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천사에게도 벌레는 산다

조회수 13 15세 이상 이용가 등록 2026.08.18
Pride

6화. 천사에게도 벌레는 산다


6-1


영영 모르길 바랬다.
알고 싶지 않았다.
인간의........추악함.........

그게 아니라.......모른 척 했던거다.............



"왜 이렇게 넋 놓고 있어?"
뒤에서 목을 감아오는 손길에 별다르게 반응 없이 안겨들었다.
"수민아? 어디아파?"
"응- 아니-"
어느새 진영이는 내 앞에서 주저앉아 나를 올려다보았다. 미간에 주름을 잡고.

"아파 보여. 이리와"
진영이의 손에 끌려 편안한 소파에 주저앉았다.
끌어당기는 손길에 생각 없이 그 품에 머리가 폭 안겨들었다.


"너.......마음이 아프구나...."

진영이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나를 더 꼭 안아주었다.



*********************



완전히 맛이 갔군.
벌써 몇 주 째지?

화나. 왜 저 녀석이 저런 표정을 지어야 하냐고.
완전히 눈이 풀려있잖아.


"수민아. 이번에 뮤직비디오 찍으로 미국에 갈거야. 너도 같이 갈래? 가서 머리 좀 식히고 오자"



"왜 저래? 어디 아픈거 아니야?"
"글세 그냥 상태가 안 좋은거 같아."
"너 이상하다?"
"뭐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애인도 아니면서 이런 곳까지 달고오다니.....게다가 너 상당히 괴롭혔잖아 처음엔"
"처음엔 그랬지."
"지금은?"
"아끼는 후배니까."
"나 말이지....네가 나 이후 누굴 이렇게 챙기는거 처음 봐. 너 원래 그런 녀석 아니잖아."

아..그랬어. 그랬지.
너야 밟아도 밟히지 않는 그 근성에 감탄했고 숭배하기까지 했었던 거니까...

"저 녀석은 그럴만해."
"뭐? 푸하하하하"
"웃지마"
"네가 다른 사람을 그렇게 말하는거 처음 본다. 너 다른 사람한테 엄청 까다롭고 가차없잖아. 여러 가지로 날 놀래키는 구나"
"그나저나......너야말로 운이 트였구나."
"뭐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의 첫 데뷔나 마찬가지인데, 처음부터 이렇게 쎄게 나가다니...쳇, 부자 애인있어서 좋겠다."
퍽-
욱...배야...

"나보고 다시 재기하라고 꼬신건 너였어."
"물론 그랬지. 하지만 그 대단한 애인씨께서 이렇게 덤벼들줄 누가 알았겠냐."
"뭐........돕게 해달라고 애걸복걸하는데 거절할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여기까지 끌고 왔냐?"
"오고싶다는데....어떻게 해."

쑥쓰럽게 고개를 숙이기는 했는데......짜사 입 좀 다물어라. 아무리 좋아 죽겠다지만.



"전망은 좋군..."
이국의 확실히 달랐다.
하지만 녀석은 여전히 멍한 표정.


"수민아."
다가가서 머리를 쓸어주었다.
"응"
대답은 하지만 마음은 전혀 딴 세상이다..

어떻게 해야 좋은 거지?
이 내가 이렇게 초조한 기분이라니....
지난주부터 내내 안절부절했었다. 이 녀석의 심상치 않은 상태를 보면서...
왜 내가 이런 기분까지 드는 걸까.
언제부터 내가 이 녀석 기분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에 어쩔 줄 모르게 된거지?

답답해.
지금 수민이는 전혀 다른 세계에 가 있는거 같다.
철저히 내가 들어갈 수 없는 세계에 들어가서 혼자 고립되어 있다.
나를 거부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도망치는 거니."

"넌 이런 녀석 아니었어. 도망치거나 두려워서 포기하는거 싫어했잖아. 그런데 왜 도망치려고 해? 이러지마. 넌 이러면 안돼."

내가 손쓸 수 없는 곳으로 도망치려 하지마.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곳으로 가려고 하지 말라고.

".....왜......"
응?

"왜....도망치면 안돼...?"
나를 쳐다보는 눈은 공허해 보였다.

"형이.....우리, 형이 날 안으려고 했어. 우리 형이....남자랑도 아무렇지 않게 잘 수 있는 사람이고, 그래서 동생인 나도 범할 수 있다고 했어. 그럼 난 그냥 그걸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여야해?"

뭐......

"그냥 그렇게 사는 거구나 하고 인정해야돼?"

"왜 나는 도망치면 안되냐고?"


뭐가...어떻다고?
하?
제, 제길. 말도 안돼.


"그래서 도망치고 싶니?"
"도망치고 싶어. 아무 것도 몰랐으면 좋겠어. 그냥 잊고 싶어. 잊어버릴래."
".....그렇다고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지."

왜 이럴 때 갑자기 ....... 그 대사가 떠오르는 것일까.


[내가 지금 너한테 말하려는 것은 저 하나님한테서 정욕이라는 것을 부여받은 '벌레'에 관한거야. 벌레에겐-정욕을]

[알겠니, 알료사? 내가 바로 그 벌레란 말이다. 그건 특히 나를 두고 한 말이야. 우리 까라마조프 일가는 모두 그런 인간들이지. 그래서 천사 같은 너의 내부에도 그런 벌레가 살고 있어서 네 피 속에 폭풍을 일으키는 거야. 암 폭풍이고 말고. 정욕은 폭풍이니까. 아니 폭풍보다 더하지!]

수민이는 갑작스러운 나의 연기에 놀라서 멍하니 듣고 있었다.

"이 다음엔 네가 뭐라고 대꾸해야 하지?"


[내가 얼굴을 붉힌 건 형님의 얘기 때문도 아니고 형님의 행실 때문도 아닙니다. 나 자신도 형님과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겁니다.]
[네가? 그건 좀 지나친 말인걸?]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나 똑같은 층계에 서있는 거예요. 다만 내가 제일 아랫단에 서 있다고 한다면 형님은 좀더 위 열 서너 계단쯤 되는 곳에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어요. 결국 똑같은 성질의 것이지요.]



"넌 네가 연기하고 있는 인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니?"
"............."
"방금 네가 외운 그 대사가 전혀 너랑 상관없는 말 같아?"

충격 받은 듯 파랗게 질린 그 표정을 보며 가슴이 아파온다.
웬만한 일에는 끄덕도 안 하는 녀석이었던 만큼, 지금 이 상태는 정말 이 녀석이 얼마나 크게 상처 받았는지 여실하게 보여준다.

어떻게든 위로해주고 싶다.
어떻게든 안도하게 해주고 싶다.
한번도, 이런 식으로 누굴 위로하려고 든 적 없는데.......
예전 같으면 약해빠진 녀석이라고 욕해주었을지도 모른다. 예전 같으면 네가 어린애냐....라고 한소리 했을 법한데.
넌 왜 이렇게 날 휘두르는 거지?


그런데.....범하려고 했다고?
하...기가 막히는군. 생긴것 만큼 보통이 아니야.
어떻게 자기 동생을...

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입술을 깨물고 침묵하고 있는 수민이를 보니......

그럴.........법도 하다.........
남자를 그런 대상으로 본다는 것 터럭만큼도 생각해본 적 없지만 수민이라면...






Pride

6-2


"오늘은 좀 낳아 보인다?"
"응, 있다가 촬영 끝나고 놀러가기로 했어."

"넌?"
"으-응. 난 좀 쉬어야겠어."
"노래 부를 힘이나 있는 거냐?"
"그럼"
"그럼데 승현아."
"응?"
"내 목소리....내 노래....아무도 못 알아볼까?"
"...........비슷하다고 느낄 수는 있겠지."
"그래?"
"아마도-. 그런데 너 저 녀석 왜 달고 온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했어."
"왜...."
"몰라서 묻냐? 이 바닥이 얼마나 좁은데, 벌써 시작부터 안좋은 소문 돌게 생겼잖아."
"....소문이라니..."
"네가 그 인간 애인이란거 스탭들이 다 알아. 아무렴 모르겠냐? 매일매일 촬영장에 나타나서 네 옆에 들러붙어 있는데. 게다가 왜.....왜.....방을 같이 쓰냐고!"
"어...그게....그렇구나. 생각을 못했어."
"뭐, 그 인간이야 수단도 좋고 힘도 있고 돈도 있으니 이상한 소문 안나게 입막음이야 잘 하겠지. 하지만 사람들이 아는 사실까지 지울 수는 없잖아. 넌 이제부터 낙인찍히는 거라고. 그나마 다시 재기하는 건데, 초장부터-이런 식으로"
"................"
"너야 원래 결백한 녀석이었으니 예전에는 오히려 그 것 때문에 사람들에게 욕먹었지만 차라리 그게 얼마나 낳은 줄 알아? 같이 욕먹어도 그런 식으로 먹는 거랑, 이런 식으로 먹는 거랑은 달라. 후자는 철저히 경멸이라고. 경멸. 그런 식으로 여겨지는 거 너 견딜 수 있어?"
"넌 정말 날 모르는구나."
".......모르다니...."
"내가 사람들에게 결백한척 했던건 내가 그런 소문이나 신경써서 그런건 아니야. 내 명예가 더러워진다 뭐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라고. 내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건, 힘있고 가진자들이 힘없고 없는 자들을 상대로 거래했던 것 자체가 싫었던 거야. 아무리 그것 또한 계약이라지만 그런 관계 자체가 하나의 폭력이니까............난 그런 거래 자체, 폭력 자체를 경멸한 거지, 그 사람을 경멸한 건 아니야. 게다가...내가 그렇게 되는 게 싫었을 뿐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려고 적당히 도덕적인척 한게 아니라고."
".................."
"내가 지금 시현씨에게 도움을 받는 건 그런 폭력과는 달라. 적어도 지금은 난 그의 사랑이란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니까, 같을 수가 없어. 그걸 보고 사람들이 뭐라고 한다면 난 이게 절대 다르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 그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그를 사랑하는데 부끄러울게 없잖아."


불만스러웠지만,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면....전혀 수치스러워 하지 않는다면 된거 아닌가.........



"왜 수민이까지 끌고 간겁니까?"
"내가 왜 그런 것 까지 너한테 보고해야 하지?"
"그야 난"
"네가 뭔데? 네가 수민이 서방이라도 되냐?"
정말 왜 이렇게 인 녀석은 기분 나쁘게 거슬리는 건지..원...

"그거야 두고 봐야 아는 일 아닙니까?"
뭐?

"그럼 설마 제가 그런 생각 없이 이제껏 그 녀석 옆에 붙어 있겠습니까? 사람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전 천성적으로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싫은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아무 이유 없이 그 녀석 옆에 붙어서 개처럼 그녀석이 하라는 대로 다하고, 하자는 대로 해줬겠습니까?"
"그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건데?"
"이유요? 뻔하지 않아요? 그런건 보통 남자가 여자를 꼬실 때 하는 행동들이죠 그건. 물론 수민이가 남자이긴 하지만....다를 거 있습니까?"

이게 정말....

"결국 수민이를 꼬셔서 한번 놀아보겠다는 거냐?"
"한번 놀려고 이런 구차한 짓을 하겠습니까? 정말 한번 놀 생각이었으면 진즉에 손댔겠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남의 밥에 재뿌리지 말란 말입니다."
".....재?"
"그나마 그 동안 수민이 생각해서 선배 대접해줬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신경쓰게 하면 저도 더 이상 참는데 한계가 있단 말입니다."

그대로 손이 뻗어나가 녀석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더러운 입 그만 놀려라."
낮게 으르렁거리며 손에 더욱 힘을 쥐었다.

"네가 이렇게 본색을 드러냈으니 나야말로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지. 너 같은 개싸이코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손도 근질거려. 이대로 죽도록 패놓고 파묻는거 나한테 일도 아니야. 게다가 너같은 쓰레기들은 사회악이라서, 완전히 근절시켜야해. 수민이한테 손가락 하나만 대봐. 그날로 넌 저 세상이다. 아니, 그냥 저 세상이 아니라 온몸을 칼로 난자해놓을 거야."

일순 어이없다는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감돌았다.
"재미있군. 당신이야말로 이런 본색을 감추고 있었네? 하지만 기억해둬 난 분명히 억지로 한다고 하지 않았어. 결국 선택은 수민이 몫이야. 수민이가 선택하는 거라고. 그런데도 날 죽이겠다고? 그럴 명분이 있어?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냐고?"
"자격? 나야 충분히 있지. 수민이 같은 천사에게 너같은 벌레가 꼬이지 않도록 지킬 자격따위 충분하고도 넘쳐. 그리고 수민이 선택? 하-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한가지 알려줄까? 수민이는 지극히 윤리적이고 순수해서 너같이 문란한 녀석의 세계 자체를 이해 못해. 게다가 아쉽게도 네가 남자란게 천추의 한이 될 정도로 그 녀석은 절대 노말이란 말이다. 아마, 호모포비아에 가깝지 않을까? 네가 그런 의도를 갖고 있다는 걸 알게되면 그 착한 녀석이 경멸은 못해도, 절대 널 가까이 안 할거라는건 장담하지."
"그건 두고 봐야 아는 거지."
"두고 볼일 아마 없을거다. 네가 이후로 절대 수민이 근처에도 얼씬 못하게 만들테니까."
"다시 말하지만 당신에게 그럴 권리같은거 없어. 그리고 당신이 막는다고 내가 못할거라고생각해?"
"그렇겠지. 그 대단하신 배경을 한번 이용해보시겠다? 어련하시겠어. 어차피 그런 것 없으면 아무 것도 못 하는 주제에. 왜 그 조직동원해서 수민이를 납치해서 감금이라도 할 생각이냐? 그렇다면 결국 넌 연기나 연애에서나 3류에 불과해."
"..........내가 정말 3류인지 1류인지는 두고봐야 알겠지."
이를 가는군.

"다시 한번 경고한다. 수민이를 그 더러운 손으로 건드리기만해 봐. 넌 그 자리에서 시체가 되 있을 거다."


더러운 자식.
이걸 정말 미리 죽여버리는 수는 없을까?



그날 이후 눈에 핏발이 설정도로 녀석과 수민이를 감시하게 되었다.
초조함과 불안함에 신경은 곤두설 대로 곤두서있어서 주변 사람들은 감히 다가오지 못했다.

누가 건드리게 나둘 줄 알아?
절대 안돼. 수민이는............ 수민이는..........그렇게 놔두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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