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백호검(白虎劍) 5

조회수 13 15세 이상 이용가 등록 2026.08.19
10화. 백호검(白虎劍) 5


“보통 준비를 철저히 한 것이 아닙니다. 중턱에 지원 병력인 철기(鐵騎)들이 기다리고 있더랍니다.”
“철기들이라.”
“요사한 계집과 그 무리들을 철통같이 수호하면서 도주하더군요.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렇구나.”
의식 저편으로부터 아득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다.
‘목영진인이신가?’
목영진인, 그리고 또 하나가 더 있다.
“워낙에 철두철미한 놈들이라.......다만 강호에서 종적을 찾을 수 있도록, 곧바로 추적을 붙여 놓았습니다.”
“어련히 알아서 잘 했을꼬. 그보다 다친 듯한데, 상처는 괜찮은가?”
“예? 아, 예. 괜찮습니다.”
목영진인의 말투에는 공손함과 함께 조심스러움이 함께 하고 있다.
“누가 있어, 네게 손해를 입힐 수 있었을지. 철기의 무리들 중에도 고수가 있었으렸다.”
“아닙니다. 제 잠시 불민하여 흐트러졌을 따름입니다.”
‘누굴까.’
누군지 모르겠다. 얼마나 높은 분이실까. 그 음성에서 일찍이 느껴보지 못한 선기(仙氣)가 우러나온다.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깨어나는 모양이로군. 조금 더 쉬도록 하거라.”
세월이 세겨진 늙은 손이다. 다가와 수혈을 짚는 그 손에서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의식이 끊기고, 또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이 돌아오면서 처음으로 느낀 것은 등에 닿는 감촉이 부드럽다는 사실이었다.
맨 바닥이 아니다. 침상 위, 건물 안이었다.
“백호는 골육을 손상시킨다. 진기가 다 고갈되었는데에도 살아있구나. 이런 것은 처음 보았다.”
“이 상태에서 더 나아지지도, 그렇다고 더 나빠지지도 않고 있습니다.”
“받아들이고 있은 게다. 백호검이 이 아이를 그 주인으로 인정한 모양이로다.”
선기(仙氣) 가득한 음성 속에서는 지고한 연륜이 묻어 나오고 있다. 그 목소리 깊은 곳, 오랜 경험 속에서도 겪어 본 적 없다는 의아함이 낮게 깔려 있었다.
“누구의 제자라 하였던가?”
“선현의 직전이었다고 합니다.”
“선현이라.......과연........”
사부님께 가지는 호감이 느껴졌다. 지금껏 보였던 다른 장로들의 반응과는 다르다. 진실로 궁금하다. 대체 누구실까.
“사신검 중 백호검만 남았구나. 목영. 그 사상은 익히 알고 있었던 바이다만, 사방신검은 예사의 보검이 아니었도다. 가벼이 여긴 것은 실수라고 네 아니 말할 수 없겠다.”
“참오하고 있습니다.”
잠시의 침묵.
가라앉는 공기가 점차 깨어나고 있는 청풍의 정신을 무겁게 내리 눌렀다.
이윽고 두런 두런 들려오는 현기(賢氣) 어린 목소리.
청풍은 다시금 의식을 놓아 버렸다.

“원로원을 소집하라.”
“원.......로원을........말씀이십니까.”
“조양봉에 제자들을 보내라. 낙안봉에도. 원로원 뿐 아니라 도문(道門)과도 상의를 해 봐야 할 일이다.”
매화검신. 옥허진인.
목영진인이 마주한 인물이다. 원로원의 소집,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목영진인이다. 원로원과 도문이 가지는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화산 검문.
원로원.
그리고 화산 도문.
연화봉 정상에 위치한 화산 검문은 도가성지 서악 화산에 자리 잡은 수많은 도가 일파 전체로 따지자면, 자그마한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산을 닮은 강인한 도사들.
화산 검문이 존재해 온 것은 수백 년, 어쩌면 그 보다도 전부터다.
하지만 제자들의 지위를 구분하며, 수많은 속가 제자들을 받아들이고, 크게 중흥하게 된 것은 기껏 수십 년에 지나지 않았다.
원 시대. 압제와 탄압 속에서 구파의 암흑기를 어렵사리 버텨낸 화산파다.
반원의 기치를 올리는 강인한 도사들을 수없이 배출하고, 또 잃어 버렸던 화산검파가 그 규모를 확장시켜 무림 거파로서 그 이름을 꽃피우게 된 것은 당금의 천화진인 대에 이르러서였다.
천화진인.
속가 제자들을 무한정 받아들이고, 천하 인재들을 끌어 모아 무공을 연구하니, 화산검파가 띄게 된 성격은 도문(道門)이라기보다 패주(覇主)에 가까운 무파(武派)라. 검도(劍道)를 좇아가던 원로 도사들 사이에서 이에 대한 불만이 생겨난다.
검(劍)을 추구하지 않는 도인(道人)들이 떨어져 나오고, 높은 연배의 장로들이 연화봉을 떠나 조양봉에 자리 잡았다.
화산검문, 화산파의 특화다.
수십 리 대산(大山), 봉우리가 달라지니 왕래가 드물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서로 간에 알 길도, 관심도 없다.
전대, 전전대의 고수들. 추측키 어려운 선인들이 즐비할 법도 한데, 이와 같은 적습에도 나타나지 않았음에는 그와 같은 비사(秘事)가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원로원 소집의.......안건(案件)은 무엇입니까.”
“저 아이를 하산(下山)시키는 것에 관해서이니라.”
“하산........이라면........”
“백호검과 함께 강호로 내보낸다 함이다.”
“가.......강호로 말입니까.”
“그래.”
“장문인.......장문 사제가........반대할 것입니다.”
“그렇겠지.”
“허면.....원로원과 도문은........”
“원로원과 도문이 결정한 사안은 장문인으로서도 바꿀 수없다. 그것이 약조한 것 아니었더냐.”
목영진인이 고개를 설레 설레 저었다. 장문사제가 가만히 있을까. 그토록 중요한 사안, 중요한 물건이라면 장문인, 천화진인이 손에서 놓을 리가 없다. 어떻게든 손에 쥐고 있으려 하리라.
“본디, 사방신검을 쥔 자들은 큰 위험을 겪는다. 검이 내뿜는 기운이 혈맥을 타고 흐르니, 상충을 일으켜 내상을 입히는 도다. 내력이 약한 자는 종국에 내력이 고갈되어 죽음에 이르고, 내력이 충만한 자는 본성을 잃고 검에 휩쓸리게 된다. 저 아이는 어느 쪽도 아니다. 검과 상응하여 안정을 이루고 있는 바, 이는 검이 제 주인을 찾았다고 볼 수밖에 없느니라”
“그렇기에 더욱......”
“천화를 잘 알고 있구나. 천화는 탐심이 많다. 오직 화산의 위상과 중흥을 온전하게 하려는 마음에 그냥 두고 보았다만, 이번에는 천화의 뜻대로 둘 수가 없구나.”
매화검신의 눈이 오묘한 현기를 머금는다. 세상 밖의 이치를 설명하려는 듯. 그의 음성에도 선정(仙瀞)한 기운이 깃들었다.
“천화라면 백호검을 풀어 놓을 리가 없다. 이 화산에 잡아둔 채, 그 힘의 비밀을, 저 아이가 백호검을 잡고도 무사한 이유를 알아내려 할 것이리라. 하지만, 그것은 알려고 한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물(神物)의 주인이란 인력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닐진저, 저 아이가 백호의 주인으로 내정되었다면 그대로 천하에 내보내는 것이 옳은 일이다. 저 아이로 하여금 나머지 세 검을 찾아오도록 하는 것도 좋겠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위험하다. 그러나 위험한 것은 외부보다, 백호검 그 자체이니라. 다만, 저 아이의 몸에는 알 수 없는 내력이 존재하고 있으니, 그것이 그 위험을 막아 주련지도 모른다. 그 내력이란 제 사부 선현이 남겨준 것일 터, 선현은 본디 어려서부터 재능이 있었고, 나아가 도문과도 스스럼없는 인덕이 있었도다. 그 천품이 그 제자로 하여금, 백호와의 연을 닿게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선현이........그 정도였던지요.”
“진인은 멀리 있지 않아 스스로 드러나지 않는다. 두고 두고 배워야 할 자세다.”
긴 이야기, 매화검신 옥허진인은 한 번 더 목영진인을 응시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백호검은 그 스스로 선택한 주인을 섬기고, 지킨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사방신검은 서로를 부른다고들 하지. 저 아이의 하산 문제, 이 일은 도문과 원로원이 맡는 것으로 하겠다. 사방신검은 본디 연화봉, 검문의 물건이 아니다. 기실,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이 화산의 물건도 아니었느니라. 천화, 장문과 장로들은 화산을 습격한 흉수들의 추적에 전념하여라. 사방신검의 회수는 원로원 책임 하에 해결하겠다.”
“알겠습니다.”
단호한 말에 깃든 매화검신의 의지다.
그가 그렇게 정했다면 그러해야 하는 것.
화산을 통틀어 최고의 고수로 추정되는 옥허진인이다.
검문과, 도문, 그리고 원로원과의 갈등이 그 밑에 깔려 있더라도, 목영진인은 더 이상 감히 말을 덧붙일 수 없었다.
매화검신의 존재는 화산에서 신화,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목영진인은 아직까지도 한 손에 백호신검을 걸치고 누운 청풍 쪽을 바라보았다.
화산 본산에 행해진 적습과, 오래된 신검의 전설.
세월의 부침과 화산파 내부의 갈등까지.
목영진인은 느낀다.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그리고 그는 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이 그가 아니라, 아직 어리다고밖에 할 수 없는 한 명의 보무제자임을.
서산 연꽃 바위의 황적색과 서방 일곱별의 백색이 함께하는 바람.
천하에 풀려난 사신(四神)의 검, 첫 번째가 엮어낼 바람이 아직 멀리, 이제와 이 앞에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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