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질투 1
Pride
1화. 질투 1
1-1
"뭐야, 너 브라콤이냐?"
............결정타였다.
그 한마디가.
그냥 웃으며 하는 농담 정도였다면 달랐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웃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난처럼 진짜 브라콤한테는....
그런건 엄연히 상처다....
"하하- 뭘 그런 말에 신경쓰냐, 사내녀석이. 잊어버려, 원래 저러니까. 그리고 다 그렇게 씹히면서 친해지는 거라고-"
"게다가 요즘 이성현이 심기가 안좋아서 저러는 거니까, 신경쓰지마."
웃어 제끼며 나를 위로하고 충고하던 다른 연기자들의 위로 따위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난 소탈한 편이어서 그다지 누가 잔소리를 하고 욕해서 웃어넘기는 편이었지만, 그것만은 절대로 잊을 수가 없었다.
"너 연기 많이 늘었다? 짜식, 빨리도 크는구나"
"선배님 오늘 한잔 어때요?"
"야야, 내가 그렇게 한가한 줄 아냐? 그리고 너도 오늘 촬영 아직 안 끝났잖아?"
"에, 그거 금방 끝날거 같은데요? 오늘은 많이 찍지도 않는데-"
"쯧쯧- 네가 아직 모르는 구나. 재수없으면 하루 투자해서 씬 하나 간신히 찍는 경우도 있단다 얘야"
그 선배의 말은 저주처럼, 그대로 들어맞았다.
그날 주연인 그 누구가 몇 시간을 늦는 바람에 나와 그가 함께 나오는 장면은 계속 찍을 수가 없었던 거다.
"미안합니다."
그는 삭막한 표정으로 그 한마디를 말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연기를 해냈다.
화가나고, 짜증났던 나는 다른 스탭들이 군소리 하나 하지 않으니 참을 수밖에...
"계속 저 상태인데?"
"그래도 언제나 완벽하니 뭐-"
"하긴 제일 가까웠고, 자기도 적잖케 피해를 입었으니 무시할 수가 없지."
"하지만 오래 가는 것 같지?"
"응-"
솔깃한 이야기를 놓칠 수는 없었다.
"누구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거에요?"
"에?"
"너 모르냐?"
"하긴, 이 녀석이 데뷔하기 전의 일이잖아."
"그런가......."
그들은 처음의 망설임과는 달리 아-주 상세히 알려주었다.
"다시 이성현이 복귀했고 잘 나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신은성이 죽은 거야."
"음, 정말 갑작스러웠지. 뭐, 제일 가까운 친구였으니 오죽했겠어."
"처음엔 복수한다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게 벌써 1년이 훨씬 넘은 일인데, 거의 2년 돼가지? 아무튼 요즘 와서 이상해 졌다니까"
"추모앨범 나오고부터 일껄?"
"컷!"
핫. 또 실수다.
이번에는 도저히 눈뜨고 그를 쳐다볼 수가 없었다.
엄청 싸늘한 표정을 하고 노려보는데....
"너 - 바보냐?"
그대로 송곳이 가슴팍에 콱 박혀버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비굴하게 그와 스탭들에게 사과를 했지만 붉어진 얼굴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음....사실 그 전에 다른 스탭들에게는 몇 번의 실수에도 웃으며 사과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들도 그냥 귀엽게 봐주고 넘어갔었지만, 이 사람 앞에서는 웃을 수가 없다.
왜 내 주무기가 통하지 않는 것이냐...
"형, 무슨 일이세요?"
간신히 끝마쳤을 무렵 윤서 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이제 끝났구나. 연락이 안되서 이렇게 찾아왔다. 혹시, 수인이 어제 집에 들어왔니?"
"어? 우리 형이요? 휴가갔는데-"
"어디로?"
"글쎄요. 워낙에 그런거 잘 말 안하고 다니는 사람이라.....엄마는 어디 일본에라도 간줄 알던데...왜요? 급한 일 생겼어요?"
"아, 아니."
윤서형의 모습은 상당히 초췌해 보였다. 평소라면 눈이 부실정도로 자신감에 가득찬 사람인데, 오늘은 눈가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저기 혹시 형한테 연락오면 연락처좀 알아놔. 내가 좀 알아볼게 있어서 그러거든."
"네. 그러죠. 아, 형 안바쁘시면 저랑 저녁하시죠."
"아, 그럴까?"
띠리리리-
"여보세요"
전화를 받던 형은 이내 나를 돌아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다. 회사에 일이 생겼어. 다시 들어가봐야 할거 같아."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네요. 그럼 가보세요."
"그래, 나중에 꼭 연락줘라"
형을 보내며 문득 조금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예전에도 저렇게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수인이 형이 무려 4개월 동안이나 연락이 두절되었던 거다. 나중에 까맣게 그을려 돌아오긴 했는데, 그때 윤서형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혹시 우리 형이 무슨 대형 사고라고 친 줄 알았다. 물론 아직도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때 이후로 형이 의외로 방랑 기질이 있는 거라고 좋게 여기기로 했었다.
"너도, 그 과냐?"
"에?"
한참 생각하고 있을 때 바로 뒤에서 익숙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다 보았을 때, 경멸을 가득 담은 눈이 있어 처음보다 더 당황했다.
"저 무슨-"
"젊은데 그렇게 쉽게 살려고 하지마. 네가 진짜 연기자라면"
그렇게 내뱉고 사라지는 그를 보며 참으로 할말을 잃었다.
도대체 뭔 소리야?
사실 이런 정도의 갈굼에는 익숙하다.
뭐 허구헌날 형에게 당해본 이력이 있어서...
사실, 난 지금도 의문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이 좋았다는 거다. 끊임없이, 닮고 싶고, 배우고 싶고 그래서 나도 형처럼 되고 싶었는데......생각해보면 난 약간 마조히즘적 성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왜 내가 이 사람에게 이런 경멸을 받아야 하는 거지?
보통 때라면, 다른 사람이라면 쉽게 넘어가겠지만 이 사람과 관련된 문제는 절대 쉽게 넘어가지지가 않는다.
하나하나 그 인간의 반응에 예민해지고, 심지어 상처까지 된다.
"드라마요?"
"그래, 너 운이 정말 좋다. 그 드라마 담당 작가가 널 지목했어. 신인이라 주변에서는 말리는 분위기였는데, 그 작가가 네 이미지가 완벽하게 그 역에 맞는다고 꼭 너를 써야겠다고 주장했데"
크흑.
이런 감격이...
윤서형이 예전에 다리를 놓아주었던 역은 차마, 양심상 할 수가 없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들으면 별것도 아닌거 가지고 그런다고 우습게 여겼겠지만 나로서는 단순의 양심의 문제뿐 아니라, 이건 처음으로 수인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시도한 일이었다. 윤서형의 도움을 받는다면 결국 도로아미타불이니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다시 한번 내게 기회가 온거다!
"에? 누구랑요?"
"이승현이랑 함께야. 이번 출연은 새 드라마 홍보용이니까."
"아......"
토크쇼에 처음 출연하는 것도 무지 부담스러운데 그와 함께 라니.
"너 이승현 무섭냐?"
"네?"
"유난히 민감한거 같아서"
"네, 좀 어려워요. 그 선배"
"걱정마. 아직 서로 낯설어서 그런거니까. 또 뭐 너야 워낙에 성격이 좋으니까 조금 더 가까이 지내다 보면 달라질 수 있을 거야."
메니저의 위로는 참 형식적으로 들렸다.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나온 결론이니까. 분명 그는 나를 아주 나쁘게 판단해 버린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분명하게 차별을 두지는 않을 것이다.
"두분 함께 영화도 찍고 있는 걸로 아는데요. 어떠세요 호흡은?"
"네,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런 대로 잘 해온거 같네요."
"한수민씨는 처음부터 이성현씨 같은 대스타와 연기하려니 어려움도 있었을 거 같은데요. 어땠어요?"
"네, 사실 같이 연기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비교가 되는데다가 너무 연기를 잘하시니 조금 얼기도 하고, 실수도 많이 했습니다. 뭐, 아직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선배님이 많이 도와주셨으면 좋겠 구요"
"혹시 목표로 하는 배우라도있나요?"
"하하,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안소니 퀸입니다. 25시라는 영화를 보고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받았거든요. 그런 연기를 해낼 수 있다면 정말 바랄게 없을 거 같습니다."
"네, 그럼 이성현씨 선배로서 후배에게 충고라든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지금 해주시겠어요?"
"....글쎄요. 역시 한수민씨가 정말로 안소니 퀸같은 연기자가 되고 싶다면 현재로서 필요한 것은 자신감과 프라이드겠죠. 좀더 자신이 배우라는 것에 프라이드를 가진다면 훨씬 발전적일 겁니다."
좋은 말이지.
물론 프라이드 중요해.
하지만 이 말을 들은 내 느낌은 단순히 좋은 충고가 아니라 뭔가 비꼬는 느낌이었다.
애기했던가?
난 예민한 편 아니라고.
하지만 이런 적대적인 감정에는 누구라도 예민해진다고 생각해. 나처럼.
1-2
"오늘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은 거야?"
"시끄러. 내 기분 늘 이렇잖아."
"무슨 일 있었냐?"
"쳇, 이게 다 너 때문이다."
"뭐가?"
"내가 괜한 피해의식 생긴거 말이야."
아직도 적응이 안되는 얼굴을 하고 살짝 웃어버리는 녀석을 보며 그냥 한숨이 나왔다.
"그래서 곡은 쓸 생각이 있다는 거구나?"
"응. 그래야지."
조금은 밝아 보인다.
"너한테 매번 미안하지만 부탁해."
"알았어. 알아봐 줄게."
"고맙다."
"그런데...............넌 정말.....그걸로 된거야?"
"응?"
"노래하고 싶잖아."
"................."
"................"
"아, 나 이만 가볼게."
피하는 거냐....
"약속 있어? 그 사람이랑?"
"응"
"쳇"
"너무 미워하지마."
웃으며 일어서는 은성이를 배웅해 주며 내심 내가 왜 혼자 심통을 내는지 조금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자주 웃게 되었는데...........
그러고 보니, 낮의 그 녀석이 생각이 났다.
그 녀석도 늘 웃지. 항상 누구에게나...
게다가 성격이 좋은 건지 누구와도 친했다. 그 녀석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퍼트리던 녀석들 조차.
하지만 내 앞에서는 얼어붙어 버린다.
"저에게 프라이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신거 같은데 뭘 보고 그렇게 말씀하신거죠? 사실 제가 아직 부족한게 많다는 건 알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바보냐?"
"네?"
"누가 그런 자리에서 진심을 말하겠어. 안 그래?"
조금 황당하다는 얼굴.
"뭐 네 연기가 아주 못 봐줄 만한 건 아니야. 하지만 이건 연기 이전에 네 가치의 문제니까."
"가치라뇨?"
"난 말이지, 기본적으로 자신을 싸구려 취급하는 인간들이 싫어. 그리고 목적을 위해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자신을 그런 수단으로 사용하는 인간도 싫어."
"제, 제가 그렇다는 말이에요?"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쉽게 성공하려는 인간들......너도 그런 족속 아니야?"
"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근거? 너 정말 바보구나. 네 형이 SP통신 사장이고, H그룹 사장이 너를 밀고 있다는 건 이 바닥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야. 너만 몰랐다고 할거냐?"
말을 못 하는거 보니, 사실이 맞나보군.
"그런 배경하나 믿고 쉽게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을 때는 재미있었겠지. 하지만 결국은 넌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거야. 네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받기 보다 어떻게든 쉽고 편한 길 택해서 온거니까. 그런 근성을 가졌으니 애초에 그런 빽 조차 없었다면 넌 스스로를 쉽게 팔기도 했을 거야 안그래? 하지만 말이야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 그래서 어이없이 희생당하기도 하고."
뭔가 말을 하려는 것 같지만 충격을 받아서인지 입만 벌리고 어쩔 줄 모른다.
난 그런 모습을 보고 유유히 사라졌고.
순진하긴.
"뭐냐, 왜 후배를 괴롭혀?"
"봤냐?"
"안 볼 수가 없잖아. 너야 워낙에 눈에 띄니까."
"그렇지 뭐."
당연하다는 내 표현에 질렸다는 표정
"너 말야, 문제야."
"뭐가?"
"넌 주로 관심을 괴롭히는 걸로 표현하잖아. 유치하게"
"그래? 내가?"
"그래, 넌 나한테도 처음에 모질게 굴었어."
"그래서 내가 지금도 너한테 모질게 구냐?"
"그런건 아니지. 하지만 그런거 별로 안좋다고. 상대가 네 진심을 몰라줄 수 있잖아."
"모르는 놈이 바보야"
"뭐?"
그렇게 얼빠진 표정 짓지 마라.
"관심 없는 상대에게 그런 충고 해줄 리가 없잖아. 난 말야 저 녀석이 제대로 크라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거라고."
"하?"
"애들한테는 무서운 교사가 필요한 법이지. 더구나 이런 더러운 세계에서는 더더욱 나같이 따끔하게 말해줄 선배가 필요해"
"..너 말야.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그럼 헛소리겠어?"
띠리리리리.
"여보세요? 응 나야"
쳇, 또 그 녀석이군.
너도 불쌍하다. 아무리 사정이 어떻든 간에 어떻게 그런 싸이코한테 넘어가냐....쯧.... 그렇게 당해놓고 말이야.
"시현씨랑 같이 식사 안 할래?"
"뭐?"
"어차피 너도 지금 저녁 먹을 거잖아."
당연히 거절이다...라고 말하려는 순간 뭐 그 인간의 면상을 보고 가끔은 놀려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흔쾌히 승낙해버렸다.
"그러지뭐"
"오랜만이군요, 이승현씨."
"네, 그렇네요."
깔끔한 얼굴.
저 얼굴을 하고서 그런 싸이코 짓을 했단 말이지.
절대 그렇게 생기지 않은 얼굴을 하고 말이야...
하, 저 얼굴을 보면 가끔 그런 확신이 든다. 인간은 절대 외모로서는 판단할 수 없다는 것.
그건 동서고금의 진리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시는 거죠?"
은성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이시현이 나를 보고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제가요?"
예리하긴.
"알고 싶어요?"
"뭐, 글세요, 굳이 알고 싶지는 않지만-"
그럼 알려주지.
"사람은 외모나 인상만으로 판단하기 힘들구나 뭐, 그런 생각이요. 시현씨를 보면 그런 생각이 정말 많이 두는군요"
약간의 의문을 담은 표정. 하지만 역시 영리한 놈이라 금방 알아챈다.
"그렇죠. 당연히 그렇죠. 이승현씨도 그런 면에서 사람들을 많이 착각하게 했을 외모군요"
하?
제, 제길....... 한방 맞았군.
"은성이가 가수 데뷔할 때, 그것 때문에 많이 고생했더군요. 사실, 우습죠. 진짜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다니-"
"그 보석도 이제 사용하지 않으니 아무 소용 없죠 뭐."
역시.....
그의 표정에 말할 수 없이 아픈 감정이 스쳐갔다.
죄책감은 느끼나보지?
"그만둬-"
내 머리를 한 대 톡 때리고 은성이가 앉았다.
"너, 그러지 말랬지."
"내가 뭘-"
"신경쓰지마. 이 녀석 원래 말을 곱게 못하거든"
은성이의 위로에 그는 금새 얼굴이 밝아졌다.
그리고 낯뜨거울 정도로 은성이를 뜨거운 눈으로 보고있다.
바보같은 녀석은 그런 그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화나.
어째서 너는 쉽게 그를 용서할 수 있는 거지?
네가 죽은 줄 알았던 그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가슴아파했는데.....
그런데 그렇게 살아 돌아와서는 한다는 짓이 고작 이런 거냐. 복수도 뭣도 아니고.
그럼 네 인생은 도대체 뭐가 되는 거야?
1화. 질투 1
1-1
"뭐야, 너 브라콤이냐?"
............결정타였다.
그 한마디가.
그냥 웃으며 하는 농담 정도였다면 달랐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웃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난처럼 진짜 브라콤한테는....
그런건 엄연히 상처다....
"하하- 뭘 그런 말에 신경쓰냐, 사내녀석이. 잊어버려, 원래 저러니까. 그리고 다 그렇게 씹히면서 친해지는 거라고-"
"게다가 요즘 이성현이 심기가 안좋아서 저러는 거니까, 신경쓰지마."
웃어 제끼며 나를 위로하고 충고하던 다른 연기자들의 위로 따위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난 소탈한 편이어서 그다지 누가 잔소리를 하고 욕해서 웃어넘기는 편이었지만, 그것만은 절대로 잊을 수가 없었다.
"너 연기 많이 늘었다? 짜식, 빨리도 크는구나"
"선배님 오늘 한잔 어때요?"
"야야, 내가 그렇게 한가한 줄 아냐? 그리고 너도 오늘 촬영 아직 안 끝났잖아?"
"에, 그거 금방 끝날거 같은데요? 오늘은 많이 찍지도 않는데-"
"쯧쯧- 네가 아직 모르는 구나. 재수없으면 하루 투자해서 씬 하나 간신히 찍는 경우도 있단다 얘야"
그 선배의 말은 저주처럼, 그대로 들어맞았다.
그날 주연인 그 누구가 몇 시간을 늦는 바람에 나와 그가 함께 나오는 장면은 계속 찍을 수가 없었던 거다.
"미안합니다."
그는 삭막한 표정으로 그 한마디를 말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연기를 해냈다.
화가나고, 짜증났던 나는 다른 스탭들이 군소리 하나 하지 않으니 참을 수밖에...
"계속 저 상태인데?"
"그래도 언제나 완벽하니 뭐-"
"하긴 제일 가까웠고, 자기도 적잖케 피해를 입었으니 무시할 수가 없지."
"하지만 오래 가는 것 같지?"
"응-"
솔깃한 이야기를 놓칠 수는 없었다.
"누구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거에요?"
"에?"
"너 모르냐?"
"하긴, 이 녀석이 데뷔하기 전의 일이잖아."
"그런가......."
그들은 처음의 망설임과는 달리 아-주 상세히 알려주었다.
"다시 이성현이 복귀했고 잘 나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신은성이 죽은 거야."
"음, 정말 갑작스러웠지. 뭐, 제일 가까운 친구였으니 오죽했겠어."
"처음엔 복수한다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게 벌써 1년이 훨씬 넘은 일인데, 거의 2년 돼가지? 아무튼 요즘 와서 이상해 졌다니까"
"추모앨범 나오고부터 일껄?"
"컷!"
핫. 또 실수다.
이번에는 도저히 눈뜨고 그를 쳐다볼 수가 없었다.
엄청 싸늘한 표정을 하고 노려보는데....
"너 - 바보냐?"
그대로 송곳이 가슴팍에 콱 박혀버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비굴하게 그와 스탭들에게 사과를 했지만 붉어진 얼굴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음....사실 그 전에 다른 스탭들에게는 몇 번의 실수에도 웃으며 사과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들도 그냥 귀엽게 봐주고 넘어갔었지만, 이 사람 앞에서는 웃을 수가 없다.
왜 내 주무기가 통하지 않는 것이냐...
"형, 무슨 일이세요?"
간신히 끝마쳤을 무렵 윤서 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이제 끝났구나. 연락이 안되서 이렇게 찾아왔다. 혹시, 수인이 어제 집에 들어왔니?"
"어? 우리 형이요? 휴가갔는데-"
"어디로?"
"글쎄요. 워낙에 그런거 잘 말 안하고 다니는 사람이라.....엄마는 어디 일본에라도 간줄 알던데...왜요? 급한 일 생겼어요?"
"아, 아니."
윤서형의 모습은 상당히 초췌해 보였다. 평소라면 눈이 부실정도로 자신감에 가득찬 사람인데, 오늘은 눈가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저기 혹시 형한테 연락오면 연락처좀 알아놔. 내가 좀 알아볼게 있어서 그러거든."
"네. 그러죠. 아, 형 안바쁘시면 저랑 저녁하시죠."
"아, 그럴까?"
띠리리리-
"여보세요"
전화를 받던 형은 이내 나를 돌아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다. 회사에 일이 생겼어. 다시 들어가봐야 할거 같아."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네요. 그럼 가보세요."
"그래, 나중에 꼭 연락줘라"
형을 보내며 문득 조금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예전에도 저렇게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수인이 형이 무려 4개월 동안이나 연락이 두절되었던 거다. 나중에 까맣게 그을려 돌아오긴 했는데, 그때 윤서형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혹시 우리 형이 무슨 대형 사고라고 친 줄 알았다. 물론 아직도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때 이후로 형이 의외로 방랑 기질이 있는 거라고 좋게 여기기로 했었다.
"너도, 그 과냐?"
"에?"
한참 생각하고 있을 때 바로 뒤에서 익숙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다 보았을 때, 경멸을 가득 담은 눈이 있어 처음보다 더 당황했다.
"저 무슨-"
"젊은데 그렇게 쉽게 살려고 하지마. 네가 진짜 연기자라면"
그렇게 내뱉고 사라지는 그를 보며 참으로 할말을 잃었다.
도대체 뭔 소리야?
사실 이런 정도의 갈굼에는 익숙하다.
뭐 허구헌날 형에게 당해본 이력이 있어서...
사실, 난 지금도 의문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이 좋았다는 거다. 끊임없이, 닮고 싶고, 배우고 싶고 그래서 나도 형처럼 되고 싶었는데......생각해보면 난 약간 마조히즘적 성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왜 내가 이 사람에게 이런 경멸을 받아야 하는 거지?
보통 때라면, 다른 사람이라면 쉽게 넘어가겠지만 이 사람과 관련된 문제는 절대 쉽게 넘어가지지가 않는다.
하나하나 그 인간의 반응에 예민해지고, 심지어 상처까지 된다.
"드라마요?"
"그래, 너 운이 정말 좋다. 그 드라마 담당 작가가 널 지목했어. 신인이라 주변에서는 말리는 분위기였는데, 그 작가가 네 이미지가 완벽하게 그 역에 맞는다고 꼭 너를 써야겠다고 주장했데"
크흑.
이런 감격이...
윤서형이 예전에 다리를 놓아주었던 역은 차마, 양심상 할 수가 없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들으면 별것도 아닌거 가지고 그런다고 우습게 여겼겠지만 나로서는 단순의 양심의 문제뿐 아니라, 이건 처음으로 수인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시도한 일이었다. 윤서형의 도움을 받는다면 결국 도로아미타불이니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다시 한번 내게 기회가 온거다!
"에? 누구랑요?"
"이승현이랑 함께야. 이번 출연은 새 드라마 홍보용이니까."
"아......"
토크쇼에 처음 출연하는 것도 무지 부담스러운데 그와 함께 라니.
"너 이승현 무섭냐?"
"네?"
"유난히 민감한거 같아서"
"네, 좀 어려워요. 그 선배"
"걱정마. 아직 서로 낯설어서 그런거니까. 또 뭐 너야 워낙에 성격이 좋으니까 조금 더 가까이 지내다 보면 달라질 수 있을 거야."
메니저의 위로는 참 형식적으로 들렸다.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나온 결론이니까. 분명 그는 나를 아주 나쁘게 판단해 버린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분명하게 차별을 두지는 않을 것이다.
"두분 함께 영화도 찍고 있는 걸로 아는데요. 어떠세요 호흡은?"
"네,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런 대로 잘 해온거 같네요."
"한수민씨는 처음부터 이성현씨 같은 대스타와 연기하려니 어려움도 있었을 거 같은데요. 어땠어요?"
"네, 사실 같이 연기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비교가 되는데다가 너무 연기를 잘하시니 조금 얼기도 하고, 실수도 많이 했습니다. 뭐, 아직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선배님이 많이 도와주셨으면 좋겠 구요"
"혹시 목표로 하는 배우라도있나요?"
"하하,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안소니 퀸입니다. 25시라는 영화를 보고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받았거든요. 그런 연기를 해낼 수 있다면 정말 바랄게 없을 거 같습니다."
"네, 그럼 이성현씨 선배로서 후배에게 충고라든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지금 해주시겠어요?"
"....글쎄요. 역시 한수민씨가 정말로 안소니 퀸같은 연기자가 되고 싶다면 현재로서 필요한 것은 자신감과 프라이드겠죠. 좀더 자신이 배우라는 것에 프라이드를 가진다면 훨씬 발전적일 겁니다."
좋은 말이지.
물론 프라이드 중요해.
하지만 이 말을 들은 내 느낌은 단순히 좋은 충고가 아니라 뭔가 비꼬는 느낌이었다.
애기했던가?
난 예민한 편 아니라고.
하지만 이런 적대적인 감정에는 누구라도 예민해진다고 생각해. 나처럼.
1-2
"오늘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은 거야?"
"시끄러. 내 기분 늘 이렇잖아."
"무슨 일 있었냐?"
"쳇, 이게 다 너 때문이다."
"뭐가?"
"내가 괜한 피해의식 생긴거 말이야."
아직도 적응이 안되는 얼굴을 하고 살짝 웃어버리는 녀석을 보며 그냥 한숨이 나왔다.
"그래서 곡은 쓸 생각이 있다는 거구나?"
"응. 그래야지."
조금은 밝아 보인다.
"너한테 매번 미안하지만 부탁해."
"알았어. 알아봐 줄게."
"고맙다."
"그런데...............넌 정말.....그걸로 된거야?"
"응?"
"노래하고 싶잖아."
"................."
"................"
"아, 나 이만 가볼게."
피하는 거냐....
"약속 있어? 그 사람이랑?"
"응"
"쳇"
"너무 미워하지마."
웃으며 일어서는 은성이를 배웅해 주며 내심 내가 왜 혼자 심통을 내는지 조금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자주 웃게 되었는데...........
그러고 보니, 낮의 그 녀석이 생각이 났다.
그 녀석도 늘 웃지. 항상 누구에게나...
게다가 성격이 좋은 건지 누구와도 친했다. 그 녀석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퍼트리던 녀석들 조차.
하지만 내 앞에서는 얼어붙어 버린다.
"저에게 프라이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신거 같은데 뭘 보고 그렇게 말씀하신거죠? 사실 제가 아직 부족한게 많다는 건 알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바보냐?"
"네?"
"누가 그런 자리에서 진심을 말하겠어. 안 그래?"
조금 황당하다는 얼굴.
"뭐 네 연기가 아주 못 봐줄 만한 건 아니야. 하지만 이건 연기 이전에 네 가치의 문제니까."
"가치라뇨?"
"난 말이지, 기본적으로 자신을 싸구려 취급하는 인간들이 싫어. 그리고 목적을 위해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자신을 그런 수단으로 사용하는 인간도 싫어."
"제, 제가 그렇다는 말이에요?"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쉽게 성공하려는 인간들......너도 그런 족속 아니야?"
"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근거? 너 정말 바보구나. 네 형이 SP통신 사장이고, H그룹 사장이 너를 밀고 있다는 건 이 바닥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야. 너만 몰랐다고 할거냐?"
말을 못 하는거 보니, 사실이 맞나보군.
"그런 배경하나 믿고 쉽게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을 때는 재미있었겠지. 하지만 결국은 넌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거야. 네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받기 보다 어떻게든 쉽고 편한 길 택해서 온거니까. 그런 근성을 가졌으니 애초에 그런 빽 조차 없었다면 넌 스스로를 쉽게 팔기도 했을 거야 안그래? 하지만 말이야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 그래서 어이없이 희생당하기도 하고."
뭔가 말을 하려는 것 같지만 충격을 받아서인지 입만 벌리고 어쩔 줄 모른다.
난 그런 모습을 보고 유유히 사라졌고.
순진하긴.
"뭐냐, 왜 후배를 괴롭혀?"
"봤냐?"
"안 볼 수가 없잖아. 너야 워낙에 눈에 띄니까."
"그렇지 뭐."
당연하다는 내 표현에 질렸다는 표정
"너 말야, 문제야."
"뭐가?"
"넌 주로 관심을 괴롭히는 걸로 표현하잖아. 유치하게"
"그래? 내가?"
"그래, 넌 나한테도 처음에 모질게 굴었어."
"그래서 내가 지금도 너한테 모질게 구냐?"
"그런건 아니지. 하지만 그런거 별로 안좋다고. 상대가 네 진심을 몰라줄 수 있잖아."
"모르는 놈이 바보야"
"뭐?"
그렇게 얼빠진 표정 짓지 마라.
"관심 없는 상대에게 그런 충고 해줄 리가 없잖아. 난 말야 저 녀석이 제대로 크라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거라고."
"하?"
"애들한테는 무서운 교사가 필요한 법이지. 더구나 이런 더러운 세계에서는 더더욱 나같이 따끔하게 말해줄 선배가 필요해"
"..너 말야.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그럼 헛소리겠어?"
띠리리리리.
"여보세요? 응 나야"
쳇, 또 그 녀석이군.
너도 불쌍하다. 아무리 사정이 어떻든 간에 어떻게 그런 싸이코한테 넘어가냐....쯧.... 그렇게 당해놓고 말이야.
"시현씨랑 같이 식사 안 할래?"
"뭐?"
"어차피 너도 지금 저녁 먹을 거잖아."
당연히 거절이다...라고 말하려는 순간 뭐 그 인간의 면상을 보고 가끔은 놀려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흔쾌히 승낙해버렸다.
"그러지뭐"
"오랜만이군요, 이승현씨."
"네, 그렇네요."
깔끔한 얼굴.
저 얼굴을 하고서 그런 싸이코 짓을 했단 말이지.
절대 그렇게 생기지 않은 얼굴을 하고 말이야...
하, 저 얼굴을 보면 가끔 그런 확신이 든다. 인간은 절대 외모로서는 판단할 수 없다는 것.
그건 동서고금의 진리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시는 거죠?"
은성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이시현이 나를 보고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제가요?"
예리하긴.
"알고 싶어요?"
"뭐, 글세요, 굳이 알고 싶지는 않지만-"
그럼 알려주지.
"사람은 외모나 인상만으로 판단하기 힘들구나 뭐, 그런 생각이요. 시현씨를 보면 그런 생각이 정말 많이 두는군요"
약간의 의문을 담은 표정. 하지만 역시 영리한 놈이라 금방 알아챈다.
"그렇죠. 당연히 그렇죠. 이승현씨도 그런 면에서 사람들을 많이 착각하게 했을 외모군요"
하?
제, 제길....... 한방 맞았군.
"은성이가 가수 데뷔할 때, 그것 때문에 많이 고생했더군요. 사실, 우습죠. 진짜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다니-"
"그 보석도 이제 사용하지 않으니 아무 소용 없죠 뭐."
역시.....
그의 표정에 말할 수 없이 아픈 감정이 스쳐갔다.
죄책감은 느끼나보지?
"그만둬-"
내 머리를 한 대 톡 때리고 은성이가 앉았다.
"너, 그러지 말랬지."
"내가 뭘-"
"신경쓰지마. 이 녀석 원래 말을 곱게 못하거든"
은성이의 위로에 그는 금새 얼굴이 밝아졌다.
그리고 낯뜨거울 정도로 은성이를 뜨거운 눈으로 보고있다.
바보같은 녀석은 그런 그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화나.
어째서 너는 쉽게 그를 용서할 수 있는 거지?
네가 죽은 줄 알았던 그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가슴아파했는데.....
그런데 그렇게 살아 돌아와서는 한다는 짓이 고작 이런 거냐. 복수도 뭣도 아니고.
그럼 네 인생은 도대체 뭐가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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