는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다. 일 주일 전 읽기를 끝낸 건석의 원고를 출판사로 넘기기 전
에 S는 글의 도입 부분에 이해를 돕는 프롤로그과 12장과 13장 사이에 <그에 관한 단상>
이란 소제목으로 석 장의 작가 시점판을 덧붙였다.
그 원고를 받아든 출판사 K 사장은 거의 제 정신이 아니었다. 평소에 그토록 침착하던
그의 돌변함을 바라보며 S는 곧 자신의 행동을 뉘우쳤고 이미 돌이키기엔 늦어버렸단 암
울한 후회가 심해져가는 사장의 수다를 통해서 여실히 전해져왔다. 기가 막히게도 그는
이 소설이 허구냐, 진실이냐를 하나의 출판 전략 이슈로 삼았고 그에 따른 상술은 대단
한 것이었다. 진작부터 건석의 기괴한 재능을 눈치채고 그 긴 슬럼프를 헤매는 동안에도
꼬박 꼬박 건석의 인세를 챙겨 줄 때부터 그는 이러한 기회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 사람
이 분명했는데 . 바보같이 . S는 언제나 당하기만 하는 자신을 비감스러워 하며 사장의
번들거리는 입술을 바라본다 .

이봐, S씨 이건 대박이라구 . 당장 떠나라구 . 가서 이 미완의 소설을 완성시키는 거야
!! 자네가 프롤로그를 쓴 것처럼 에필로그도 그럴듯 하게 완성하는 거야!! 내가 다 알아
봤더니 세상에 정말 혜수라는 아가씨가 아직도 안면도에 있더라구 . 그녀의 목소리를 듣
는 순간 눈물이 나더라구 . 더 환장할 사실은 그녀가 조그마한 단체를 만들어 놓았더라구
.
S는 멍한 표정으로 사장을 바라본다. 사장이 바싹 그의 곁으로 다가와 앉는다.
혜수라는 여자, 정말 놀라운 여자야 . 그동안 그 고양이 여인숙에 투숙했다가 죽어간 사
람들의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다시금 그 광추면의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단체를 만들었다
지 뭐야 . 이걸 어떻게 하지!! 이걸 어떻게 터뜨려야 하지? 이봐, S씨, 그런 눈으로 보
지 말아!! 어차피 난 장사꾼이라구!! 고양이 여인숙이 실제로 존재하느냐는 내게 그다
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그것이 허구일지라도 얼마나 그럴 듯 하게 포장해서 고품
질의 영양가 있는 물건으로 만드느냐는 거지 .
S는 당장이라도 그의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곧 자신의 행동을 철회하기로 했다. 내가 건
석을 인내해온 시간만큼이나 K 사장도 기다려 왔었고 또 이러한 결과를 얻을 충분한 댓가
를 지불하지 않았는가 . 곧이어 K사장이 달콤한 제안을 해온다.
이봐, S씨 당장 떠나라구 . 돈 걱정은 말구 . 내가 미리 원고의 가편집판을 신혜라는
아가씨에게 보냈더니 그쪽에선 대단하더라구 . 마침내 자신들의 의문이 다 풀렸다나? 지
금은 밤마다 그 백사장의 삼거리에서 광추면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기만 한대 . 이건
정말 살떨리는 오르가즘이야? 안그래?
흥분의 극치를 달리는 사장을 뒤로하고 나오는 밤거리는 참담한 그 자체였다.

에어콘도 들어오지 않는 버스 안은 승객으로 하여금 저절로 가을 들판을 바라보게 만들
었다. 이어폰을 귀에 푹 꽂고서는 애써 잠을 청하려고 한다. 요요마의 첼로 반주에 맞추
어 바비 맥프라인이 노래하는 허밍 악기음은 가히 천상의 화음을 방불케 했다.
S는 마치 무릉도원으로 향하는 버스 위에 실린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코스모스들이 하
늘거리며 길 옆으로 눕고 어느 해보다도 풍년을 맞이한 고추잠자리 떼들이 가을 하늘을
더 높게 만들곤 한다.
[어머니, 혹시 저 못돌아 올지도 몰라요 . 그러니 .]
[아니, 아침부터 비싼 밥 잘 먹고 무슨 미친 개 풀뜯어 먹는 소릴 하냐?]
어머니의 입담은 여전히 걸죽했고 S는 정말이지 건석을 찾으러 가는 이 길 위에 모종의
엄청난 불운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암시를 받곤한다.
[어머니, 혹시 제가 못돌아 오거든 둘째 서랍에 신한은행 현금 카드 있어요 . 바로 우리
아파트 앞이잖아요 . 비밀번호 카드 껍질에 적어놓았으니까 은행 수위 아저씨한테 찾
아달라고 부탁하세요. 그리고 .]
[저놈의 주둥아리가 지레 방정이라니까!! 닥치지 못해?!!]
저멀리 안면도의 꼬부라진 다리가 그 쓸쓸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S의 가슴은
사정없이 쿵쾅이고 있었다.

혜수라는 아가씨는 생각보다 대단한 미인이었다. 그리고 몇몇 대학생들도 같이 마중을 나
왔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희생자들의 자녀 또는 동생 등으로서 소위 인간이 미친다는 현상
에 대해서 탐구하는 그룹이었다. 이미 고통을 한번 경험한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그들의
대화들은 조그마한 것에도 민감하고 성실했다.
[오시느라 힘들었죠?]
혜수가 S를 바라보며 쌩긋 웃는다. 떨어지고 있는 물빠진 떡갈나무 이파리들이 아스팔트
곁에서 폴폴 나뒹굴며 멀리 여행을 떠난다. 지나가는 차들이 이들의 무리를 보고 손을
흔든다. 자신의 팔짱을 끼고 담담한 듯 짧게 손을 흔들어 답하는 혜수를 보며 S는 기이
한 외경심을 갖는다. 이 여자 , 그리고 우정 . 혜수가 S를 바라본다.
[건석씨의 원고를 읽고 우리 모두는 당신을 너무도 만나고 싶어했어요 . 특히 저는 더욱
.]
S가 조용히 미소 지으며 잠시 먹이를 구하러 아스팔트까지 내려온 다람쥐 한 마리를 바
라본다. 혜수라는 여자 원고를 읽을 때의 느낌과는 달리 마치 수도원의 수녀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녀가 다시 조용히 입을 연다.
[인간에 대한 사랑 . 고양이 여인숙은 우리에게 그걸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 그
사랑이 이토록 힘들고 인간의 한계치까지 요구한다는 것조차도 비웃으면서 말이죠 . S
씨 .]
S는 걸음을 멈추고 혜수를 바라본다.
[우린 비록 잃어버린 사랑과 우정을 되찾을 수 없다 하더래도 피차에 후회하지 않을 사람
들이잖아요 ? 안 그런가요?]
S는 한순간 자신을 가르며 지나가는 바람의 향기에 멀리 펼쳐진 추수가 끝난 한가로운
가을 들녘을 바라본다.
일종의 공동체였다. 이미 뜻을 같이한 피해자 가족들의 호소를 받아들여 안면도청에서는
이 넓은 농지를 특별히 제공해 주었고 이들은 퍽이나 아름다운 공동체 부락을 만드는 데
에 성공하고 있었다. S가 건석의 원고를 읽으며 진실과 그들의 눈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
고 정체성을 잃어버린 가족을 부여잡은 이들에게는 S의 방문이 설사 연민과 동정에서 비
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저 소중할 뿐이었다.
[아시다시피 전 여러분이 보신 글 중에 등장하는 S입니다 . 바보처럼 생겼죠 ?]
사람들이 피씩 웃는다. S는 한참 뜸을 들이고 있었다.
[왠지 오늘 밤은 솔직해 지고 싶군요 . 그래요 , 전 솔직히 여러분이 지금 무슨 생각
을 하고 있는질 잘 압니다 . 건석의 원고를 읽은 여러분들은 제가 수치스러움을 어떻게
견뎌내느냐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차 있겠죠 . 어떻게 그 날 새벽의 악몽을 다 지우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건석에게 다가갈 수 있었냐는 질문을 하고 싶은 거죠 .]
순간 방 안의 사람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S는 잠시 자신이 서있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분필 가루가 깨끗이 털린 칠판 지우개와 짙은 녹색의 칠판, 그리고 윈드햄
힐사의 뉴 에이지 전집이 꽂혀 있는 CD 진열장과 CD 플레이어기 그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영혼을 공명하는 에드워드 게러드의 맑고 정갈한 기타음
<유전(The Handing Down)>
이 지금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로 뭉쳐주고 있었다. S의 질문에 마침내 한 젊은
여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솔직히 궁금했어요 . 그게 사실이라면 .]
S가 여자를 또렷한 눈으로 바라본다.
[알고 싶나요 ?]
사람들은 말이 없었지만 정작 그들이 알고 싶은 건 그 날 새벽 은주로부터 공격 당하던
성의 린치가 아니었다. 다만 그 치욕스런 사건이 사실로 증명되면서 한 층 더 굳어질 저
세계의 실존에 대한 그들의 희망이었다. S는 여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 저녁 식사
시간 때 자신이 바로 건석이와 은주가 고양이 여인숙에 투숙하던 첫날 밤, 고스톱을 치
던 남자 중 가장 나이 많은 남자의 딸이라고 소개하던 귀여운 여자였다.
[한동안 수치스러워서 잠도 제대로 못잤습니다 . 수시로 욕을 하는 이상한 버릇도 생겼
죠 . 한 번은 지하철 안에서 큰 소리로 욕을 하다가 치한으로 몰리기도 했죠 . 그러다가
저희 회사로 찾아온 건석이가 돌아서 가는 뒷모습을 숨어 지켜보면서 모든 것이 다만
꿈 속에서 일어났던 일이었을 뿐이라고 확신시키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죠. 그 이후로 건
석이와 전 둘 다 그 날 새벽의 사건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구 뭐, 그런 것 있지 않습니
까? 한참 혈기왕성할 때 꿈꾸다가 몽정 한 번 한 정도 .]
산사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바람에 푸드득 소리를 내는 마른 잎새들의 몸부림들이 왠
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팀원 들 중에서는 가끔씩 울며 과거를 열어놓는 사람
들도 있었다.
[누난 국민학교도 채 못나왔죠 . 자형은 대학까지 나오고 . 애들 다 키워놓고 소위 말
하는 늦바람이 든 겁니다 . 누난 언제나 도피하고 싶어했죠 . 그 도피란 게 고작 카바
레에서 만난 김사장이란 남자와 이곳을 찾은 겁니다 . 그날 밤 여섯 명의 희생자 중에
누나가 가장 심했습니다 . 자형은 당장 이혼 수속을 밟았고 집에서는 남 부끄럽다며 누나
근처에도 가지 않았지만 전 누나를 이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누난 꽤 일찍부터
술집엘 나갔었죠 . 제가 중학교 떈가 누날 찾아서 부산엘 갔죠 . 누날 찾았는데 마침
누나가 길거리에서 한 남자의 혁대를 잡고 싸우고 있더라구요. 술값 달라구요 . 전 아마
도 죽을 때까지 그때 누나의 모습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
슬프고 고독하게 보이는 한 남자의 고백이었다. 그렇게 새벽까지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
었다. 마침내 이야기는 더욱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주일 전 이건석씨에게서 전화가 왔더군요 . 자신은 마침내 다시 그 지옥으로 들어간다
구요 . 제가 궁금한 것은 이겁니다. 이건석씨가 그 고양이 인간들을 다 해치운다고 해서
우리의 가족들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S씨 어떻게 생각하세요
?]
혜수가 S를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글쎄요 여러분께는 상당히 비관적인 말씀이 되겠지만 솔직히 전 불가능하다고 봅니
다 . 건석의 원고에서도 나타났지만 그 세계에서 이미 희생당한 자들은 영원히 .]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아내를 잃은 한 중년 남자가 큰소리로 불만을 표시
한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보내오는 저 혈맥 멧세지는 뭡니까?]
[그래요!! 그 혈맥 멧세지는 뭔가요?!! 어제 새벽에도 보내왔어요!! 날 날 기다린다고
요 .]
남편을 잃었다는 뚱뚱한 중년 여자였다. S가 그 여자를 멍한 눈으로 바라본다. 혜수가 다
시 입을 연다.
[건석씨의 원고 속에서도 언급되었지만 희생자들의 배나 허벅지에서 발견되는 혈맥 멧세
지의 한결 같은 공통점은 희생자들은 여전히 광추면을 떠돌며 언젠가는 자신들이 구원받
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겁니다!! 그 희망이란 게 고양이 세계를 완벽하게 파괴하는 걸
까요?]
S가 침을 꿀꺽 삼킨다. S는 건석의 원고를 읽으면서부터 일종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흥
분과 호기심이 자신을 자극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쯤 이들 역시도 자신의 내
면 깊은 곳에 숨죽이며 도사리고 있는 저편의 세계에 대한 유혹을 발견하곤 몸서리 치고있
음이 분명하다고 S는 믿었다. 아니야,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말을 해서는 안돼 . 절대로
안돼 . 내가 미쳤지 . 이들은 상하고 부러지기 일보 전의 갈대들인데 내게 무참이 꺾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 S는 자신의 입술에 무거운 돌을 메달아 놓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침내 그의 입에서는 군중들을 자극하는 말이 새어나오고야 만
다.
[그 혈맥 메세지란 게 희생자들이 보내는 거라고 믿습니까? ]
사람들이 예상대로 긴장하고 있었다. 혜수가 불안한 듯이 S의 말을 막는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예요?!!]
[전 원고를 읽어내려가며 그 혈맥 멧세지란 것에 대해서 한참 생각해봤습니다. 그 멧세
지들은 어쩌면 지옥으로부터 빠져나오려는 희생자들의 절규라기 보다는 오히려 여러분을
그 지옥으로 초청하는 유혹의 멧세지가 아닐까요?]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세상에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
[솔직히 .]
[그만 하세요!! S씨!!]
혜수가 S를 노려봤지만 S는 이 모든 정황들을 직시해야할 때라고 믿기 시작했다.
[원고 속에서 은주가 유언으로 건석에게 남긴 말들이 며칠간 계속해서 제 뇌리 속을 휘젓
고 있었습니다 . 건석은 은연 중에 그 세계에 은주가 남아 있을 수도 있다고 믿는 것입
니다 .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남편, 믿음직스러웠던 아버지, 자상했던 오빠,
누나들이 저 지옥의 세계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고 믿고 싶진 않습니까? 솔직히 그런 유
혹이 들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유혹을 빌미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저 세계로 뛰어
들고 싶은 욕망은 들지 않습니까?]
[집어치워요!! 이제보니 소설 속 인물과는 영 딴판이군요!!]
[그래요!! 엉망이군요!!]
S는 화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추측이 제대로 맞아 떨어짐을 확인하곤 슬퍼해야
했다. 게 중에서 유독 심하게 흥분한 한 청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는 어떤 희생을 지불하고서라도 우리의 가족들을 구해야만 합니다!! 이젠 두려울 게
없어요 . 그놈의 지옥으로 가는 문이 저 삼거리란 것도 알았잖아요!! 내일이라도 당장
들어가자구요!!]
[어떻게? 어떻게 그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다른 여자였다.
[다윗의 별인지, 삼 하인의 별인지를 그려보는 겁니다!!]
S는 재빨리 그의 말을 막았다.
[잠깐, 잠깐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단 건석이를 기다려보는 겁니다!!]
[웃기는 소리 말아요!! 그는 벌써 당했습니다!!]
S의 가슴이 철렁 내려 앉고 있었다. S가 멍하니 그 충격적인 발언을 한 청년을 바라본다
. 청년이 다소 주춤하다가 다시 쏘아부친다.
[댁의 친구 분은 벌써 그 고양이 인간들에게 당했단 말입니다!! 그래요! 저 사람 말대로
우리 솔직해 지자구요!! 저 사람도 알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S가 혜수를 바라본다. 혜수가 고개를 떨구고 있다가 쉰 듯한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연다.
[일주일 전에 이상한 사건이 있었죠 . 백사장 근처에 개 세 마리가 미쳐서 날뛴다는 소
문이 들렸습니다 . 그 소문을 듣고 우리가 달려 갔을 때 마을 사람들은 다시금 찾아온
공포에 떨고 있었고 그들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그 중 두 마리를 잡았습니다 .]
S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열기 시작했다 .
[그럼 그 .]
[그 날 저녁 서울 출판사에서 건석씨의 원고가 도착되고서야 비로소 알게되었습니다 . 마
을 사람들이 잡은 두 마리의 개가 반젤리스와 카이로란 사실을 .]
S는 칠판 옆에 놓여진 접개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있었다. 그럴리가 없었다.
[그럴리가 없습니다 . 다른 개일 것입니다 . 아니, 설령 그 개들이라고 하더라도 진짜
개들은 광추면 속에서 열심히 그 고양이들과 싸우고 있을 겁니다!! 예!! 반드시 .]
혜수가 슬픈 눈으로 S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S씨, 그 개들은 고양이들에게 죽은 게 분명해요 . 제가 알잖아요 . 둘 다 뻗뻗한 미이라
였어요 . 하지만 은주라는 아이리쉬 종은 비록 미쳤지만 S씨 말대로 그 광추면 속에서 열
심히 싸우고 있는 게 분명했어요 . 그는 마을 사람들을 피해서 소나무 숲으로 사라졌지요
.]
그럼 은주 혼자서 져니처럼 그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단 말인가. S의 머리 끝이 쭈뼛
이 서기 시작했다.
[그럼 카이로와 반젤리스는 .]
[마을 청년 중 몇이서 엽총으로 쏘아서 예의 그 납골당에 묻었다나 봐요 .]
S가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내뱉을 때 예의 그 청년이 다시 종알거린다.
[은주라는 미친 사냥개가 이 백사장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마을 사람들 손에 죽는다면 저
고양이 세계에 있는 용감한 은주는 어떻게 될까요?!! 그 개가 고양이들을 다 죽이고 광
추면을 통과한다고 해도 이미 자신의 육체가 썩어서 없어진 다음인데 그 영혼은 어떻게
될까요!! 하하하!! 그 지옥에서의 한 달이 이 세계에서는 무려 30년인데 . 합쳐져야
할 육체가 합쳐져야 할 육체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 으흐흐흑 .]
이번에는 청년이 마구 울기 시작한다.
[원고를 읽고나서야 비로소 알았죠 . 그 개는 광추면을 통과하면서 핏줄이 터지고 살이
섞어 들어가고, 마침내 한 줌 먼지가 되는 거죠!! 에스겔 서에 나오는 그 위대한 해골
골짜기의 신화처럼!! 흐흐흑 .]
[닥쳐요!!]
혜수는 어느새 흥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청년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래서!!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우리 가족들을 구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미 5년이란
세월이 후다닥 지나갔단 말입니다 . 더 늦으면 아니, 내일이라도 숨이 멎으면 그때는
저 세계를 탈출해도 합쳐져야 할 육체가 없기 때문에 그냥 먼지가 되고 만단 말입니다
!!]
[그만해요!!]
이번에는 중년의 여자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제발 그만해요!! 어제도 제 남편은 한참을 호흡을 멈추더군요 . 전 남편이 이대로
죽는다고 생각했어요 . 그러다 간신히 깨어난 남편을 보며 너무 억울하단 생각을 했죠
. 뼈빠지게 고생하다 이제 겨우 아파트 한 채 장만해서 이사 날짜 받아 놓구 그 기념
으로 정든 동네 남자들과 바다 낚시 떠난 양반이었는데 . 움직이질 못하니까 심장이 약
해져가고 있어요 . 그래요!! 그래요!! 우리 빨리 저 세계로 들어가서 가족들을 데리고
나옵시다!! 더 늦기 전에!!]
사람들은 마침내 새벽이 되어서는 마구 흥분하기 시작했다. 혜수는 회장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는지 사태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개들이 그런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해서 이건석씨도 당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 S씨의 말대로 기다려보죠!!]
다시 젊은 여대생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불안해요!! 그 개들이 발견된 그 다음 날, 마을에서 일어났던 사건은 어떻게 설명을 하
죠?!!]
S가 다시 혜수를 바라본다. 혜수는 입술을 질근 깨물고 있었다. 혜수가 대답할 생각을 않
자 S가 그 여대생을 바라본다.
[몇 년간 중단되었던 비극이 다시 시작된 거예요!! 서울에서 대하(왕새우)를 먹으러 왔
던 한 쌍의 연인이 그 다음 날 아침 백사장의 해변가에서 미친 채 발견되었죠!!]
S는 숨이 멈출 것만 같았다.
[그들이 뭐라고 중얼거렸는질 아세요 ?]
여대생은 공포로 거의 흥분해 있었고 혜수는 두 눈를 질근 감고 있었다.
[버스를 버스를 탔대요 .]
여자는 마침내 마구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 깊은 새벽, 그토록 아름답던 공동체가 순식
간에 공포의 도가니로 무너지고 있었다. 저 어두운 산 속에 지금도 수많은 식인 고양이
들이 우글거리고 있다는 소름끼치는 한기가 마구 엄습해왔다.
[다시 다시 살육이 시작된 거예요 . 그 고양이 인간들이 다시 깨어난 거예요 . 인간
들을 죽이기 시작했다구요 . 지난 번 보다 더 잔인한 모습으로 . 그 지옥의 문을 바로 이
건석씨가 연 거예요!!]
[그만하세요!!]
혜수가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S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가고 있었다.
[오늘 모임은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전부 각자의 숙소로 가서 쉬도록 하세요
!!]
사람들은 혜수의 명령에 쉽게 따르고 있었다. 극심한 공포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을 간신
히 서로 의지한 채 회의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텅 빈 방 안에 S와 혜수만이 남게 되자 혜수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방 안을
마구 맴돌기 시작했다.
[견딜 수가 없어!! 정말!! 이건!!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그녀는 무엇엔가 마구 분노하고 있었다. 그 대상은 자신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토록 가혹
한 운명을 허락한 신일 수도 있었다.
[말해봐요!!]
그녀가 분노를 S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신혜를 포기할까요?!! 이 모든 것들은 정말 자다가 벼락 맞은 재수없는 일이었을 뿐이
다라고 치부하며 그렇게 잊어버릴까요?!! 그럴까요?!! 당신이 그 날 새벽 은주라는 여자
의 신음 소리를 꿈이었을 뿐이라고 연습했듯이 우리도 이건 꿈이다라고 믿는 연습을 시작
할까요?!! 그럴까요?!!]
S가 눈을 부릅 뜨며 혜수를 바라본다. 지치고 피곤한 그녀가 이 상황에서 내뱉는 말들에
대해서 대꾸한다는 게 소인배나 할 짓이라고 믿으며 그가 고개를 떨군다.
[전 어떡하죠? 말해보세요 . 무슨 말이라도 좋으니 전 어떡하죠 ? 어떻게 이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해내죠 .]
혜수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작은 인원이지만 저 절망하는 무리들을 이끌고 베데스다 연못
이 태동하기를 기다리던 이 가날픈 여자는 마침내 자신의 한계 앞에서 억울하고 분통해
서 흐느끼는 것이다.
S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혜수를 조용히 끌어안았다. 혜수는 쉽게 S의 품으로 안겨들어왔
다. 그리고 더욱 소리 죽여 한참을 흐느끼고 있었다.
어느새 아침 여명이 창 밖으로 그 희뿌연 자취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S는 짐을 꾸려서 백사장으로 향했다. 무언가라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
기 떄문이다. 하얀 모래입자들이 뽀드득거리며 그의 구두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 온다.
따가운 가을 한 떄의 햇살이 S의 작은 눈을 더 작게 만들고 있었다. 시원한 바닷 바람
이 그의 가슴을 한껏 열고 저 멀리서 조개를 줍는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바람처럼 뛰어다니
고 있었다.


S의 일정은 거의가 동일했다. 낮에는 혜수가 운영하는 공동체에
서 코를 골며 자다가 밤에는 그 삼거리에서 버스든 뭐든 제발 나타나주기를 눈이 빠지게
지켜보는 일 뿐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란 세월이 후다닥 지나가고 어느새 9월도 하순에 접어들고 있었다. 한번
은 S가 밤에 몇번을 망설이다 납골당엘 갔는데 3년 전의 그 오싹한 분위기는 그대로 남
아있었다.
밤에 온 납골당은 정말이지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실감이 났다. S가 금새 돌아서려고 할
때 납골당의 뒤로 분명 무엇인가가 바람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분명히 은주가 틀림이
없었다. 은주!! 라고 불렀을 때 그 하얀 영국산 아이리쉬 종은 미친 눈을 하고서는 어둠
속에서 S를 노려보며 크르릉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
은주가 사라진 그 어둠 속에서 건석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고독과 처절한 허허로움으로
거의 죽을 상이 되어 갔다. 황량한 소나무 숲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저
사냥개의 발광만큼이나 S 역시도 미치도록 고독했다.
역설적으로 그 고독의 중량감은 어느새 S에게 세상 저편을 간절히 사모하고 있는 괴리
감을 영감의 저울추로 가르쳐주고 있었다. S는 그 지독한 독설의 이율배반 앞에서 경악하
고 있었다.
저 빌어먹을 세계를 사모하는 이유에 봉착해서는 단순히 건석에 대한 그리움 하나뿐이란
진실도 깨닫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 불어오는 가을 바람의 실날 같은 헤아림 속에서 건석은 내게 있어 무엇인가
라는 해답찾기 작업을 S는 시작했다.
건석 . 건석 .
어느 날 토요일 오후 친구의 결혼식에서 피아노 반주를 맡은 내가 예식 시간에 늦어 미친
듯이 식장 안으로 뛰어들어 갈 때 식장 안의 모든 사람들이 날 노려보았고 그들 중 한
사람의 눈빛이 바로 건석이었다 .
예식장 안의 그랜드 피아노에는 두 대의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었고 나의 피아노 반주는
너무도 청명한 스테레오 음으로 식장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보통 신부 입장에는
멘델스존의 딴딴딴딴이 상례였지만 난 타레가의 아람부라 궁전의 추억을 현란한 아르페지
오 기법으로 연주했고 다가오는 신부의 처연한 행진과 함께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오던
건석의 넋바진 표정 .
그때부터 그는 단순히 나의 피아노 실력을 부러워 했었고 난 그의 순결한 영혼이 좋았었다
.
고등학교 2학년 전교 톱을 달리던 두 사람이 동시에 자살을 생각하고 그 자살을 실행에
옮겼다는 공통된 악몽 하나만으로도 S와 건석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건석은 유일하게
S의 영화 철학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하는 따스한 영화 평론가였고 S는 건석의
다소 난해한 컬트 성향의 글들을 스테판 킹의 심리비교학으로 분석해낼 줄 아는 기이
한 친구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떨어진 하나였다.
마침내 추석이 다가오는 15일 새벽 2시경이었을 것이다. 보름달로 치닫는 반달이 구름 속
에서 익어가는 만추의 가을을 보듬어 안던 풍요로운 백야의 한가운데였다. 서늘한 바람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는 기분좋은 바람들이 S의 가슴으로 마구 몰려왔다.
한 달 간 S가 앉아 죽치는 보금자리로 택한 길가 언덕 위의 잡풀섶 속은 그야말로 이제
는 아무 멋진 자연 침대가 되었고 그날도 S는 그 침대에 드러누워 하늘의 빼곡한 별을 헤
이고 있었다. 어느 순간 S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저쪽 백사장의 횟집 골목으로부터
한 대의 르망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달려오던 르망이 마침내 삼거리에서 털털거리기 시작한다. 차의 엔진이 숨을 거두
고 차에서 젊은 남녀가 튀어나온다.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기에 똥차 팔아버리라고 했잖아!! 아이, ;팔!!]
[이 병신아, 내가 대충 자자고 했잖아!!]
남자가 본넷트 두껑을 열며 여자에게 고함을 지른다.
[그 썅놈의 새끼들이 밤새 고스톱을 칠 모양인데 어떻게 자란 말이야!! 그리고 우리 방을
향해서 히히덕거리는 소리 들었지!! 차라리 차 안에서 하겠다!! 아이, ;팔!! 정말 재수
옴붙었네!!]
[그럼 차 안에서 하자구!! 어때?!!]
[빨리 차나 고쳐!!]
여자의 쌍소리가 어두운 새벽을 깨우고 두 사람은 끝없이 다투고 있었다.
그 황당한 커플을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던 S는 마침내 이제껏 추리해오던 지독한 퍼즐
맞추기의 마지막 블럭 하나를 남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퍼즐의 끝에서 매끈한
블럭 하나를 빈 공간에 끼워 맞추려고 할 때 온몸에 감겨오는 전율 앞에서 벌벌 떨고 있
었다.
완성된 퍼즐의 모습은 대충 이러한 것이었다. 3년전 백사장의 해변가에서 건석과 은주를
발견했을 당시 건석의 정신 분열증세에 비해 은주의 강도가 약했던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
어쩌면 그때의 은주는 그 고양이 소녀의 정신과 혼합된 그러니까 은주와 고양이 소녀의
계약에 의해 그들 스스로도 분리해낼 수 없는 혼동의 총체적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때의 은주 속에 든 영혼은 고양이 소녀의 선함과 건석을 동경하던 은주
의 순애보적 사랑이 합쳐진 너무도 고결한 정선된 사랑의 혼합물이었을 것이다.
나와 건석의 사고가 하나이었음을 알고는 자주 놀랬던 것처럼 고양이 소녀조차 자신을 은
주와 하나로 뗴어놓는 걸 포기할 정도로 두 사람은 서로의 육체와 정신을 공유했었던 게
아니었을까?
[어떡하지? 읍내까지 가야만 한다는데 . 무슨 빌어먹을 마을이 여관이 하나 밖에 없어
?!!]
[기다려봐 지나가는 차가 있을 거야!!]
두 남녀의 푸념으로 변한 대화들을 숨죽이며 듣던 S는 계속해서 퍼즐의 형태를 읽어내려
간다.
그렇다면 건석의 불신으로 광추면 안에 내버려두고 와야만 했던 그 은주는 누구였을까? 그
녀의 말대로 그 빛나던 사랑과 신뢰는 건석의 불신과 함께 다 타버리고 증오와 파괴만
광추면 속의 은주에게 남은 게 아닐까? 그녀가 지옥의 세계에 남게 되면서 영혼을 기다
리던 현실의 은주 또한 악마로 변해버렸던 게 아니었을 .
그렇다면 정말 무서운 사실은 악마의 모습으로 돌변한 은주를 그토록 한치의 의심없이
사랑했던 건석이가 저 비욘드 월드 속에 존재하는 악의 화신인 은주를 쉽게 죽일 수가 있
을까? 그리고 저 악의 세계에서 악의 형상으로 변한 은주는 얼마나 끔찍한 살육을 자행
할 준비를 하고 있을까?
더 나아가서는 건석은 진짜 고양이 세계에 복수를 위해 뛰어들어간 것일까 아니면 그 지
독한 악마의 형상이나마 못다한 사랑을 잡기 위해 들어간 것일까? 아 아 .
그때였다.
어디선가 쏴한 바람소리와 함께 이상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도 귀와 육감에 익숙
한 . 마이너 선율에 아주 일정한 간격으로 튕겨지는 저 전자 베이스음 소리 .
그렇다 .
저 음악은 .
S가 수풀 속에서 후다닥 일어나며 저 언덕 아래를 바라본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커다란
낡은 버스 한 대가 예의 그 르망 앞에서 끼익하고 멈추어선다.
[어머, 버스다!! 아저씨!! 이 버스 읍내 가요?!! 간대 빨리 타!!]
[차는?]
[그깐 똥차 어차피 견인해야 할텐데 . 나 잠이 와서 미치겠어!! 어차피 내일 아침에 읍
내까지 가야잖아!!]
마침내 남자는 여자의 닥달에 못이기는 듯이 여자의 손에 이끌리어 버스 속으로 올라타고
있었다.
언덕을 거의 미끄러지듯이 내려오는 S는 미칠 것만 같았다. 안돼라고 소리질렀지만 그것
은 목구멍에 걸려 이상한 발음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S가 휘청거리며 겨우 버스로 다가갔을 때 어느새 버스의 문이 후다닥 닫히고 있었다. 그
닫힌 문 사이로 비쳐지는 운전석에 앉은 남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S는 심장이 멎을 것
만 같았다.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하얗게 웃고 있었고 그는 분명히 꿈에도 그리워하던
사랑하는 친구의 모습이었다.
그토록 딱딱한 장승이 되어가는 S를 남겨두고 꿈결처럼 버스는 움직이고 있었다.
사랑하는 친구가 낡은 카세트의 볼륨을 최대로 올리고 있었다. 반젤리스의 블레이드 런너
의 테마음이었다. 사랑하는 친구가 마구 웃으며 그 노래를 따라부른다 .
빰빰빰빠 . 빰빰빰 .
차가운 바람이 마구 불어오고 버스의 바퀴에 감겨드는 황토흙들이 헤트라이트 불빛을 받
으며 뽀얗게 떠오르고 있었다.
성황당으로 통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버스의 전면으로 거대한 연두빛의 한 무더기가
떡하니 입을 벌이고 있었다.
한참 후 삐걱거리는 버스를 통채로 삼킨 연두빛의 아가리는 금새 다물어지고 그 자리엔
깊어가는 어둠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근 한 시간을 그 자리에서 비석이 되어가던 S를 깨운 것 바로 언덕 위에서 짖는 개의 울
음 소리였다. 버스가 사리진 곳을 향해서 S만큼이나 슬픈 울음으로 한 마리의 사냥개가
오랫동안 슬프게 울부짖고 있었다.
우우우우 .


10월 3일, 나를 버리고, 나를 한때 지옥 속으로 몰아 넣고,
마침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EJ에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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