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너를 무너뜨리고 싶다

조회수 14 15세 이상 이용가 등록 2026.08.18
Pride

7화. 너를 무너뜨리고 싶다


7-1


[나는 너에게 한가지 고백해야 할 일이 있어]

[나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에게 가까운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는지 모두지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내 생각 같아선 먼 곳에 있는 사람은 사랑할 수 있어도 가까이 있는 사람은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거 같은데 말이야. 언젠가 나는 어떤 책에서 '자비로운 요한'이라는 성서의 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어느 굶주린 나그네가 얼어죽게 되어 그를 찾아와서 몸을 녹이게 해달라고 간청하자 그 성인은 나그네를 침대에 눕히고 꼭 껴안아 주었어. 하지만 그건 그 성인의 위선적인 발작이야. 의무 관념에 비롯된 거짓된 사랑. 나는 확신해 스스로 자기에게 그런 고행을 부과한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한다면 그 본인은 그 앞에 나타나서는 안되는 거지. 그 인간이 조금이라도 얼굴을 나타냈다면 사랑도 그것으로 끝나고 마는 거야.]
[장로님도 역시 인간의 얼굴은 사랑의 경험이 얕은 많은 사람들에게 흔히 사랑의 장애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인류 속에는 많은 사랑이 깃들여 있어요.]
[그렇지만 나는 아직까지 그런 걸 알지도 못하거니와 이해할 수도 없어. 그리고 수없이 많은 대다수의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질 거야. 결국 문제는 인간의 나쁜 성질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 아니면 인간의 본질이 그렇게 돼먹었기 때문이냐 하는 점에 있어. 내 생각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이 지상에 있을 수 없는 일종의 기적이야. 하기는 그리스도는 신이었지만 우리는 신이 아니니까. 가령 예를 들어 내가 깊은 고뇌를 경험할 수 있다 하더라도 과연 내가 어느 정도까지 고민하고 있는지 타인은 결코 알 수 없는 거야 왜냐하면 타인은 어디까지나 타인이지 내가 아니기 때문이지. 게다가 인간은 남의 고통을 잘 인정하려 들지 않거든. 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이어지지가 않았다.
멍청히 진영이를 바라보고 있던 나를 감독이 무대에서 끌어내렸다.
모두들 날 어떻게 바라보고, 쳐다보는지 생각할 수 없었다.

인간은..... 인간은 어떤 존재인 거지?
왜 난 아무런 반론도 할 수 없는 거야?
왜......진영이의 눈을 보고 똑바로 그게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거야..
예전에는 아니었잖아. 언제나 당당히 진영이가 잘못된거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었잖아.
그랬잖아.....
그 동안은 그냥,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이반과의 대화 부분에서는 계속 막힌다.
얄료사의 항변이.....나조차 이제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리라.

"너.....이런 식으로 계속 할거냐."
진영이가 다가와 차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내 어깨에 손을 얹으려는 찰나..

"돌아가자 수민아"
승현이 형이 그 말을 내뱉자마자 나를 끌고 나왔다.
진영이가 뭐라고 했지만 형에게 끌려가느라 듣지 못했다.


"말했지. 억지로 납득한 척 하지는 마. 이번 역.....자신 없으면 그냥 포기해."
뭐....포기?
크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네가 포기하고 싶을 리는 없지."


"네 형이 혐오스럽니?"
"............."
"그런 반응 지극히 정상적이야.... 그래서 이제 다 부인하고 싶어? 인간이란 존재자체를?"
"..믿을 수 없을 뿐이에요. 인간이란 존재를. 그리고........사랑이라는게.....어떤 건지 근본적으로 의문이 들고.....아니, 하다못해 인간이 정말 사랑이란걸 할 수 있는지 다시 의심하게 됐어요."
"왜.....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알료사는 모두 비슷하다고 했어요. 다만 그 서있는 위치가 조금 다를 뿐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했죠. 우리형이 그럴 수 있다는 건 나도 그럴 수 있다는 거고, 그렇다면 결국 난 뭘 믿어야 하죠? 그런 점에서 난 알료사를 이해할 수 없어요. 그가 바보는 아니거든요. 그는 근본적으로 그의 아버지도, 그의 형들도, 그리고 세상의 악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는 인간이에요. 정확히 볼 줄 알고 그 본질을 이해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데도 사랑할 수 있다는게 이해할 수 없다고요."
"그럼 넌 네 형을 좋아하고 따르던게 단지 네 형이 잘나서였단 말이냐?"
"............?"
"네 형이 잘난 인간이고 너의 우상이었기 때문에 형을 사랑했냐는 뜻이냐고."
"....그, 그건..."
"네 형이 너보다 더 못나고 잘 하는게 하나도 없었다면, 그럼 넌 네 형을 동정하거나 경멸했겠구나."
"그렇지 않아요 그건-"
"넌 왜 네 형을 좋아한거니? 왜 그렇게 따랐던거야?"
"....................."
"그 동안은 네 형이 너무 자랑스럽고 잘난 인간이라서 좋았지만 그 잘난 인간이 변태에 타락한 인간이었더라....그래서 혐오스럽고 이제 그렇게 좋아했던 것이 더 큰 배신감으로 변해서 인간에 대한 혐오로 발전했다....이거잖아."
".............."
"넌 아직 사랑이 뭔줄 모르는구나. 완벽한 대상이기 때문에 사랑한다........그게 사랑이냐? 그렇다면 결국 그건 그 상대방을 사랑한게 아니라 사랑할 대상을 찾고 싶은 네 자신에 대한 사랑, 즉 자기애에 불과해."

그렇구나..
라고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분명........아직 납득할 수는 없지만, 내 정신을 차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난 아직 모르는 거다....
아직.....그러니 더 배워야 하고 더 알아야 한다...



"형, 요새 너무 예민한거 같아. 왜그래?"
연극이 무대에 오를 때가 가까워오는데 뭔가 이상하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다. 신경쓰지마."
아무 것도 아니라니, 저렇게 무서운 눈을 하고선 아무 것도 아니라고?
더구나 진영이만 보면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다. 이거 참....
승현 형의 그런 행동은 무척이나 오래된 듯 싶다. 내가 우리형의 일로,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기에 주변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늘 붕붕 떠 있다가 어느 한순간 팍 가라앉고, 혼란스러움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한참을 그냥 그렇게 지내다.....어느날 문득 정신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을 때, 그때서야 보였다. 승현형과 진영이의 사이가 손쓸 수 없을 지경이 되버린 것을...


"어? 네가 여기 웬일이야?"
집 앞에 진영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피고 있던 담배를 옆으로 휙 던져버린다.
"웬일은, 도무지 그 인간 때문에 너랑 이야기 할 시간도 없고 해서"
"아....들어올래?"
"아니, 잠깐 나가자."
거절하기에는 진영이의 표정이 너무 우울하고....보였다.


"너도 나란 인간. 그렇게 싫은 거냐?"
"무슨 소리야?"
"알고는 있어. 어차피 사람들이 나 안좋아 한다는거. 그런거 어려서부터 늘 뼈저리게 느껴왔던거라고. 그래서 별로 기대도 안하고 살아. 공연히 기대해봤자, 언젠가는 다 떠나가고 그러다가 내가 오히려 상처받고...그러니 그냥 아예 인간 관계를 안만드는게 났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아."
"아니, 맞아. 난 이번에도 절실히 느껴. 이승현이 나를 끔찍하게 싫어하는건 알겠는데, 그런데........너마저........난 정말 후회돼. 너한테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는게."
"무슨 소리야. 내가 너한테 뭔가 잘못한 거야?"
"그럼 아니란 말이야? 너 요즘 날 무시하고 이승현하고만 이야기하잖아."
뭐야 어린애처럼....

"그건-"
".......그건?"
"미안해. 형이 좀 이상한거 같아 요즘. 내가 생각해도.....좀 이상해. 하지만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의도로 그런게 아니야. 형의 기분을 맞추다 보니 나도 모르게. 미안해, 정말 네 기분 같 은거 생각 못했어. 그러니까 난 어디까지나.."
"누구와도 평화롭게 잘 지내고 싶다?"
아......

"그래, 너야.....원래 누구에게든 사랑 받으니까."
"진영아"
"그런데....난 그런거까지 안 바래. 난 그냥 너만.....너만 있으면 돼."
".......그..."
"그것도 안돼는 거니? 그것조차 안돼?"
진영아............

이 녀석은 애정에 굶주린 거다.
무엇 때문에 나에게 집착을 보이는 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사귄 것은 아니지만 한동안 같이 지내면서 느낀 것은....보기보다ㅡ 마음이 약하고, 어린애 같은 녀석이라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차갑고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고 있었지만 누구보다도 사람의 애정이 필요한 녀석이다.
너무나도 애정에 굶주려 있는 모습을 보며 내가 모른척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랬기에, 이후로 승현이 형의 눈을 피해서라도, 진영이를 신경 쓸 수밖에 없었고, 진영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게 되었다. 그리고 연극이 끝나고 나서, 승현형은 다시 영화를 찍느라 바빴지만, 의외로 우리는 조금 여유가 생겼다.


"우리 여행가자."
"그러지뭐. 어디로 갈까?"
"땅 끝에 가보자. 예전부터 거기 가보고 싶었어."
"그래....."

둘이서만 떠나는 여행. 승현형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보나마나 인상쓰면서 절대 못 가게 할거 같았으니까. 요즘도 이상하다......지나치게 진영이와 만나는 것을 체크하고 있고,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 기세가 대단해서 영문도 모른채 나도 움찔거리며 슬금슬금 숨길 수밖에 없게 된다.







Pride

7-2


"전망 좋다."
경치에 홀려 뒤를 돌아보니, 막 씻고 나온 진영이가 맥주를 던져주며 말했다.
창턱에 걸터앉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리와봐. 저것 좀 봐."
"뭘?"
진영이쪽으로 다가가서 내려다보니 나무 위에 새 한 쌍이 앉아 있었다. 이름 모를 새..
"행복해 보이는데?"
어?
"그렇지?"
차가운 것이 살짝 목덜미를 스친다.

"응. 그래......."
그냥 스친거겠지...

"이리와서 앉아봐"
진영이가 자신의 옆을 가르키며 앉으라고 재촉했다. 살짝 힘을 주어 가볍게 올라앉아서 보니 조금 더 자세히 보인다.
"여긴, 생각보다 조용한데?"
어?
이번엔 따뜻한 것이 살짝 목가를 스쳤다.
그리고 대답 없는 진영이.....

"야... 뭐하는 거야!"
스친 것은 진영이의 입술이었다.
"좋은 냄새가 나서."
그러면서 다시.....
"그래봤자 비누냄샌데 뭘 그런걸.."
몸을 비틀어 살짝 비켰다.

"뭐야, 뭘 그렇게 피하는 거야?"
불만스러운 얼굴,
"간지럽잖아."
웃으며 달래고 다시 시선을 밖으로 주니, 진영이는 어느새 뒤에서 안아왔다. 그리고 얼굴을 내 어깨에 파묻는다.
"저, 진영아."
"이러고 있으니까 너무 편하고 좋다."
진영이의 목소리는 정말 ......편하게 들렸다.

"오랜만에 쉬는 거지?"
"응...."

그랬다. 진영이는 이제 막 등장하기는 했어도, 첫 드라마와, 연극에서 크게 성공했기 때문에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생활을 하고있었다. 그러면서도 전혀 힘든 티를 내지 않았었다.
오히려, 그런건, 능력 없는 인간이나 하는 짓이라고........늘 하던대로 으스댄거 외에는..
형이나 이 녀석이나 이런 점에서는 늘 똑같다.
절대 겸손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것은 형은.......그렇게 해서 더욱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그리고 절대 주저앉지 않는다. 자신의 말로는...자신은 워낙 그릇이 크기 때문이라나....아무튼 정말 꿈이 큰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점이 좋아 보이는 것은.......자신을 지극히 사랑하고 있으며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이 녀석은 아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 받기 위해 그렇게 스스로 오만하게 구는 것이다. 주변 사람을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낮게 보고..........그것마저 없으면 이 녀석은.......힘들었을 것이다. 지금의 10배 이상. 스스로 자신감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세뇌시키고 또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서 보상받으려는 것이다. 자신이 사랑 받지 못한 것을....

"따뜻하다."
어깨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시.......내려다보았다.
갈색 머리카락....이 내 볼을 스쳤다.

"힘들지."
"아니. 안 힘들어."
"바보......내 앞에서는 솔직해져돼."
"왜?"
"왜라니.....네가 솔직해 져도, 난 널 떠나거나 하지 않으니까. 난 네 친구야. 친구끼리는 그래도돼."
".............아니야, 그러지 못할거야."
"뭐야, 너 날 못믿는거야?"
"아니.....넌 좋은 녀석이야. 문제는 나지."
의문을 가지고 다시 내려다보니, 어느새 고개를 들고 내 몸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난 말이야,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은게 처음이야 이번이. 그래서 당황스러워."
"그건 자연스러운 감정이야. 당황할거 없어. 누구나 친구가 필요하고-"
"자연스럽지 않으니까 하는 말이야. 난..........친구가 필요한게 아니야."

"난, 완전한 내 사람이 필요해. 그냥 단순한 친구만으로 만족할 수 없어."
"그럼........."
"................."


내가......이제 정말 둔해졌나...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듣고도 이리 담담할 수 있다니...
하긴 형의 일이 엄청나게 쇼킹하기는 했지. 그래서인가....이제 이런 말 들어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 아니......그저 조금 당황스러울 뿐이다. 예전처럼 그렇게 충격적이거나, 화가나거나........슬프지도 않다.....
그저 놀랐을 뿐이다.


담담하게, 그 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뭐라고 말해야 하나.
이렇게 담담할 수는 있지만 난.....여전히 그런건 역시 감당하기는 벅차다.
그렇다고.........이 버려진 강아지 같은 녀석을 매몰차게 밀어낼 수도 없다.
어떻게....해야하지.....


"난...너만 원해. 너만 있어주면 된다고."





****************************************




"다시..... 한.번.... 말.해.봐."
천천히.......낮게 씹어서 뱉는 음성.
"들은 대로야. 수민이는 이제 내꺼야."

열을 내고 광분할 줄 알았는데...의외다.

"수민이랑 잤어. 합.의.하에. 그 녀석은 내가 먹었다고."

나도 한마디 한마디 또박또박 정확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쿵-
순식간에 멱살이 잡히고 벽에 밀어붙여진다.
헉-
목을 졸라오는 손의 힘이 장난이 아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떻게 해볼 도리 없이 그대로 죽는줄 알았다.
하지만 의식이 멀어져갈거 같은 순간에 그는 손을 놓았다.

"확인해보지."

그리고....
"그녀석이 쉽게 그런걸 합의할 리가 없어. 그리고 설사 사실일지라도 넌, 그 녀석을 더럽히지 못해. 그런 걸로 더럽혀질 녀석이 아니야."
서서히 손을 놓고........몸을 돌려 물러서고 다시 말했다.
"너무 자신하지마..........너랑 수민이는 물과 기름이다. 고작 한번 몸 섞은 것 따위로 네가 그 녀석을 가질 수 있을 리 없어. 그럴 바에......."
그는 한참을 그렇게 서있다가 서서히 멀어져갔다.


충격이 큰 게 분명했지만 의외의 반응이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인간이, 이런 거짓말에 저렇게 쉽게 속다니....아닌 척 하지만, 동요하고 있다. 그것도 엄청나게....


당신 말이 맞아.
쉽게 더럽혀질 녀석은 아니야.
하지만 난.......더럽히고 싶어. 그 녀석을 내가 서 있는 이 바닥까지 끌어내리고 싶다고.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저 지켜주고 싶겠지.
하지만 난 아니야.
난 그 녀석을 당신처럼 아끼고 사랑하는게 아니라고.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나를 점점 이렇게 초라하게 만드는 그녀석이.......무너지는걸 보고싶어.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