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청풍(靑風) 1
화산질풍검(華山疾風劍)
1화. 청풍(靑風) 1
청풍(靑風).
화산파(華山派). 초절정고수(超絶頂高手).
선현진인(善賢眞人) 자하신공(紫霞神功) 사사(師事).
동방(東方) 이족(異族) 출신(出身) 추측, 확인불가.
독특(獨特)한 독문무공(獨門武功) 소유(所有).
백호검사(白虎劍士). 청홍무적검(靑紅無敵劍). 화산질풍검(華山疾風劍).
제천회(制天會) 일익(一翼).
대(對) 철기맹전(鐵騎盟戰) 참전(參戰).
대(對) 성혈교전(聖血敎戰) 참전(參戰)......중략(中略).......
한백무림서(韓白武林書) 인물편 제 삼장
화산파(華山派) 청풍(靑風) 중에서
화산의 산세는 웅장함을 자랑한다.
서악(西岳).
중원천하 오악 중, 가장 험한 산으로 정평이 난 대산이다. 온 산이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니, 강인한 기상이 산 전체에 충만하다.
찌르듯 솟아 올린 기암괴석.
깎아지른 듯 뻗어 내린 절벽들.
마치 신비로운 갑주를 지닌 신장(神將)과도 같다.
협곡을 감싸 도는 구름 사이, 다시없는 절경으로 스스로의 무용을 드높이는 산이었다.
고래로부터 도교의 성지(聖地)였던 화산이다.
격하고 화려한 위용을 드러내는 암벽들은 그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지기(地氣)를 뿜어내고 있는 것 같다.
예로부터 화산에 이르려면 오직 그 길은 하나뿐이라 전해진다.
사람이 오르기엔 가파른 산세여서 그렇다. 옥천원 지나 석문에서 시작되는 돌계단은 험하고도 또 험하여 감히 오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범인(凡人)의 접근을 불허하는 산.
화산의 품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마음을 정결히 가지고 구도(求道)하는 심정으로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신비로운 기(氣)가 만산(滿山) 기암(奇巖)들에 가득하여 호기를 절로 일으키는 곳.
도문(道門)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옥녀봉, 연화봉, 운대봉, 낙안봉, 조양봉, 오봉(五峰)들이 그 강건한 기운을 앞 다투어 발산하고 있으니, 도문이 자리 잡지 않았더라면 큰 군벌이나 도적들이 흥성했을 땅이었다.
화산의 도사들은 그와 같은 강건한 기상을 닮았다.
법도가 뚜렷하여 배움의 엄격함을 강조한다.
도사들이란 자고로 수양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법. 그러나 화산의 산 기운은 도사들의 수양을 정신의 수도로만 가두어 두지 않았다.
험악한 산세, 그 산을 닮은 빼어난 기상으로 검(劍)에 뜻을 둔 도인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화산검파는 그렇게 산의 강요로 탄생했다.
조용히 구도(求道)에 전념하는 도인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특질을 지닌 도사들.
넓디 넓은 서악(西嶽)의 셀 수 없는 도량들 중에서, 다 같은 화산의 도문들이되 연화봉 측사면 도관들을 따라, 검파로서 자리 잡은 문파가 바로 화산검파, 화산파다.
무(武)를 추구하는 도인들이 어떤 산중의 도관들보다도 많았던 곳.
각양각색의 무예가 비전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특히 검도(劍道)를 중시했던 것도 화산의 산세가 마치 찌르는 검(劍)의 형상을 지녔기 때문이었을지.
절도와 극기를 먼저 생각하는 검문, 화산파다.
무당파와 함께 구파의 수위를 넘본다는 강력함은 그와 같이 굳건한 화산의 성정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었다.
연화봉 산 중턱의 한 도관, 취운암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황적색 바위들 사이 사시사철 드리워진 청송은 그 뾰족한 푸른 잎들마저도 바위 색깔처럼 주홍빛일 것만 같다.
깎아지른 절경 아래, 일노 일소, 두 사람은 이제 화산문인으로서 첫 운기토납을 가르치는 한 사람의 사부와 제자가 되어 있었다.
“그래, 더 깊이 들이마시고, 그래, 그렇게.”
어리고도 어린 아이.
느릿느릿 들이마시는 숨과 조심스럽게 뱉어내는 날숨이 귀엽기만 했다.
“혀는 입천장에 붙이고. 여기 정수리와 연결 된다고 생각하거라. 머리 꼭대기 말이다.”
초로의 도인이 어린 제자의 백회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속눈썹 긴 커다란 눈을 굴리며 사부의 동작, 사부의 말 하나하나를 따라가는 아이의 얼굴엔 순수함만이 가득했다.
“세상 모든 것들은 기(氣)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유형만물의 비롯됨은 기(氣)에 있으니, 스스로의 안에 있는 기(氣)를 느끼는 것이 첫째요, 다른 사물 안에 있는 기(氣)를 느끼는 것이 두 번째다. 천지간에 충만한 기(氣)를 끌어 쓰며 음과 양, 만재(萬在)의 실체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곧 운기(運氣)다.”
선현진인.
달리 무검진인이라 불리는 이.
화산파는 고래로 검(劍)을 숭상하는 검문으로 이름 높은 바, 그러나 그와 같은 전통을 거부하며, 병기를 불신하고 오직 순수한 내력과 육신의 힘만을 고집하던 장로가 그였다.
“운기를 내력으로 담아내어, 온 몸에 조화의 기운을 불어 일으킬 수 있다면, 맨손으로도 능히 도검을 상대할 수 있으며,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다. 만사(萬事)에 물러섬이 없음이라.......”
잔잔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의 앞에 어린 제자의 맑은 눈빛이 박혀 들었다.
“청풍아. 이 사부의 말이 어려우냐.”
“네에......”
조그맣게 대답하는 어린 제자, 청풍.
이제 겨우 다섯 살. 또릿또릿한 이목구비에 계집아이의 그것처럼 도톰한 입술을 지닌 아이다. 선현진인의 만면에는 보기 좋은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그러니까, 이 사부가 시키는 대로 숨쉬기를 계속하다보면 나쁜 도적들도 때려잡을 수 있고, 산속 무서운 맹수들도 물리칠 수 있다는 이야기란다. 천천히 천천히........그렇지. 그렇게 차분하게 하는 것이야.”
선현진인은 서두르지 않았다.
제자를 받은 이상,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남겨주면 되는 것이다.
검(劍)을 버리고 얻은 기(氣)다.
지금이야 정무제자도, 매화권사도 생겨나, 검법 이외의 길도 제법 정착되고 있다지만,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선현진인이 배우던 그 시절, 화산검문에서 검을 쥐지 않았다는 것은 그야말로 특이한 사실.
무검진인이란 칭호조차도, 사실은 그 안에 다른 장로들의 조롱기가 묻어있지 않았던가.
은연 중 있었던 멸시와 천대를 기억하고 있는 선현진인에게 자하진기(紫霞眞氣)를 전수할 제자가 생겼다는 것은 그야말로 일생 일대의 천명을 부여받은 것에 다름이 아니었다.
“사부님, 숨이 차요.”
“어허! 운기하는 와중에 입을 열다니! 처음부터 다시 하자. 구결이 어떻게 된다고?”
“양중음생(陽中蔭生) 조화교원(造化郊原) 흡기단전(吸氣丹田) 진원백회(眞元百會)요.”
“그래. 그래도 한 번 이야기 해 준 것은 잃어버리지 않는구나. 하지만......무슨 뜻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
“네. 사부.”
“이제 차차 알아가자꾸나. 숨쉬는 것은 본래 스스로 느끼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쉬어야 올바른 숨쉬기라 할 수 있단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진기를 이끄는 구결이 저절로 일어날
수 있도록 마음을 다 해보자. 알았지?”
“네.”
선현진인을 올려보는 어린 청풍의 두 눈에는 사심 없는 신뢰만이 가득했다. 함박웃음 지어내는 청풍의 입가에 선현진인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담겨든다.
내공(內攻)과 기(氣), 그 궁극을 향한 자하신공의 길.
올라선 두 노소의 첫 발걸음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
계절 따라 부는 화산의 황적색 바람은 아이를 소년으로 만들고, 사부의 얼굴에 자그마한 세월의 고랑을 새겨 놓았다.
화산파 제자의 초입, 보무제자가 된 청풍은 처음으로 친구들을 사귀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새로운 무공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팡! 파팡!
“이크!”
비형권에 이은 이형권.
보무제자에게는 기본공을 가르친다.
같은 보무제자인 아평은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소년, 십 이세 어린 나이에도 초식 이해가 탄탄한 편이었다.
파악!
아평이 펼친 이형권 슬각초에 다리를 걸려버린 청풍이다. 주저앉은 그의 얼굴, 순진해 보이는 웃음이 피어났다.
“또 졌네. 아평은 정말 강하구나.”
패배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아평보다 한 뼘은 더 큰 키에 긴 속눈썹, 수려한 눈매를 지녀 그 누구보다도 돋보이는 외모였음에도 실력과 심성은 나약하다 느껴질 만큼 내세울 것이 없었다.
“칫, 넌 진 것이 분하지도 않냐!”
청풍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면서, 얼굴 찡그린 아평이 핀잔을 던져 왔다.
“분할 것이 뭐가 있어? 실력이 모자라 진 것인데.”
“에고. 무슨 말을 하겠냐.”
청풍.
둥글둥글하여 승부욕이란 찾아보기 힘들다. 절도와 무예를 강조하는 화산파의 제자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성정이라, 도무지 눈에 뜰 바가 없었다. 아니, 비무만 하면 매번 지고 있으니, 도리어 주목받을 정도라 할까.
“오늘 수련도 다 끝났으니, 가 볼게.”
“또 그 심범 익히러 가는 거야?”
“응.”
“우리 사부님이 그러시는데, 무공 수련은 그렇게 내공에만 치우쳐서는 안 된대.”
“응.”
“무슨 대답이 그러냐? 우리 사부님께선 내공이랑 초식이 항상 같이 해야 되는 것이라 하셨어.”
“난 잘 몰라.”
“거 봐. 앞으로는 연습을 좀 해. 맨날 이기는 것도 미안하단 말야.”
얼굴에는 은근한 자부심. 그만한 나이에 어울리는 감정이었다.
“그래도, 난 사부님께서 시키는 대로 할 거야.”
“그러다가 끝까지 나 못 이길걸?”
어린 아이다운 도발이다. 그러나 청풍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괜찮아. 무공은 누구한테 이기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하셨어. 사부님은.”
제법 자신 있는 얼굴로 대답한다.
의지가 굳은 것인지,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함에서였는지.
아마도 후자일 듯 하다. 청풍은 아평의 말이 도발인지조차 알지 못할 만큼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갈게!”
아평과 다른 제자들이 사부들을 찾아, 또는 그 자리에 남아 수련하는 것을 뒤로 한 채, 청풍은 연화봉 아래쪽을 향해 걸음을 빨리 했다.
팍! 파팍!
가파르기 짝이 없는 산길이었지만, 내달리기 시작한 청풍은 움직이는데 거침이 없다. 비무 수련 때의 어설펐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지족조원(地足造源), 공신교통(空身交通).’
한발 나아갈 때, 착지할 때, 다시 몸을 날릴 때.
청풍은 오직 스스로의 호흡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호흡과 축기. 발산과 수렴.
자하진기.
내공수련이다.
초식은 배재한다. 비형권과 이형권을 배우며 비형보, 이형보를 익혔지만, 그 보법을 따르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내력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긴다. 첫 심법 수련 때부터 사부님께 누누이 들었던 말, 생활 자체가 자연스럽게 내공 수련으로 녹아 들어가야 한다는 것.
청풍에게 보무제자로서 받는 수련은 어디까지나 어쩔 수 없이 하는 부수적인 훈련에 지나지 않았다.
오직 내공만을 고집하며 비형권과 이형권은 그닥 열심히 연마하지 않으니, 다른 제자들과는 차이가 날 수 밖에.
내공만큼은 꾸준히 연련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쓸 수 있는 형(形)을 갖추지 않았으니, 비무 수련에서 이길 수 없었던 것도 기실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사부!”
“왔느냐.”
화산파 장로들의 거처 중 가장 초라한 자하암, 선현진인은 온화한 미소로 청풍을 반겼다.
“이형권은 어땠냐? 오히려 비형권보다는 쉽지?”
“음.......예. 다른 제자들은 이형권이 더 어렵다고 하던데요.”
그럼 그렇다는 듯 선현진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공의 차이야. 이형권의 권형. 이해는 잘 가지만, 손은 잘 안 따를 거야. 그렇지?”
“예, 맞아요. 그것이 좀 이상해요.”
“이상할 것이 무에 있느냐. 연습을 못 하게 했으니 손에 익지를 않은 것뿐인데. 그럼, 대련도 또 졌겠구나. 상대는 누구였지?”
“예. 사부, 아평한테요. 아평은요, 정말로 무공에 재질이 있나봐요.”
“허헛. 그것은 재질 때문이 아니라, 연습의 차이라니까. 네가 밤낮으로 이형권, 비형권을 연마했으면, 못 이겼을 것 같으냐?”
“음........그러니까.......”
“왜 대답을 못해? 질 것 같아?”
“하지만 아평은 정말 강해요. 벌써부터 선검수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걸요.”
선검수는 육력을 시험하는 운대관을 거친 보무제자가 얻는 칭호이다. 선검수가 된 후, 천화관을 넘으면 평검수에 이를 수 있고, 소요관, 오용(五勇) 사현(四賢)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하게 되면, 비로소 모든 제자들의 목표인 화산 매화검수가 될 수 있다.
매화검수.
욕심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청풍에게조차도, 그것은 무척이나 설레는 칭호일 수 밖에 없었다.
“선검수?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자하진기나 꾸준히 수련하거라. 네 내공은 누구 못지 않아. 벌써 자하진기 일단공에 이르렀으니, 이 사부보다 이십년은 빠른 셈이니까.”
“그래도........”
머뭇거리는 청풍의 모습. 선현진인이 얼굴을 가까이 하며 제자의 뒷 말을 재촉했다.
“자꾸.......지니까.......”
“자꾸 지니까, 기분이 나쁘다?”
“조, 조금이요.”
화들짝 놀란 듯, 즉각 덧붙이는 청풍이다.
그 얼굴에 선현진인이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허허허허. 이제 조금은 나이를 먹는 모양이로구나!”
호승심.
당연히 생길 수 있는 감정이다. 마냥 어린 아이일 것으로만, 아니, 아직까지도 어리기 짝이 없는 제자도, 슬슬 무인으로서의 자각을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풍아야, 잘 들어라. 아직은 연단과 축기다. 조급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발경은 아직 일러. 네 몸에 쌓인 진기는 약하지 않다. 조절도 못하면서 함부로 사용했다가는 큰일이 난다. 비형권이나 이형권의 발경만으로도 위험해. 이제 겨우 태을기나 구소공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과는 다르다. 이 사부가 초식 수련을 안 시키는 이유는 그래서야. 알겠지?”
“예.”
무검(無劍) 진인, 사부의 이름을 조금도 부끄럽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청풍이다. 소년에게 있어 무검의 내공론(內攻論)은 그것을 펼치는 사부와 함께 탐구하는 신앙과도 같았다.
“자, 다시 시작하자꾸나. 누누이 말하는 것이지만 내공과 진기는 강한 믿음에서 나오는 법이다. 기(氣)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가능하다고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게다.”
“예, 사부.”
소망하고 구하는 만큼의 길이다.
굳이 제자, 청풍을 뛰어난 고수로 만들려고 하거나, 모두에게 인정받게 만들려는 생각은 특별하게 해 본 적이 없다.
무검진인, 선현진인 자신의 삶이 그래 왔기 때문이다.
내공에서 이룩한 바를 제대로 평가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것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기(氣)를 쫓아 자신을 완성하는 길.
사심 없는 무한지로일진데, 다른 이들이 무엇이라 하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다만, 화산 도문의 양생술이었던 자하공(紫霞功)에서 영감을 받아, 온 생애의 깨달음을 담아낸 심법이 어린 제자의 몸을 통하여 온전한 모습을 갖추길 바랄 뿐이었다.
“후우우우우.”
서 있는 상태, 입공(立功)의 자세로 호(呼)와 흡(吸)을 반복하는 청풍을 보며 선현진인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내공의 전수보다 더 중요한 일. 아들 같은 제자의 심성이다.
제자는 그의 바램대로 너무나도 착하게, 너무나도 올곧게 커 주었다. 아직 한참이나 어리지만 지금까지를 볼 때, 청풍의 선한 품성은 세월이 지난다고 변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 뿐인가.
자하진기의 성취도 기대 이상이다. 욕심도 없는 녀석이 그만큼 성장해 주는 것을 보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제자 복은 있었지.’
이제 슬슬 스스로의 무인 기질에 눈떠가는 것 같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성취에 큰 도움이 되리라.
자하진기는 도가(道家) 심공의 진수로, 상, 중, 하 단전을 고루 발달시키니, 감정이 격해지는 십대의 나이일지라도, 심마(心魔)에 휩쓸릴 일은 없을 터. 길 저편에 완성을 쫓아가는 제자의 모습을 상상하려면, 그야말로 즐거운 생각이 절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1화. 청풍(靑風) 1
청풍(靑風).
화산파(華山派). 초절정고수(超絶頂高手).
선현진인(善賢眞人) 자하신공(紫霞神功) 사사(師事).
동방(東方) 이족(異族) 출신(出身) 추측, 확인불가.
독특(獨特)한 독문무공(獨門武功) 소유(所有).
백호검사(白虎劍士). 청홍무적검(靑紅無敵劍). 화산질풍검(華山疾風劍).
제천회(制天會) 일익(一翼).
대(對) 철기맹전(鐵騎盟戰) 참전(參戰).
대(對) 성혈교전(聖血敎戰) 참전(參戰)......중략(中略).......
한백무림서(韓白武林書) 인물편 제 삼장
화산파(華山派) 청풍(靑風) 중에서
화산의 산세는 웅장함을 자랑한다.
서악(西岳).
중원천하 오악 중, 가장 험한 산으로 정평이 난 대산이다. 온 산이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니, 강인한 기상이 산 전체에 충만하다.
찌르듯 솟아 올린 기암괴석.
깎아지른 듯 뻗어 내린 절벽들.
마치 신비로운 갑주를 지닌 신장(神將)과도 같다.
협곡을 감싸 도는 구름 사이, 다시없는 절경으로 스스로의 무용을 드높이는 산이었다.
고래로부터 도교의 성지(聖地)였던 화산이다.
격하고 화려한 위용을 드러내는 암벽들은 그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지기(地氣)를 뿜어내고 있는 것 같다.
예로부터 화산에 이르려면 오직 그 길은 하나뿐이라 전해진다.
사람이 오르기엔 가파른 산세여서 그렇다. 옥천원 지나 석문에서 시작되는 돌계단은 험하고도 또 험하여 감히 오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범인(凡人)의 접근을 불허하는 산.
화산의 품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마음을 정결히 가지고 구도(求道)하는 심정으로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신비로운 기(氣)가 만산(滿山) 기암(奇巖)들에 가득하여 호기를 절로 일으키는 곳.
도문(道門)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옥녀봉, 연화봉, 운대봉, 낙안봉, 조양봉, 오봉(五峰)들이 그 강건한 기운을 앞 다투어 발산하고 있으니, 도문이 자리 잡지 않았더라면 큰 군벌이나 도적들이 흥성했을 땅이었다.
화산의 도사들은 그와 같은 강건한 기상을 닮았다.
법도가 뚜렷하여 배움의 엄격함을 강조한다.
도사들이란 자고로 수양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법. 그러나 화산의 산 기운은 도사들의 수양을 정신의 수도로만 가두어 두지 않았다.
험악한 산세, 그 산을 닮은 빼어난 기상으로 검(劍)에 뜻을 둔 도인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화산검파는 그렇게 산의 강요로 탄생했다.
조용히 구도(求道)에 전념하는 도인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특질을 지닌 도사들.
넓디 넓은 서악(西嶽)의 셀 수 없는 도량들 중에서, 다 같은 화산의 도문들이되 연화봉 측사면 도관들을 따라, 검파로서 자리 잡은 문파가 바로 화산검파, 화산파다.
무(武)를 추구하는 도인들이 어떤 산중의 도관들보다도 많았던 곳.
각양각색의 무예가 비전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특히 검도(劍道)를 중시했던 것도 화산의 산세가 마치 찌르는 검(劍)의 형상을 지녔기 때문이었을지.
절도와 극기를 먼저 생각하는 검문, 화산파다.
무당파와 함께 구파의 수위를 넘본다는 강력함은 그와 같이 굳건한 화산의 성정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었다.
연화봉 산 중턱의 한 도관, 취운암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황적색 바위들 사이 사시사철 드리워진 청송은 그 뾰족한 푸른 잎들마저도 바위 색깔처럼 주홍빛일 것만 같다.
깎아지른 절경 아래, 일노 일소, 두 사람은 이제 화산문인으로서 첫 운기토납을 가르치는 한 사람의 사부와 제자가 되어 있었다.
“그래, 더 깊이 들이마시고, 그래, 그렇게.”
어리고도 어린 아이.
느릿느릿 들이마시는 숨과 조심스럽게 뱉어내는 날숨이 귀엽기만 했다.
“혀는 입천장에 붙이고. 여기 정수리와 연결 된다고 생각하거라. 머리 꼭대기 말이다.”
초로의 도인이 어린 제자의 백회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속눈썹 긴 커다란 눈을 굴리며 사부의 동작, 사부의 말 하나하나를 따라가는 아이의 얼굴엔 순수함만이 가득했다.
“세상 모든 것들은 기(氣)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유형만물의 비롯됨은 기(氣)에 있으니, 스스로의 안에 있는 기(氣)를 느끼는 것이 첫째요, 다른 사물 안에 있는 기(氣)를 느끼는 것이 두 번째다. 천지간에 충만한 기(氣)를 끌어 쓰며 음과 양, 만재(萬在)의 실체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곧 운기(運氣)다.”
선현진인.
달리 무검진인이라 불리는 이.
화산파는 고래로 검(劍)을 숭상하는 검문으로 이름 높은 바, 그러나 그와 같은 전통을 거부하며, 병기를 불신하고 오직 순수한 내력과 육신의 힘만을 고집하던 장로가 그였다.
“운기를 내력으로 담아내어, 온 몸에 조화의 기운을 불어 일으킬 수 있다면, 맨손으로도 능히 도검을 상대할 수 있으며,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다. 만사(萬事)에 물러섬이 없음이라.......”
잔잔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의 앞에 어린 제자의 맑은 눈빛이 박혀 들었다.
“청풍아. 이 사부의 말이 어려우냐.”
“네에......”
조그맣게 대답하는 어린 제자, 청풍.
이제 겨우 다섯 살. 또릿또릿한 이목구비에 계집아이의 그것처럼 도톰한 입술을 지닌 아이다. 선현진인의 만면에는 보기 좋은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그러니까, 이 사부가 시키는 대로 숨쉬기를 계속하다보면 나쁜 도적들도 때려잡을 수 있고, 산속 무서운 맹수들도 물리칠 수 있다는 이야기란다. 천천히 천천히........그렇지. 그렇게 차분하게 하는 것이야.”
선현진인은 서두르지 않았다.
제자를 받은 이상,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남겨주면 되는 것이다.
검(劍)을 버리고 얻은 기(氣)다.
지금이야 정무제자도, 매화권사도 생겨나, 검법 이외의 길도 제법 정착되고 있다지만,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선현진인이 배우던 그 시절, 화산검문에서 검을 쥐지 않았다는 것은 그야말로 특이한 사실.
무검진인이란 칭호조차도, 사실은 그 안에 다른 장로들의 조롱기가 묻어있지 않았던가.
은연 중 있었던 멸시와 천대를 기억하고 있는 선현진인에게 자하진기(紫霞眞氣)를 전수할 제자가 생겼다는 것은 그야말로 일생 일대의 천명을 부여받은 것에 다름이 아니었다.
“사부님, 숨이 차요.”
“어허! 운기하는 와중에 입을 열다니! 처음부터 다시 하자. 구결이 어떻게 된다고?”
“양중음생(陽中蔭生) 조화교원(造化郊原) 흡기단전(吸氣丹田) 진원백회(眞元百會)요.”
“그래. 그래도 한 번 이야기 해 준 것은 잃어버리지 않는구나. 하지만......무슨 뜻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
“네. 사부.”
“이제 차차 알아가자꾸나. 숨쉬는 것은 본래 스스로 느끼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쉬어야 올바른 숨쉬기라 할 수 있단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진기를 이끄는 구결이 저절로 일어날
수 있도록 마음을 다 해보자. 알았지?”
“네.”
선현진인을 올려보는 어린 청풍의 두 눈에는 사심 없는 신뢰만이 가득했다. 함박웃음 지어내는 청풍의 입가에 선현진인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담겨든다.
내공(內攻)과 기(氣), 그 궁극을 향한 자하신공의 길.
올라선 두 노소의 첫 발걸음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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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따라 부는 화산의 황적색 바람은 아이를 소년으로 만들고, 사부의 얼굴에 자그마한 세월의 고랑을 새겨 놓았다.
화산파 제자의 초입, 보무제자가 된 청풍은 처음으로 친구들을 사귀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새로운 무공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팡! 파팡!
“이크!”
비형권에 이은 이형권.
보무제자에게는 기본공을 가르친다.
같은 보무제자인 아평은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소년, 십 이세 어린 나이에도 초식 이해가 탄탄한 편이었다.
파악!
아평이 펼친 이형권 슬각초에 다리를 걸려버린 청풍이다. 주저앉은 그의 얼굴, 순진해 보이는 웃음이 피어났다.
“또 졌네. 아평은 정말 강하구나.”
패배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아평보다 한 뼘은 더 큰 키에 긴 속눈썹, 수려한 눈매를 지녀 그 누구보다도 돋보이는 외모였음에도 실력과 심성은 나약하다 느껴질 만큼 내세울 것이 없었다.
“칫, 넌 진 것이 분하지도 않냐!”
청풍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면서, 얼굴 찡그린 아평이 핀잔을 던져 왔다.
“분할 것이 뭐가 있어? 실력이 모자라 진 것인데.”
“에고. 무슨 말을 하겠냐.”
청풍.
둥글둥글하여 승부욕이란 찾아보기 힘들다. 절도와 무예를 강조하는 화산파의 제자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성정이라, 도무지 눈에 뜰 바가 없었다. 아니, 비무만 하면 매번 지고 있으니, 도리어 주목받을 정도라 할까.
“오늘 수련도 다 끝났으니, 가 볼게.”
“또 그 심범 익히러 가는 거야?”
“응.”
“우리 사부님이 그러시는데, 무공 수련은 그렇게 내공에만 치우쳐서는 안 된대.”
“응.”
“무슨 대답이 그러냐? 우리 사부님께선 내공이랑 초식이 항상 같이 해야 되는 것이라 하셨어.”
“난 잘 몰라.”
“거 봐. 앞으로는 연습을 좀 해. 맨날 이기는 것도 미안하단 말야.”
얼굴에는 은근한 자부심. 그만한 나이에 어울리는 감정이었다.
“그래도, 난 사부님께서 시키는 대로 할 거야.”
“그러다가 끝까지 나 못 이길걸?”
어린 아이다운 도발이다. 그러나 청풍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괜찮아. 무공은 누구한테 이기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하셨어. 사부님은.”
제법 자신 있는 얼굴로 대답한다.
의지가 굳은 것인지,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함에서였는지.
아마도 후자일 듯 하다. 청풍은 아평의 말이 도발인지조차 알지 못할 만큼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갈게!”
아평과 다른 제자들이 사부들을 찾아, 또는 그 자리에 남아 수련하는 것을 뒤로 한 채, 청풍은 연화봉 아래쪽을 향해 걸음을 빨리 했다.
팍! 파팍!
가파르기 짝이 없는 산길이었지만, 내달리기 시작한 청풍은 움직이는데 거침이 없다. 비무 수련 때의 어설펐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지족조원(地足造源), 공신교통(空身交通).’
한발 나아갈 때, 착지할 때, 다시 몸을 날릴 때.
청풍은 오직 스스로의 호흡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호흡과 축기. 발산과 수렴.
자하진기.
내공수련이다.
초식은 배재한다. 비형권과 이형권을 배우며 비형보, 이형보를 익혔지만, 그 보법을 따르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내력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긴다. 첫 심법 수련 때부터 사부님께 누누이 들었던 말, 생활 자체가 자연스럽게 내공 수련으로 녹아 들어가야 한다는 것.
청풍에게 보무제자로서 받는 수련은 어디까지나 어쩔 수 없이 하는 부수적인 훈련에 지나지 않았다.
오직 내공만을 고집하며 비형권과 이형권은 그닥 열심히 연마하지 않으니, 다른 제자들과는 차이가 날 수 밖에.
내공만큼은 꾸준히 연련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쓸 수 있는 형(形)을 갖추지 않았으니, 비무 수련에서 이길 수 없었던 것도 기실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사부!”
“왔느냐.”
화산파 장로들의 거처 중 가장 초라한 자하암, 선현진인은 온화한 미소로 청풍을 반겼다.
“이형권은 어땠냐? 오히려 비형권보다는 쉽지?”
“음.......예. 다른 제자들은 이형권이 더 어렵다고 하던데요.”
그럼 그렇다는 듯 선현진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공의 차이야. 이형권의 권형. 이해는 잘 가지만, 손은 잘 안 따를 거야. 그렇지?”
“예, 맞아요. 그것이 좀 이상해요.”
“이상할 것이 무에 있느냐. 연습을 못 하게 했으니 손에 익지를 않은 것뿐인데. 그럼, 대련도 또 졌겠구나. 상대는 누구였지?”
“예. 사부, 아평한테요. 아평은요, 정말로 무공에 재질이 있나봐요.”
“허헛. 그것은 재질 때문이 아니라, 연습의 차이라니까. 네가 밤낮으로 이형권, 비형권을 연마했으면, 못 이겼을 것 같으냐?”
“음........그러니까.......”
“왜 대답을 못해? 질 것 같아?”
“하지만 아평은 정말 강해요. 벌써부터 선검수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걸요.”
선검수는 육력을 시험하는 운대관을 거친 보무제자가 얻는 칭호이다. 선검수가 된 후, 천화관을 넘으면 평검수에 이를 수 있고, 소요관, 오용(五勇) 사현(四賢)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하게 되면, 비로소 모든 제자들의 목표인 화산 매화검수가 될 수 있다.
매화검수.
욕심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청풍에게조차도, 그것은 무척이나 설레는 칭호일 수 밖에 없었다.
“선검수?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자하진기나 꾸준히 수련하거라. 네 내공은 누구 못지 않아. 벌써 자하진기 일단공에 이르렀으니, 이 사부보다 이십년은 빠른 셈이니까.”
“그래도........”
머뭇거리는 청풍의 모습. 선현진인이 얼굴을 가까이 하며 제자의 뒷 말을 재촉했다.
“자꾸.......지니까.......”
“자꾸 지니까, 기분이 나쁘다?”
“조, 조금이요.”
화들짝 놀란 듯, 즉각 덧붙이는 청풍이다.
그 얼굴에 선현진인이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허허허허. 이제 조금은 나이를 먹는 모양이로구나!”
호승심.
당연히 생길 수 있는 감정이다. 마냥 어린 아이일 것으로만, 아니, 아직까지도 어리기 짝이 없는 제자도, 슬슬 무인으로서의 자각을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풍아야, 잘 들어라. 아직은 연단과 축기다. 조급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발경은 아직 일러. 네 몸에 쌓인 진기는 약하지 않다. 조절도 못하면서 함부로 사용했다가는 큰일이 난다. 비형권이나 이형권의 발경만으로도 위험해. 이제 겨우 태을기나 구소공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과는 다르다. 이 사부가 초식 수련을 안 시키는 이유는 그래서야. 알겠지?”
“예.”
무검(無劍) 진인, 사부의 이름을 조금도 부끄럽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청풍이다. 소년에게 있어 무검의 내공론(內攻論)은 그것을 펼치는 사부와 함께 탐구하는 신앙과도 같았다.
“자, 다시 시작하자꾸나. 누누이 말하는 것이지만 내공과 진기는 강한 믿음에서 나오는 법이다. 기(氣)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가능하다고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게다.”
“예, 사부.”
소망하고 구하는 만큼의 길이다.
굳이 제자, 청풍을 뛰어난 고수로 만들려고 하거나, 모두에게 인정받게 만들려는 생각은 특별하게 해 본 적이 없다.
무검진인, 선현진인 자신의 삶이 그래 왔기 때문이다.
내공에서 이룩한 바를 제대로 평가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것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기(氣)를 쫓아 자신을 완성하는 길.
사심 없는 무한지로일진데, 다른 이들이 무엇이라 하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다만, 화산 도문의 양생술이었던 자하공(紫霞功)에서 영감을 받아, 온 생애의 깨달음을 담아낸 심법이 어린 제자의 몸을 통하여 온전한 모습을 갖추길 바랄 뿐이었다.
“후우우우우.”
서 있는 상태, 입공(立功)의 자세로 호(呼)와 흡(吸)을 반복하는 청풍을 보며 선현진인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내공의 전수보다 더 중요한 일. 아들 같은 제자의 심성이다.
제자는 그의 바램대로 너무나도 착하게, 너무나도 올곧게 커 주었다. 아직 한참이나 어리지만 지금까지를 볼 때, 청풍의 선한 품성은 세월이 지난다고 변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 뿐인가.
자하진기의 성취도 기대 이상이다. 욕심도 없는 녀석이 그만큼 성장해 주는 것을 보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제자 복은 있었지.’
이제 슬슬 스스로의 무인 기질에 눈떠가는 것 같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성취에 큰 도움이 되리라.
자하진기는 도가(道家) 심공의 진수로, 상, 중, 하 단전을 고루 발달시키니, 감정이 격해지는 십대의 나이일지라도, 심마(心魔)에 휩쓸릴 일은 없을 터. 길 저편에 완성을 쫓아가는 제자의 모습을 상상하려면, 그야말로 즐거운 생각이 절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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