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믿고 싶지 않은 진실
Pride
3화. 믿고 싶지 않은 진실
"그래서 어쩌라구요?"
"네가 이해해야지 별 수 있냐?"
"하지만, 납득가야 이해하죠"
"그냥 하라는 대로 해.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하아-"
또 한숨이 나온다. 이 생활을 하게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내 입에서 점점 체념의 한숨들이 늘어만간다. 승현이 형이 왜 그렇게 처음에 나에게 혹독하게 굴었는지 이해가 갈 정도로...
그렇다. 이 바닥에서 중요한 건 빽이다.
내 눈앞의 호리호리하고 얄상하게 생긴 저놈 때문에 찍었던 씬 다시 찍고 또 찍고..
짜증이 몰려온다.
놈의 비중을 점점 더 늘리려는 피디의 의도가 뻔히 드러난다.
아니 그걸 감추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놈이 나날이 인기를 얻어가고 있으니 대본을 전면 수정해서라도 놈이 나오는 장면을 팍팍 늘리 잖다.
그것 때문에 작가랑 대판 붙었다던데, 의외로 그 깐깐해서 피디의 폭압에도 절대 안지면서 버티던 그녀도 그 이후로 잠잠하다.
"자, 어서 들어가."
"알았어요."
"수고했다. 오늘 일정은 이걸로 끝났으니까, 집에라도 가서 쉬어라. 내일 새벽에 또 촬영있는 건 알고 있지?"
"네. 들어가요."
"그래, 그럼 나 먼저 간다."
메니저가 가는 방향을 멀거니 보다, 한숨을 다시 폭 쉬었다.
슬쩍 승현이 형이 떠올랐지만, 웬걸.......이번에 영화찍으러 중국엘 가서 아마 근 한들은 볼수 없다.
형은........
가볼까?
아쉬운 듯이, 전화기를 내려보고 있자니.
왠지, 서글퍼졌다. 전화기 있어도 걸데도 없구나...
"혼자서 뭐해요?"
저 뻔뻔스러운 음성.
보지 않아도 대번에 알 수 있다.
"아- 아. 뭐, 그냥-"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돌아다보니, 예의 그 날카로운 눈이 척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피곤할 텐데, 메니져가 안 데려다 줘요?"
"별로, 그런거 귀찮아."
"그럼 나 배고픈데 같이 뭐라도 좀 먹지 않을 래요?"
내가?
내가 너랑?
흥, 쥐약 먹었냐?
"아니, 난 별로 생각 없어."
손을 흔들어 몸을 돌려 가려는 찰나 급하게 내 앞을 막아선다.
"뭘 그렇게 빼요? 후배가 밥 좀 사달라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요?"
하?
도대체 이 인간의 뻔뻔스러움은 어디까지일까. 응?
"이것 봐요. 사진영씨. 뭐, 우리가 얼마나 차이 난다고 선배후배 합니까? 나랑 고작 데뷔한지 6개월밖에 차이 안 나죠? 그리고, 댁도 나랑 나이가 같은 걸로 아는데요? 선배한테 밥사달라고 아양떨고 싶은가 본데 번지수 잘못 골랐습니다."
깎듯한 존대에 할말이 잃고 서 있는 녀석을 뒤로하고 휘적휘적 차를 찾으러갔다.
뭐, 사실 이렇게까지 심하게 굴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또 난 남에게 심하게 군 적도 그럴생각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놈은 그럴만하다. 첫 인상이 무지 차갑고 날카로웠지만 녀석의 성깔은 그보다 더했다. 신인 주제에 무서운 것도 없고, 뻔뻔하기 그지없으며 위아래도 없고.....
알고 보니 놈은 무시무시한 뒷배경이 있었다. 물론 나도 들은 소문이지만....
아니 뒷 배경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나도 그것 때문에 오해도 사고,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고 무엇보다 승현이 형에게 그렇게 갈굼을 당했으니까.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놈이 하늘아래 둘도 없이 성질 더럽고 오만한 녀석이라는 거다.
차갑고 다른 사람에게 가차없고. 한마디로 재수가 없다.
그런데다가 애초에 선배라는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던 녀석이 갑작스레 나를 선배라고 부르며 이상하게 주변에서 얼쩡대고 있다...
형의 학교에 들어와서 연구소 근처에 차를 세우고 막 전화를 하려던 찰나 언뜻 형의 모습이 건물 뒤쪽에서 보였다.
"그동안 예뻐졌네?"
"고마워요."
"잘 지낸거야?"
"네, 갑자기 찾아와서 놀랬죠?"
"아니, 놀란건 아니야."
"드릴말씀이 있어서요. 그때 번호로 전화했지만 번호도 바뀐거 같고, 집에서는 집을 나가 독립하셨다고 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미안, 내가 연락해줬어야 하는데"
여자는 예뻤다.
"이거요."
"이게 뭐지?"
"그 동안, 저에게 보내주신 돈이랑, 그 밖에 것들과 관련된 서류에요."
"이게 왜?"
"돌려드리려고요."
".......왜?"
"..사실, 한사장님 탓이 아니잖아요. 그건 어디까지나 정사장님이......."
"하지만, 그 녀석이 사과할 녀석도 아니고...."
"아뇨. 사과 받았어요."
"뭐?"
"절 찾아와서........그때의 일들 사죄하고, 그리고 간절하게 부탁하더군요. 자기가 너무 잘못했으니까 용서해달라고요. 그리고.......최대한 보상해주고 싶으니까 받아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리고, 사정하더군요. 제발 다시는 한사장님과 어떤 식으로든 연락하지 말아달라고요,"
윤서형이 사정을 해?
"사정했다고? 그녀석이?"
"네, 너무 간절하게 사정해서, 저도 모르게 그때 그 사람과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닌가 할정도로 놀랐어요. 어쨌든 그렇게 사과하고, 보상도 받았고, 또 사정까지 하는데 사실 저도 이제 두 분과 관련된 일은 잊고싶어요. 다시는........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고 이걸 돌려줄 이유는 없잖아."
"네, 그렇죠? 하지만 저도 그분이 무서워서 한사장님을 속인적도 있고.....어쨌든 회사까지 위험하게 했잖아요."
"하지만 그건-"
"보상은 당연히 그 사람에게 받아야 해요. 만일 한사장님에게까지 보상받는다면..........내 진심마저 왠지 싸구려가 된거 같아서 싫어요."
"................."
"저요, 아직도 그 사람 끔찍해요. 그래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구요. 계속 한사장님하고 연락하게되면 좋든 싫든 계속 절 찾아올거고 더 심해지면 그 때 했던 것처럼 할 수도 있잖아요. 어쨌든 나에게는 아무 힘도 없으니, 하라는 대로 해야줘 뭐."
아무 말도 없는 형을 나두고 여자는 타박타박 걸어내려갔다.
형을 돌아볼 사이도 없이 난 그 여자 뒤를 쫓아갔다.
"실례합니다."
"네?"
"아, 저는 한수인씨 동생인 한수민이라고 합니다."
경계하지 않았다. 내 얼굴이 조금은 알려져서 그런지.....
"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형님께 들으세요."
"................."
"전 사실 정사장이란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었어요. 방법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죠. 어찌됐든 한사장님 가족이시니 이런 일 계속 두고 볼 수는 없겠죠?"
"................"
"가족이니까 가능할거에요. 두 사람 헤어지게 하는 일."
".......헤...어지게 해요?"
"처음부터 정사장의 억지로 시작된거 같고 거의 반 강제인거 같아요. 형님이 평생을 저렇게 당하면서 사는거 보고싶으세요?"
살인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다.
지금이라면.
"누구세요?"
"나야 형."
"수민이?"
형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문을 열었다.
"왠일이냐? 이 시간에 연락도 없이."
"그 자식 어디 있어?"
"뭐?"
"그 자식 어디 있냐고!"
"야!"
"죽여버리겠어. 개자식"
"너 왜 이러는 거야?"
그때 방 한쪽 문이 열리면서 놈이 나왔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
놈의 면상을 향해 주먹을 날렸고 그대로 퍽 소리가 나고 놈이 뒤로 밀렸다.
"무슨 짓이야!"
형이 달려와서 나를 뜯어 말렸지만 나는 다시 그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놈은 잽싸게 몸을 피하고 흘러내리는 피를 쓸쩍 닦고 나를 노려보았다.
"이유는 알고나 맞자."
"이유? 이유? 몰라서 물어?"
다시 달려들려고 했지만 수인이 형이 사력을 다해 나를 붙잡고 있어 쉽사리 주먹을 내뻗지 못했다.
"너 우리 형한테 무슨 짓 했어. 무슨 짓 한거냐고!"
그제서야 녀석은 납득한 듯한 표정을 짓고 이내 싸늘한 눈을 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이 밤중에 이렇게 흥분해서 달려왔냐?"
"개씹새. 죽여버린다."
"흥분하기는. 앞 뒤 안가리고 덤비다니, 수인이랑 형제 맞냐? 수인이는 좀더 용의주도한데 말이야."
"닥쳐! 더러운 입으로 우리 형 이름 말하지마!"
"수민아!"
"형은 가만히 있어! 왜 그 동안 이런 놈한테 당하면서 잠자코 있었던 거야. 왜? 왜 나한테 말 안 했냐고?"
"당해?"
놈이 비꼬는 듯이 물으며 살짝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곧 방으로 사라졌다.
"어딜 들어가. 나와 정윤서!"
곧 바로 나왔다. 뭔가를 들고.
그리고 그걸 바로 내 앞에다 던져주었다.
"눈뜨고 잘 봐. 이게 당하는 사람 표정인지."
사진이었다.
수십 장의....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는 역겨운 장면들.
저놈과...........
"뭣하면 비디오로 보여줄까? 그러면 더 확실히 믿겠냐?"
충격으로 굳어진 머리는 부인하고 싶어했다. 그게......그런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있는게 우리 형이 아니라고..
저놈에게 안겨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게 우리 형일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아니야...이건 말도 안돼....이건 아니야....
"돌아가 수민아"
형은 아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쳐다볼 수 없었다. 형을
모든 감각이 마비된 것 같다.
오로지.........느껴지는 건 눈에서 흐르는 차가운 것만....
"한수민"
"한수민"
돌아본건 두 번째였던거 같다.
돌아보니....
엉?
"왜 그렇게 인상 구기고 있어?"
이, 이 자식이 왜 갑자기 반말이야!
"기분 나빠? 내가 반말해서?"
"..........."
"6개월 가지고 뭘 선후배따지나고 하지 않았어? 네가 선배가 아니면 우리 친구해도 되잖아."
그렇지 않아도 기분 엄청 우울한데, 왜 이 녀석까지 신경을 긁는 것일까?
하아-
무시하고 열심히 전화번호를 눌렀다.
난 지금 이 녀석 상대할 에너지 따위는 없다고.
"어, 승현형. 나야, 수민이. 잘 지내죠?"
"..........."
"응. 지금 통화 가능해요?"
몸을 돌려 밖으로 나와버렸다.
"형 언제 한국 들어오는 거야?"
/1주일은 더 있어야 하는데. 왜 무슨 일 있어?/
"1주일.........."
/무슨 일 있구나?/
"어떻게 알았어요?"
/너야 목소리만 들어도 알지. 흐음.....심각한가 본데, 기다려봐. 어떻게든 빨리 끝내고 들어갈게./
"응.....미안해"
/미안은 뭐가./
당장이라도 털어놓고 이야기 하고 싶은데, 젠장 이건 전화로 이야기 할 일이 아니잖아.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누군가 내 손목을 훽 채가지고 끌고 가고 있었다!
"너, 뭐야?"
"따라와"
"이거 못놔?"
손을 빼내기 위해 있는 힘껏 뿌리쳐봤지만 소용없고, 안 끌려가려고 버텼지만 소용없었다.
그저 방송국 복도에서 억지로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3화. 믿고 싶지 않은 진실
"그래서 어쩌라구요?"
"네가 이해해야지 별 수 있냐?"
"하지만, 납득가야 이해하죠"
"그냥 하라는 대로 해.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하아-"
또 한숨이 나온다. 이 생활을 하게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내 입에서 점점 체념의 한숨들이 늘어만간다. 승현이 형이 왜 그렇게 처음에 나에게 혹독하게 굴었는지 이해가 갈 정도로...
그렇다. 이 바닥에서 중요한 건 빽이다.
내 눈앞의 호리호리하고 얄상하게 생긴 저놈 때문에 찍었던 씬 다시 찍고 또 찍고..
짜증이 몰려온다.
놈의 비중을 점점 더 늘리려는 피디의 의도가 뻔히 드러난다.
아니 그걸 감추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놈이 나날이 인기를 얻어가고 있으니 대본을 전면 수정해서라도 놈이 나오는 장면을 팍팍 늘리 잖다.
그것 때문에 작가랑 대판 붙었다던데, 의외로 그 깐깐해서 피디의 폭압에도 절대 안지면서 버티던 그녀도 그 이후로 잠잠하다.
"자, 어서 들어가."
"알았어요."
"수고했다. 오늘 일정은 이걸로 끝났으니까, 집에라도 가서 쉬어라. 내일 새벽에 또 촬영있는 건 알고 있지?"
"네. 들어가요."
"그래, 그럼 나 먼저 간다."
메니저가 가는 방향을 멀거니 보다, 한숨을 다시 폭 쉬었다.
슬쩍 승현이 형이 떠올랐지만, 웬걸.......이번에 영화찍으러 중국엘 가서 아마 근 한들은 볼수 없다.
형은........
가볼까?
아쉬운 듯이, 전화기를 내려보고 있자니.
왠지, 서글퍼졌다. 전화기 있어도 걸데도 없구나...
"혼자서 뭐해요?"
저 뻔뻔스러운 음성.
보지 않아도 대번에 알 수 있다.
"아- 아. 뭐, 그냥-"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돌아다보니, 예의 그 날카로운 눈이 척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피곤할 텐데, 메니져가 안 데려다 줘요?"
"별로, 그런거 귀찮아."
"그럼 나 배고픈데 같이 뭐라도 좀 먹지 않을 래요?"
내가?
내가 너랑?
흥, 쥐약 먹었냐?
"아니, 난 별로 생각 없어."
손을 흔들어 몸을 돌려 가려는 찰나 급하게 내 앞을 막아선다.
"뭘 그렇게 빼요? 후배가 밥 좀 사달라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요?"
하?
도대체 이 인간의 뻔뻔스러움은 어디까지일까. 응?
"이것 봐요. 사진영씨. 뭐, 우리가 얼마나 차이 난다고 선배후배 합니까? 나랑 고작 데뷔한지 6개월밖에 차이 안 나죠? 그리고, 댁도 나랑 나이가 같은 걸로 아는데요? 선배한테 밥사달라고 아양떨고 싶은가 본데 번지수 잘못 골랐습니다."
깎듯한 존대에 할말이 잃고 서 있는 녀석을 뒤로하고 휘적휘적 차를 찾으러갔다.
뭐, 사실 이렇게까지 심하게 굴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또 난 남에게 심하게 군 적도 그럴생각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놈은 그럴만하다. 첫 인상이 무지 차갑고 날카로웠지만 녀석의 성깔은 그보다 더했다. 신인 주제에 무서운 것도 없고, 뻔뻔하기 그지없으며 위아래도 없고.....
알고 보니 놈은 무시무시한 뒷배경이 있었다. 물론 나도 들은 소문이지만....
아니 뒷 배경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나도 그것 때문에 오해도 사고,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고 무엇보다 승현이 형에게 그렇게 갈굼을 당했으니까.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놈이 하늘아래 둘도 없이 성질 더럽고 오만한 녀석이라는 거다.
차갑고 다른 사람에게 가차없고. 한마디로 재수가 없다.
그런데다가 애초에 선배라는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던 녀석이 갑작스레 나를 선배라고 부르며 이상하게 주변에서 얼쩡대고 있다...
형의 학교에 들어와서 연구소 근처에 차를 세우고 막 전화를 하려던 찰나 언뜻 형의 모습이 건물 뒤쪽에서 보였다.
"그동안 예뻐졌네?"
"고마워요."
"잘 지낸거야?"
"네, 갑자기 찾아와서 놀랬죠?"
"아니, 놀란건 아니야."
"드릴말씀이 있어서요. 그때 번호로 전화했지만 번호도 바뀐거 같고, 집에서는 집을 나가 독립하셨다고 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미안, 내가 연락해줬어야 하는데"
여자는 예뻤다.
"이거요."
"이게 뭐지?"
"그 동안, 저에게 보내주신 돈이랑, 그 밖에 것들과 관련된 서류에요."
"이게 왜?"
"돌려드리려고요."
".......왜?"
"..사실, 한사장님 탓이 아니잖아요. 그건 어디까지나 정사장님이......."
"하지만, 그 녀석이 사과할 녀석도 아니고...."
"아뇨. 사과 받았어요."
"뭐?"
"절 찾아와서........그때의 일들 사죄하고, 그리고 간절하게 부탁하더군요. 자기가 너무 잘못했으니까 용서해달라고요. 그리고.......최대한 보상해주고 싶으니까 받아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리고, 사정하더군요. 제발 다시는 한사장님과 어떤 식으로든 연락하지 말아달라고요,"
윤서형이 사정을 해?
"사정했다고? 그녀석이?"
"네, 너무 간절하게 사정해서, 저도 모르게 그때 그 사람과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닌가 할정도로 놀랐어요. 어쨌든 그렇게 사과하고, 보상도 받았고, 또 사정까지 하는데 사실 저도 이제 두 분과 관련된 일은 잊고싶어요. 다시는........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고 이걸 돌려줄 이유는 없잖아."
"네, 그렇죠? 하지만 저도 그분이 무서워서 한사장님을 속인적도 있고.....어쨌든 회사까지 위험하게 했잖아요."
"하지만 그건-"
"보상은 당연히 그 사람에게 받아야 해요. 만일 한사장님에게까지 보상받는다면..........내 진심마저 왠지 싸구려가 된거 같아서 싫어요."
"................."
"저요, 아직도 그 사람 끔찍해요. 그래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구요. 계속 한사장님하고 연락하게되면 좋든 싫든 계속 절 찾아올거고 더 심해지면 그 때 했던 것처럼 할 수도 있잖아요. 어쨌든 나에게는 아무 힘도 없으니, 하라는 대로 해야줘 뭐."
아무 말도 없는 형을 나두고 여자는 타박타박 걸어내려갔다.
형을 돌아볼 사이도 없이 난 그 여자 뒤를 쫓아갔다.
"실례합니다."
"네?"
"아, 저는 한수인씨 동생인 한수민이라고 합니다."
경계하지 않았다. 내 얼굴이 조금은 알려져서 그런지.....
"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형님께 들으세요."
"................."
"전 사실 정사장이란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었어요. 방법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죠. 어찌됐든 한사장님 가족이시니 이런 일 계속 두고 볼 수는 없겠죠?"
"................"
"가족이니까 가능할거에요. 두 사람 헤어지게 하는 일."
".......헤...어지게 해요?"
"처음부터 정사장의 억지로 시작된거 같고 거의 반 강제인거 같아요. 형님이 평생을 저렇게 당하면서 사는거 보고싶으세요?"
살인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다.
지금이라면.
"누구세요?"
"나야 형."
"수민이?"
형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문을 열었다.
"왠일이냐? 이 시간에 연락도 없이."
"그 자식 어디 있어?"
"뭐?"
"그 자식 어디 있냐고!"
"야!"
"죽여버리겠어. 개자식"
"너 왜 이러는 거야?"
그때 방 한쪽 문이 열리면서 놈이 나왔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
놈의 면상을 향해 주먹을 날렸고 그대로 퍽 소리가 나고 놈이 뒤로 밀렸다.
"무슨 짓이야!"
형이 달려와서 나를 뜯어 말렸지만 나는 다시 그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놈은 잽싸게 몸을 피하고 흘러내리는 피를 쓸쩍 닦고 나를 노려보았다.
"이유는 알고나 맞자."
"이유? 이유? 몰라서 물어?"
다시 달려들려고 했지만 수인이 형이 사력을 다해 나를 붙잡고 있어 쉽사리 주먹을 내뻗지 못했다.
"너 우리 형한테 무슨 짓 했어. 무슨 짓 한거냐고!"
그제서야 녀석은 납득한 듯한 표정을 짓고 이내 싸늘한 눈을 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이 밤중에 이렇게 흥분해서 달려왔냐?"
"개씹새. 죽여버린다."
"흥분하기는. 앞 뒤 안가리고 덤비다니, 수인이랑 형제 맞냐? 수인이는 좀더 용의주도한데 말이야."
"닥쳐! 더러운 입으로 우리 형 이름 말하지마!"
"수민아!"
"형은 가만히 있어! 왜 그 동안 이런 놈한테 당하면서 잠자코 있었던 거야. 왜? 왜 나한테 말 안 했냐고?"
"당해?"
놈이 비꼬는 듯이 물으며 살짝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곧 방으로 사라졌다.
"어딜 들어가. 나와 정윤서!"
곧 바로 나왔다. 뭔가를 들고.
그리고 그걸 바로 내 앞에다 던져주었다.
"눈뜨고 잘 봐. 이게 당하는 사람 표정인지."
사진이었다.
수십 장의....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는 역겨운 장면들.
저놈과...........
"뭣하면 비디오로 보여줄까? 그러면 더 확실히 믿겠냐?"
충격으로 굳어진 머리는 부인하고 싶어했다. 그게......그런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있는게 우리 형이 아니라고..
저놈에게 안겨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게 우리 형일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아니야...이건 말도 안돼....이건 아니야....
"돌아가 수민아"
형은 아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쳐다볼 수 없었다. 형을
모든 감각이 마비된 것 같다.
오로지.........느껴지는 건 눈에서 흐르는 차가운 것만....
"한수민"
"한수민"
돌아본건 두 번째였던거 같다.
돌아보니....
엉?
"왜 그렇게 인상 구기고 있어?"
이, 이 자식이 왜 갑자기 반말이야!
"기분 나빠? 내가 반말해서?"
"..........."
"6개월 가지고 뭘 선후배따지나고 하지 않았어? 네가 선배가 아니면 우리 친구해도 되잖아."
그렇지 않아도 기분 엄청 우울한데, 왜 이 녀석까지 신경을 긁는 것일까?
하아-
무시하고 열심히 전화번호를 눌렀다.
난 지금 이 녀석 상대할 에너지 따위는 없다고.
"어, 승현형. 나야, 수민이. 잘 지내죠?"
"..........."
"응. 지금 통화 가능해요?"
몸을 돌려 밖으로 나와버렸다.
"형 언제 한국 들어오는 거야?"
/1주일은 더 있어야 하는데. 왜 무슨 일 있어?/
"1주일.........."
/무슨 일 있구나?/
"어떻게 알았어요?"
/너야 목소리만 들어도 알지. 흐음.....심각한가 본데, 기다려봐. 어떻게든 빨리 끝내고 들어갈게./
"응.....미안해"
/미안은 뭐가./
당장이라도 털어놓고 이야기 하고 싶은데, 젠장 이건 전화로 이야기 할 일이 아니잖아.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누군가 내 손목을 훽 채가지고 끌고 가고 있었다!
"너, 뭐야?"
"따라와"
"이거 못놔?"
손을 빼내기 위해 있는 힘껏 뿌리쳐봤지만 소용없고, 안 끌려가려고 버텼지만 소용없었다.
그저 방송국 복도에서 억지로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작가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에피소드 본문 복사가 제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