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우연한 여행

조회수 14 15세 이상 이용가 등록 2026.08.19
고양이 여인숙

3화. 우연한 여행


그것은 논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경운기였다.
은주가 짧은 비명을 지르고 거의 동시에 핸들이 우측으로 꺾이는 소리가 요란했다. 다행
히 경운기와 나는 절묘하게 타이밍을 맞추었고 간발의 차이로 우리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
었다. 경운기를 모는 총각이 뭐라고 쌍소리를 해대는 것이 어렴풋이 백미러를 통해 보였
다.
애당초 저따위 급커브를 만들어 놓은 작자들에게 욕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질문하며
우리는 백사장이란 마을을 향해 계속 진입해 들어갔다. 정말 얼마가지 않아 길의 끝에서
조그마한 항구가 나타났다. 꽤 큰 고기잡이 배들이 정박해 있는 포구를 따라서 이빨이
빠져 치직 소리를 내는 네온 간판들로 가득 찬 횟집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손님을 기다리
고 있었다.
선착장의 한 쪽에서는 이제 막 일손을 거두는 아낙네들이 그물 속에서 퍼덕거리는 무언
가를 떼어내고 있었는데 그것은 대하라고 불리우는 왕새우였다.
은주가 신기한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광경을 바라보기에 차를 그 곁에다가 세웠다. 차
에서 내린 은주가 깡총거리며 아낙네들에게로 뛰어가서 소녀처럼 쪼그리고 앉아 그 미세
한 작업들을 경이로운 눈으로 분주히 들여다 본다. 내가 다가가서 확 밀치는 시늉을 하
자 은주가 비명을 지른다.
[만져봐.]
[싫어!]
마치 투명한 크리스탈처럼 맑고 깨끗한 갑질을 자랑하는 새우가 푸드득거리며 그물을 빠
져나오려고 뛰어오른다.
[우리 들어가서 먹자.]
상 위에 이제 움직임을 멈춘 새우가 반닥거리며 한 접시 가득 올라왔다.
[고작 여덟 마린데 이만 이천 원이라구요?]
은주가 눈을 크게 뜬다. 우리는 진열장에 살아 있는 생선이 가장 많은 횟집을 선택했고
이미 어둠이 내리는 바다지만 그래도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창가 쪽 마루를 차지하곤
새우를 흥정하고 있었다.
[지금은 제철이 아니라서 그래요. 시월에 오세요. 그떈 푸짐하게 드릴테니까 .]
약간은 뚱뚱한 주인 여자가 우리를 깔보듯이 내려다보며 말했다.
[주세요!]
[어떻게 드실래요? 생거로? 아니면 구워서?]
[자긴 어떻게 먹을래? 난 생게 좋은데 .]
[야만인!]
은주가 눈을 흘깃하며 재빨리 말한다.
[구워 주세요.]
주문이 떨어지자마자 여자의 손이 재빨리 움직인다. 불이 켜지고 석쇠가 올라간다. 석쇠
위로 새우들이 쏟아져 내리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말간 새우가 퍼득거리며 숨을 거둔다
. 그러자 잠시 후 아주 구수한 새우 익는 냄새가 코 앞에 진동하며 입맛을 잔뜩 돋군다.
은주가 소주를 따랐다. 그 소주 한 잔과 함께 오늘 있었던 껄끄러운 기억들이 다 사라지
는 기분이었다. 새우는 금새 발갛게 달아오르고 익은 새우 하나를 집어 들어 조심스레 껍
질을 벗겼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우의 속살을 은주의 입에다가 넣어주었다. 무슨 괴물
을 쳐다보듯 하던 은주가 급기야는 자신의 입 속으로 들어간 새우를 냅킨에다 뱉어낸다.
[왜그래? 맛있잖아?]
[비린내가 나.]
[그럼 어떻게 해? 꽃게탕 먹을래?]
[비쌀텐데 .]
[제발 그만해! 여기까지 와서 티를 내야 해? 아줌마!!]
고추장을 푼 국물에 한껏 잘 익은 알이 꽉 찬 꽃게가 상 위에 올라오고 꽃게의 살을 젓가
락으로 하나 하나 빼먹는 이 여자를 바라보며 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놈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상처입은 천사를 내게 보내어준 하나님은 이 천사의 부러진 날개를
고쳐 줄 사명감도 함께 부여하셨으리라. 난 씩씩하게 내 앞에 놓인 새우를 모조리 먹어
치우곤 꺼억 트림을 했다.
처음엔 무뚝뚝하게 보이던 주인 여자가 다가와서 잘 곳은 정했느냐고 물어왔다. 우린 오
늘 밤 서울로 돌아갈 거라고 말하자 여자가 돌아서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렇게 안개가 끼인 밤엔 위험할텐데 . 그전 날도 서울 사람이 운전하던 차가 저수지에
미끄러졌다던데 .]
순간 우리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창 쪽으로 눈을 돌렸다.
아, 조금 전만 해도 그토록 청명하던 바다 위로 한 편의 요술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
다. 구천을 떠도는 온갖 혼령들의 춤사위같은 안개의 무리들이 빠른 속도로 바다를 뒤덮
고 있었다. 그 속도는 너무도 빨라 이미 바로 앞의 선착장까지 점령하고 있었다.
[이 가뭄에 오라는 비는 안오고 저렇게 안개만 끼이니 대체 무슨 조환지 .]
이 근처에 자신의 여동생이 운영하는 모텔이 있는데 전화해 놓을테니 자고 가라고 종용
하던 주인여자가 우리를 따라나오며 이번에는 자신의 명함까지 건네준다. 10월에 오면
그땐 싱싱한 새우로 잔뜩 준비해 놓겠다며 우리에게 손인사까지 한다.
[그래요! 꼭 올께요!]
"건강해진 이 여자와 다시 꼭 올께요 라는 말을 덧붙이지 못하고 나는 과장되이 손을 흔
들어 보였다.
다시 차에 오르기 전에 잠시 배의 정박을 위해 닻줄을 묶어 놓은 돌로 만든 버팀쇠 위에
걸터 앉았다. 담배 연기가 바다 속으로 가볍게 빨려 들어갔다. 이미 옷가지에 묻어나는
안개의 군단은 씩씩하고도 위엄 있게 이 조그마한 바닷가 마을을 모조리 점령하고 말았
다.
정박해 놓은 배들이 서로 부대끼며 을씨년스런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위론 빨래
줄처럼 늘어져 있는 백열등의 행렬이 마치 유령의 눈처럼 안개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
다. 주위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신기한 것은 엉뚱한 내 상상력이 이번에는 언젠가 친구 S가 보여준 영화 쪽으로 기우는
것이었다. 죠엘 슈마허라는 신인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로스트 보이>라는 아주 상큼한
공포 영화였는데 그 영화의 시작이 지금처럼 안개가 자욱한 바다를 벰파이어의 시선이
된 카메라가 안개 속을 헤치고 바닷가 마을로 돌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언제부턴가 그
마을의 아이들이 창백하게 변해가고 태양을 두려워하며 밤에만 활동을 한다. 아무도 그
원인을 모른 채 아이들은 하나 둘 그렇게 피를 찾아 헤맨다. 그 마을에 새로이 이사 온
한 소년이 흡혈귀의 소행이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경고하나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
. 마침내 그 아이의 형까지도 흡혈귀가 되고 그 소년은 고독한 전쟁을 시작한다. 최종적
으론 벰파이어들의 두목을 찾아서 없애야 하는데 도무지 그 두목 흡혈귀를 찾을 길이 없
다. 마침내 그 두목이 그토록 자신의 엄마를 연모하고 짝사랑하던 이웃의 착한 아저씨란
걸 알고는 요란한 특수촬영이 가득한 라스트를 맞이하는 영화였는데 지금 그 영화가 생각
나는 건 이 안개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내 뒤로 다가온 은
주의 하얀 손이 내 머리칼 속으로 가볍게 밀려들어왔다.
난 눈을 감았다. 은주의 손이 이번에는 지친 내 목덜미를 억세게 주무르고 있었다. 작지
만 정성이 가득한 때에 맞는 안마였다. 은주의 손놀림이 차츰 빨라져 갔다. 순간 예민한
내 감수성이 야수로 돌변함을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욕망으로부터 전해들었다. 이 여자
를 안고 저 풍만한 안개바다 속으로 뛰어들어가 밤이 새도록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이리 와봐. 나 급해.]
은주를 차 안으로 밀어 넣는 동시에 마구 그녀의 입술을 제치고 들어갔다.
[왜 이러는 거야? 누가보면 어쩔려구? ]
[이 안개 속에서 보긴 누가 봐 .]
[이러지 마 .]
그녀는 쉽게 흥분하고 있었다.
나의 입술을 가볍게 깨물며 한 손으론 나의 등을 바짝 끌어 당기는 듯 하다 이내 내 가슴
속으로 사슴처럼 파고들고 있었다. 그녀의 혀 밑에서 방금 먹은 꽃게 냄새가 향긋하게
묻어났다.
이미 거대해진 나의 욕망은 미친듯이 의자의 시트 벨브를 찾느라 허둥거렸다. 그때 은주
가 나를 확 밀쳐내었다.
[여관으로 가 . 불안해서 안돼겠어.]

[이걸 어쩌나 . 방이 다 찼는데 .]
전혀 닮지 않은 식당 여인의 여동생이란 여자가 안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전화해 놓겠다고 했는데 .]
[언니는 당연히 방이 비었는줄 알았겠죠 . 헌데 오늘따라 단체손님이 몰려와서 . 죄송해
요 . 읍내까지 가야겠네요.]
우린 돌아서며 왁자지껄한 여관의 분위기를 보며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은주가 테잎을 꽂고 보턴을 눌렀다. 반젤리스의 <카이로씨의 친구>란 대곡이었는데 프로
그레시브라기엔 뭣하고 약간 전위적인 형식의 음악이었다. 안개 속에서 듣는 존 앤더슨
의 가늘고 고운 목소리는 서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난 천진스런 은주가 왜 이런 요상한
음악에 몰두하는지 항상 궁금했다. 금새라도 은주가 날 휙 돌아보며 노래 속의 그 여자
처럼 비명을 지를 것만 같았다. 난 이런 회괴하고 급작스런 내 상상력의 황당함을 늘상
짜증스러워 했다. 작년에 고작 한 편 발표했던 단편집은 이러한 상상력의 급변 때문에
많은 독자들로부터 칭찬과 독설을 동시에 받곤했다. 판매량은 정말 부끄러울 정도로 최악
이었고 그나마 날 격려하던 친구 S 조차도 마치 스테판 킹의 아류작을 읽는 듯하다고 혹
평을 했다.
어느 순간 음악을 껐다. 바로 앞에서 번쩍이는 경찰 패트롤 카의 머릿통이 보였기 때문
이다. 예의 그 세갈래 길에서 사고가 난 것이 틀림 없었다. 서행으로 다가간 그 안개
속에선 비명과 흐느낌 같은 것이 새어나왔고 꽤 심각한 상황이란 걸 육감으로 금새 알 수
가 있었다.
차를 세우고 잠시 내렸다. 은주가 봐서는 안될 상황인 것 같았기에 그대로 차 안에 머무
르게 했다. 길바닥 여기저기에는 안개를 헤치고 몇 가닥의 헤드라이터가 뒤얽혀 있었고
그 불빛 사이론 퍼득이며 튀어오르는 고기들의 비늘이 간헐적으로 잡혔다. 분명 항구
쪽에서 출발한 어물수송 용달차가 전복한 게 틀림 없다고 결론짓고 있을 때 바로 앞의
논바닥에서 더 세찬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어떡해!!]
[자, 힘을 더 내!!]
소리는 거의 절박했다.
차츰 그 소리의 진원지로 다가가던 나의 입에서 거의 비명이 터져나올뻔 했다. 길 아래
논바닥으로 경운기가 뒤집혀 있었는데 그 경운기의 트레일러 아래로 사람이 깔려 있었고
T자형의 운전대에 목이 짓눌려 어깨까지 논바닥에 파묻혀 있었다. 혼이 나간 경찰들과
사람들은 안개 속에 우두커니 떨고 있는 날 발견하지 못했고 난 그들이 날 발견하고 금
새라도 도움을 청해올 것만 같아 급히 뒤돌아 섰다.
차가 있는 쪽을 향해 뛰어 갔다. 발 밑에 뒤틀리며 부딪혀오는 아나고들의 꿈틀거림만큼
이나 지금 내 행동이 부도덕하고 수치스럽지만 그러잖아도 새가슴 같은 은주가 저 광경을
보고 받을 충격을 생각할 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위하며 그렇게 차를 향해 뛰어갔
다.
[왜 그래요? 사람이 다쳤어요?]
은주가 막 차에서 내리며 내게 물었다.
난 은주를 차에 밀어넣으며 아무 일도 아니라고 다그쳤다. 후진 기어를 넣고 뒤를 돌아
다 봤다. 차를 돌리기엔 길이 너무 좁았고 후진으로 가자니 안개는 너무도 잔혹했다.
그때 헤드라이트 불빛에 비친 전방의 길이 눈에 확 들어왔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출입금
지란 푯말과 함께 통나무로 막혀져 있던 봉쇄된 길이 사고 순간 그 방어물들이 옆으로 비
껴난 게 틀림이 없는 듯 했다. 난 미련도 없이 그 어두운 입구 쪽을 향해서 차를 몰았다.
어차피 섬이란 게 한 바퀴 도는 형식의 사통팔통으로 뚤린 길의 복합체가 아닌가. 저
쪽으로 가도 백사장으로 갈 수 있을 거란 내 인생에서 가장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결단
을 내린 채 그렇게 지옥 속으로 성큼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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