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우연한 여행
고양이 여인숙
3화. 우연한 여행
그것은 논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경운기였다.
은주가 짧은 비명을 지르고 거의 동시에 핸들이 우측으로 꺾이는 소리가 요란했다. 다행
히 경운기와 나는 절묘하게 타이밍을 맞추었고 간발의 차이로 우리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
었다. 경운기를 모는 총각이 뭐라고 쌍소리를 해대는 것이 어렴풋이 백미러를 통해 보였
다.
애당초 저따위 급커브를 만들어 놓은 작자들에게 욕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질문하며
우리는 백사장이란 마을을 향해 계속 진입해 들어갔다. 정말 얼마가지 않아 길의 끝에서
조그마한 항구가 나타났다. 꽤 큰 고기잡이 배들이 정박해 있는 포구를 따라서 이빨이
빠져 치직 소리를 내는 네온 간판들로 가득 찬 횟집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손님을 기다리
고 있었다.
선착장의 한 쪽에서는 이제 막 일손을 거두는 아낙네들이 그물 속에서 퍼덕거리는 무언
가를 떼어내고 있었는데 그것은 대하라고 불리우는 왕새우였다.
은주가 신기한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광경을 바라보기에 차를 그 곁에다가 세웠다. 차
에서 내린 은주가 깡총거리며 아낙네들에게로 뛰어가서 소녀처럼 쪼그리고 앉아 그 미세
한 작업들을 경이로운 눈으로 분주히 들여다 본다. 내가 다가가서 확 밀치는 시늉을 하
자 은주가 비명을 지른다.
[만져봐.]
[싫어!]
마치 투명한 크리스탈처럼 맑고 깨끗한 갑질을 자랑하는 새우가 푸드득거리며 그물을 빠
져나오려고 뛰어오른다.
[우리 들어가서 먹자.]
상 위에 이제 움직임을 멈춘 새우가 반닥거리며 한 접시 가득 올라왔다.
[고작 여덟 마린데 이만 이천 원이라구요?]
은주가 눈을 크게 뜬다. 우리는 진열장에 살아 있는 생선이 가장 많은 횟집을 선택했고
이미 어둠이 내리는 바다지만 그래도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창가 쪽 마루를 차지하곤
새우를 흥정하고 있었다.
[지금은 제철이 아니라서 그래요. 시월에 오세요. 그떈 푸짐하게 드릴테니까 .]
약간은 뚱뚱한 주인 여자가 우리를 깔보듯이 내려다보며 말했다.
[주세요!]
[어떻게 드실래요? 생거로? 아니면 구워서?]
[자긴 어떻게 먹을래? 난 생게 좋은데 .]
[야만인!]
은주가 눈을 흘깃하며 재빨리 말한다.
[구워 주세요.]
주문이 떨어지자마자 여자의 손이 재빨리 움직인다. 불이 켜지고 석쇠가 올라간다. 석쇠
위로 새우들이 쏟아져 내리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말간 새우가 퍼득거리며 숨을 거둔다
. 그러자 잠시 후 아주 구수한 새우 익는 냄새가 코 앞에 진동하며 입맛을 잔뜩 돋군다.
은주가 소주를 따랐다. 그 소주 한 잔과 함께 오늘 있었던 껄끄러운 기억들이 다 사라지
는 기분이었다. 새우는 금새 발갛게 달아오르고 익은 새우 하나를 집어 들어 조심스레 껍
질을 벗겼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우의 속살을 은주의 입에다가 넣어주었다. 무슨 괴물
을 쳐다보듯 하던 은주가 급기야는 자신의 입 속으로 들어간 새우를 냅킨에다 뱉어낸다.
[왜그래? 맛있잖아?]
[비린내가 나.]
[그럼 어떻게 해? 꽃게탕 먹을래?]
[비쌀텐데 .]
[제발 그만해! 여기까지 와서 티를 내야 해? 아줌마!!]
고추장을 푼 국물에 한껏 잘 익은 알이 꽉 찬 꽃게가 상 위에 올라오고 꽃게의 살을 젓가
락으로 하나 하나 빼먹는 이 여자를 바라보며 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놈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상처입은 천사를 내게 보내어준 하나님은 이 천사의 부러진 날개를
고쳐 줄 사명감도 함께 부여하셨으리라. 난 씩씩하게 내 앞에 놓인 새우를 모조리 먹어
치우곤 꺼억 트림을 했다.
처음엔 무뚝뚝하게 보이던 주인 여자가 다가와서 잘 곳은 정했느냐고 물어왔다. 우린 오
늘 밤 서울로 돌아갈 거라고 말하자 여자가 돌아서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렇게 안개가 끼인 밤엔 위험할텐데 . 그전 날도 서울 사람이 운전하던 차가 저수지에
미끄러졌다던데 .]
순간 우리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창 쪽으로 눈을 돌렸다.
아, 조금 전만 해도 그토록 청명하던 바다 위로 한 편의 요술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
다. 구천을 떠도는 온갖 혼령들의 춤사위같은 안개의 무리들이 빠른 속도로 바다를 뒤덮
고 있었다. 그 속도는 너무도 빨라 이미 바로 앞의 선착장까지 점령하고 있었다.
[이 가뭄에 오라는 비는 안오고 저렇게 안개만 끼이니 대체 무슨 조환지 .]
이 근처에 자신의 여동생이 운영하는 모텔이 있는데 전화해 놓을테니 자고 가라고 종용
하던 주인여자가 우리를 따라나오며 이번에는 자신의 명함까지 건네준다. 10월에 오면
그땐 싱싱한 새우로 잔뜩 준비해 놓겠다며 우리에게 손인사까지 한다.
[그래요! 꼭 올께요!]
"건강해진 이 여자와 다시 꼭 올께요 라는 말을 덧붙이지 못하고 나는 과장되이 손을 흔
들어 보였다.
다시 차에 오르기 전에 잠시 배의 정박을 위해 닻줄을 묶어 놓은 돌로 만든 버팀쇠 위에
걸터 앉았다. 담배 연기가 바다 속으로 가볍게 빨려 들어갔다. 이미 옷가지에 묻어나는
안개의 군단은 씩씩하고도 위엄 있게 이 조그마한 바닷가 마을을 모조리 점령하고 말았
다.
정박해 놓은 배들이 서로 부대끼며 을씨년스런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위론 빨래
줄처럼 늘어져 있는 백열등의 행렬이 마치 유령의 눈처럼 안개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
다. 주위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신기한 것은 엉뚱한 내 상상력이 이번에는 언젠가 친구 S가 보여준 영화 쪽으로 기우는
것이었다. 죠엘 슈마허라는 신인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로스트 보이>라는 아주 상큼한
공포 영화였는데 그 영화의 시작이 지금처럼 안개가 자욱한 바다를 벰파이어의 시선이
된 카메라가 안개 속을 헤치고 바닷가 마을로 돌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언제부턴가 그
마을의 아이들이 창백하게 변해가고 태양을 두려워하며 밤에만 활동을 한다. 아무도 그
원인을 모른 채 아이들은 하나 둘 그렇게 피를 찾아 헤맨다. 그 마을에 새로이 이사 온
한 소년이 흡혈귀의 소행이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경고하나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
. 마침내 그 아이의 형까지도 흡혈귀가 되고 그 소년은 고독한 전쟁을 시작한다. 최종적
으론 벰파이어들의 두목을 찾아서 없애야 하는데 도무지 그 두목 흡혈귀를 찾을 길이 없
다. 마침내 그 두목이 그토록 자신의 엄마를 연모하고 짝사랑하던 이웃의 착한 아저씨란
걸 알고는 요란한 특수촬영이 가득한 라스트를 맞이하는 영화였는데 지금 그 영화가 생각
나는 건 이 안개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내 뒤로 다가온 은
주의 하얀 손이 내 머리칼 속으로 가볍게 밀려들어왔다.
난 눈을 감았다. 은주의 손이 이번에는 지친 내 목덜미를 억세게 주무르고 있었다. 작지
만 정성이 가득한 때에 맞는 안마였다. 은주의 손놀림이 차츰 빨라져 갔다. 순간 예민한
내 감수성이 야수로 돌변함을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욕망으로부터 전해들었다. 이 여자
를 안고 저 풍만한 안개바다 속으로 뛰어들어가 밤이 새도록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이리 와봐. 나 급해.]
은주를 차 안으로 밀어 넣는 동시에 마구 그녀의 입술을 제치고 들어갔다.
[왜 이러는 거야? 누가보면 어쩔려구? ]
[이 안개 속에서 보긴 누가 봐 .]
[이러지 마 .]
그녀는 쉽게 흥분하고 있었다.
나의 입술을 가볍게 깨물며 한 손으론 나의 등을 바짝 끌어 당기는 듯 하다 이내 내 가슴
속으로 사슴처럼 파고들고 있었다. 그녀의 혀 밑에서 방금 먹은 꽃게 냄새가 향긋하게
묻어났다.
이미 거대해진 나의 욕망은 미친듯이 의자의 시트 벨브를 찾느라 허둥거렸다. 그때 은주
가 나를 확 밀쳐내었다.
[여관으로 가 . 불안해서 안돼겠어.]
[이걸 어쩌나 . 방이 다 찼는데 .]
전혀 닮지 않은 식당 여인의 여동생이란 여자가 안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전화해 놓겠다고 했는데 .]
[언니는 당연히 방이 비었는줄 알았겠죠 . 헌데 오늘따라 단체손님이 몰려와서 . 죄송해
요 . 읍내까지 가야겠네요.]
우린 돌아서며 왁자지껄한 여관의 분위기를 보며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은주가 테잎을 꽂고 보턴을 눌렀다. 반젤리스의 <카이로씨의 친구>란 대곡이었는데 프로
그레시브라기엔 뭣하고 약간 전위적인 형식의 음악이었다. 안개 속에서 듣는 존 앤더슨
의 가늘고 고운 목소리는 서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난 천진스런 은주가 왜 이런 요상한
음악에 몰두하는지 항상 궁금했다. 금새라도 은주가 날 휙 돌아보며 노래 속의 그 여자
처럼 비명을 지를 것만 같았다. 난 이런 회괴하고 급작스런 내 상상력의 황당함을 늘상
짜증스러워 했다. 작년에 고작 한 편 발표했던 단편집은 이러한 상상력의 급변 때문에
많은 독자들로부터 칭찬과 독설을 동시에 받곤했다. 판매량은 정말 부끄러울 정도로 최악
이었고 그나마 날 격려하던 친구 S 조차도 마치 스테판 킹의 아류작을 읽는 듯하다고 혹
평을 했다.
어느 순간 음악을 껐다. 바로 앞에서 번쩍이는 경찰 패트롤 카의 머릿통이 보였기 때문
이다. 예의 그 세갈래 길에서 사고가 난 것이 틀림 없었다. 서행으로 다가간 그 안개
속에선 비명과 흐느낌 같은 것이 새어나왔고 꽤 심각한 상황이란 걸 육감으로 금새 알 수
가 있었다.
차를 세우고 잠시 내렸다. 은주가 봐서는 안될 상황인 것 같았기에 그대로 차 안에 머무
르게 했다. 길바닥 여기저기에는 안개를 헤치고 몇 가닥의 헤드라이터가 뒤얽혀 있었고
그 불빛 사이론 퍼득이며 튀어오르는 고기들의 비늘이 간헐적으로 잡혔다. 분명 항구
쪽에서 출발한 어물수송 용달차가 전복한 게 틀림 없다고 결론짓고 있을 때 바로 앞의
논바닥에서 더 세찬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어떡해!!]
[자, 힘을 더 내!!]
소리는 거의 절박했다.
차츰 그 소리의 진원지로 다가가던 나의 입에서 거의 비명이 터져나올뻔 했다. 길 아래
논바닥으로 경운기가 뒤집혀 있었는데 그 경운기의 트레일러 아래로 사람이 깔려 있었고
T자형의 운전대에 목이 짓눌려 어깨까지 논바닥에 파묻혀 있었다. 혼이 나간 경찰들과
사람들은 안개 속에 우두커니 떨고 있는 날 발견하지 못했고 난 그들이 날 발견하고 금
새라도 도움을 청해올 것만 같아 급히 뒤돌아 섰다.
차가 있는 쪽을 향해 뛰어 갔다. 발 밑에 뒤틀리며 부딪혀오는 아나고들의 꿈틀거림만큼
이나 지금 내 행동이 부도덕하고 수치스럽지만 그러잖아도 새가슴 같은 은주가 저 광경을
보고 받을 충격을 생각할 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위하며 그렇게 차를 향해 뛰어갔
다.
[왜 그래요? 사람이 다쳤어요?]
은주가 막 차에서 내리며 내게 물었다.
난 은주를 차에 밀어넣으며 아무 일도 아니라고 다그쳤다. 후진 기어를 넣고 뒤를 돌아
다 봤다. 차를 돌리기엔 길이 너무 좁았고 후진으로 가자니 안개는 너무도 잔혹했다.
그때 헤드라이트 불빛에 비친 전방의 길이 눈에 확 들어왔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출입금
지란 푯말과 함께 통나무로 막혀져 있던 봉쇄된 길이 사고 순간 그 방어물들이 옆으로 비
껴난 게 틀림이 없는 듯 했다. 난 미련도 없이 그 어두운 입구 쪽을 향해서 차를 몰았다.
어차피 섬이란 게 한 바퀴 도는 형식의 사통팔통으로 뚤린 길의 복합체가 아닌가. 저
쪽으로 가도 백사장으로 갈 수 있을 거란 내 인생에서 가장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결단
을 내린 채 그렇게 지옥 속으로 성큼 발을 내디뎠다.
3화. 우연한 여행
그것은 논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경운기였다.
은주가 짧은 비명을 지르고 거의 동시에 핸들이 우측으로 꺾이는 소리가 요란했다. 다행
히 경운기와 나는 절묘하게 타이밍을 맞추었고 간발의 차이로 우리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
었다. 경운기를 모는 총각이 뭐라고 쌍소리를 해대는 것이 어렴풋이 백미러를 통해 보였
다.
애당초 저따위 급커브를 만들어 놓은 작자들에게 욕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질문하며
우리는 백사장이란 마을을 향해 계속 진입해 들어갔다. 정말 얼마가지 않아 길의 끝에서
조그마한 항구가 나타났다. 꽤 큰 고기잡이 배들이 정박해 있는 포구를 따라서 이빨이
빠져 치직 소리를 내는 네온 간판들로 가득 찬 횟집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손님을 기다리
고 있었다.
선착장의 한 쪽에서는 이제 막 일손을 거두는 아낙네들이 그물 속에서 퍼덕거리는 무언
가를 떼어내고 있었는데 그것은 대하라고 불리우는 왕새우였다.
은주가 신기한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광경을 바라보기에 차를 그 곁에다가 세웠다. 차
에서 내린 은주가 깡총거리며 아낙네들에게로 뛰어가서 소녀처럼 쪼그리고 앉아 그 미세
한 작업들을 경이로운 눈으로 분주히 들여다 본다. 내가 다가가서 확 밀치는 시늉을 하
자 은주가 비명을 지른다.
[만져봐.]
[싫어!]
마치 투명한 크리스탈처럼 맑고 깨끗한 갑질을 자랑하는 새우가 푸드득거리며 그물을 빠
져나오려고 뛰어오른다.
[우리 들어가서 먹자.]
상 위에 이제 움직임을 멈춘 새우가 반닥거리며 한 접시 가득 올라왔다.
[고작 여덟 마린데 이만 이천 원이라구요?]
은주가 눈을 크게 뜬다. 우리는 진열장에 살아 있는 생선이 가장 많은 횟집을 선택했고
이미 어둠이 내리는 바다지만 그래도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창가 쪽 마루를 차지하곤
새우를 흥정하고 있었다.
[지금은 제철이 아니라서 그래요. 시월에 오세요. 그떈 푸짐하게 드릴테니까 .]
약간은 뚱뚱한 주인 여자가 우리를 깔보듯이 내려다보며 말했다.
[주세요!]
[어떻게 드실래요? 생거로? 아니면 구워서?]
[자긴 어떻게 먹을래? 난 생게 좋은데 .]
[야만인!]
은주가 눈을 흘깃하며 재빨리 말한다.
[구워 주세요.]
주문이 떨어지자마자 여자의 손이 재빨리 움직인다. 불이 켜지고 석쇠가 올라간다. 석쇠
위로 새우들이 쏟아져 내리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말간 새우가 퍼득거리며 숨을 거둔다
. 그러자 잠시 후 아주 구수한 새우 익는 냄새가 코 앞에 진동하며 입맛을 잔뜩 돋군다.
은주가 소주를 따랐다. 그 소주 한 잔과 함께 오늘 있었던 껄끄러운 기억들이 다 사라지
는 기분이었다. 새우는 금새 발갛게 달아오르고 익은 새우 하나를 집어 들어 조심스레 껍
질을 벗겼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우의 속살을 은주의 입에다가 넣어주었다. 무슨 괴물
을 쳐다보듯 하던 은주가 급기야는 자신의 입 속으로 들어간 새우를 냅킨에다 뱉어낸다.
[왜그래? 맛있잖아?]
[비린내가 나.]
[그럼 어떻게 해? 꽃게탕 먹을래?]
[비쌀텐데 .]
[제발 그만해! 여기까지 와서 티를 내야 해? 아줌마!!]
고추장을 푼 국물에 한껏 잘 익은 알이 꽉 찬 꽃게가 상 위에 올라오고 꽃게의 살을 젓가
락으로 하나 하나 빼먹는 이 여자를 바라보며 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놈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상처입은 천사를 내게 보내어준 하나님은 이 천사의 부러진 날개를
고쳐 줄 사명감도 함께 부여하셨으리라. 난 씩씩하게 내 앞에 놓인 새우를 모조리 먹어
치우곤 꺼억 트림을 했다.
처음엔 무뚝뚝하게 보이던 주인 여자가 다가와서 잘 곳은 정했느냐고 물어왔다. 우린 오
늘 밤 서울로 돌아갈 거라고 말하자 여자가 돌아서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렇게 안개가 끼인 밤엔 위험할텐데 . 그전 날도 서울 사람이 운전하던 차가 저수지에
미끄러졌다던데 .]
순간 우리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창 쪽으로 눈을 돌렸다.
아, 조금 전만 해도 그토록 청명하던 바다 위로 한 편의 요술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
다. 구천을 떠도는 온갖 혼령들의 춤사위같은 안개의 무리들이 빠른 속도로 바다를 뒤덮
고 있었다. 그 속도는 너무도 빨라 이미 바로 앞의 선착장까지 점령하고 있었다.
[이 가뭄에 오라는 비는 안오고 저렇게 안개만 끼이니 대체 무슨 조환지 .]
이 근처에 자신의 여동생이 운영하는 모텔이 있는데 전화해 놓을테니 자고 가라고 종용
하던 주인여자가 우리를 따라나오며 이번에는 자신의 명함까지 건네준다. 10월에 오면
그땐 싱싱한 새우로 잔뜩 준비해 놓겠다며 우리에게 손인사까지 한다.
[그래요! 꼭 올께요!]
"건강해진 이 여자와 다시 꼭 올께요 라는 말을 덧붙이지 못하고 나는 과장되이 손을 흔
들어 보였다.
다시 차에 오르기 전에 잠시 배의 정박을 위해 닻줄을 묶어 놓은 돌로 만든 버팀쇠 위에
걸터 앉았다. 담배 연기가 바다 속으로 가볍게 빨려 들어갔다. 이미 옷가지에 묻어나는
안개의 군단은 씩씩하고도 위엄 있게 이 조그마한 바닷가 마을을 모조리 점령하고 말았
다.
정박해 놓은 배들이 서로 부대끼며 을씨년스런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위론 빨래
줄처럼 늘어져 있는 백열등의 행렬이 마치 유령의 눈처럼 안개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
다. 주위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신기한 것은 엉뚱한 내 상상력이 이번에는 언젠가 친구 S가 보여준 영화 쪽으로 기우는
것이었다. 죠엘 슈마허라는 신인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로스트 보이>라는 아주 상큼한
공포 영화였는데 그 영화의 시작이 지금처럼 안개가 자욱한 바다를 벰파이어의 시선이
된 카메라가 안개 속을 헤치고 바닷가 마을로 돌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언제부턴가 그
마을의 아이들이 창백하게 변해가고 태양을 두려워하며 밤에만 활동을 한다. 아무도 그
원인을 모른 채 아이들은 하나 둘 그렇게 피를 찾아 헤맨다. 그 마을에 새로이 이사 온
한 소년이 흡혈귀의 소행이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경고하나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
. 마침내 그 아이의 형까지도 흡혈귀가 되고 그 소년은 고독한 전쟁을 시작한다. 최종적
으론 벰파이어들의 두목을 찾아서 없애야 하는데 도무지 그 두목 흡혈귀를 찾을 길이 없
다. 마침내 그 두목이 그토록 자신의 엄마를 연모하고 짝사랑하던 이웃의 착한 아저씨란
걸 알고는 요란한 특수촬영이 가득한 라스트를 맞이하는 영화였는데 지금 그 영화가 생각
나는 건 이 안개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내 뒤로 다가온 은
주의 하얀 손이 내 머리칼 속으로 가볍게 밀려들어왔다.
난 눈을 감았다. 은주의 손이 이번에는 지친 내 목덜미를 억세게 주무르고 있었다. 작지
만 정성이 가득한 때에 맞는 안마였다. 은주의 손놀림이 차츰 빨라져 갔다. 순간 예민한
내 감수성이 야수로 돌변함을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욕망으로부터 전해들었다. 이 여자
를 안고 저 풍만한 안개바다 속으로 뛰어들어가 밤이 새도록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이리 와봐. 나 급해.]
은주를 차 안으로 밀어 넣는 동시에 마구 그녀의 입술을 제치고 들어갔다.
[왜 이러는 거야? 누가보면 어쩔려구? ]
[이 안개 속에서 보긴 누가 봐 .]
[이러지 마 .]
그녀는 쉽게 흥분하고 있었다.
나의 입술을 가볍게 깨물며 한 손으론 나의 등을 바짝 끌어 당기는 듯 하다 이내 내 가슴
속으로 사슴처럼 파고들고 있었다. 그녀의 혀 밑에서 방금 먹은 꽃게 냄새가 향긋하게
묻어났다.
이미 거대해진 나의 욕망은 미친듯이 의자의 시트 벨브를 찾느라 허둥거렸다. 그때 은주
가 나를 확 밀쳐내었다.
[여관으로 가 . 불안해서 안돼겠어.]
[이걸 어쩌나 . 방이 다 찼는데 .]
전혀 닮지 않은 식당 여인의 여동생이란 여자가 안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전화해 놓겠다고 했는데 .]
[언니는 당연히 방이 비었는줄 알았겠죠 . 헌데 오늘따라 단체손님이 몰려와서 . 죄송해
요 . 읍내까지 가야겠네요.]
우린 돌아서며 왁자지껄한 여관의 분위기를 보며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은주가 테잎을 꽂고 보턴을 눌렀다. 반젤리스의 <카이로씨의 친구>란 대곡이었는데 프로
그레시브라기엔 뭣하고 약간 전위적인 형식의 음악이었다. 안개 속에서 듣는 존 앤더슨
의 가늘고 고운 목소리는 서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난 천진스런 은주가 왜 이런 요상한
음악에 몰두하는지 항상 궁금했다. 금새라도 은주가 날 휙 돌아보며 노래 속의 그 여자
처럼 비명을 지를 것만 같았다. 난 이런 회괴하고 급작스런 내 상상력의 황당함을 늘상
짜증스러워 했다. 작년에 고작 한 편 발표했던 단편집은 이러한 상상력의 급변 때문에
많은 독자들로부터 칭찬과 독설을 동시에 받곤했다. 판매량은 정말 부끄러울 정도로 최악
이었고 그나마 날 격려하던 친구 S 조차도 마치 스테판 킹의 아류작을 읽는 듯하다고 혹
평을 했다.
어느 순간 음악을 껐다. 바로 앞에서 번쩍이는 경찰 패트롤 카의 머릿통이 보였기 때문
이다. 예의 그 세갈래 길에서 사고가 난 것이 틀림 없었다. 서행으로 다가간 그 안개
속에선 비명과 흐느낌 같은 것이 새어나왔고 꽤 심각한 상황이란 걸 육감으로 금새 알 수
가 있었다.
차를 세우고 잠시 내렸다. 은주가 봐서는 안될 상황인 것 같았기에 그대로 차 안에 머무
르게 했다. 길바닥 여기저기에는 안개를 헤치고 몇 가닥의 헤드라이터가 뒤얽혀 있었고
그 불빛 사이론 퍼득이며 튀어오르는 고기들의 비늘이 간헐적으로 잡혔다. 분명 항구
쪽에서 출발한 어물수송 용달차가 전복한 게 틀림 없다고 결론짓고 있을 때 바로 앞의
논바닥에서 더 세찬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어떡해!!]
[자, 힘을 더 내!!]
소리는 거의 절박했다.
차츰 그 소리의 진원지로 다가가던 나의 입에서 거의 비명이 터져나올뻔 했다. 길 아래
논바닥으로 경운기가 뒤집혀 있었는데 그 경운기의 트레일러 아래로 사람이 깔려 있었고
T자형의 운전대에 목이 짓눌려 어깨까지 논바닥에 파묻혀 있었다. 혼이 나간 경찰들과
사람들은 안개 속에 우두커니 떨고 있는 날 발견하지 못했고 난 그들이 날 발견하고 금
새라도 도움을 청해올 것만 같아 급히 뒤돌아 섰다.
차가 있는 쪽을 향해 뛰어 갔다. 발 밑에 뒤틀리며 부딪혀오는 아나고들의 꿈틀거림만큼
이나 지금 내 행동이 부도덕하고 수치스럽지만 그러잖아도 새가슴 같은 은주가 저 광경을
보고 받을 충격을 생각할 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위하며 그렇게 차를 향해 뛰어갔
다.
[왜 그래요? 사람이 다쳤어요?]
은주가 막 차에서 내리며 내게 물었다.
난 은주를 차에 밀어넣으며 아무 일도 아니라고 다그쳤다. 후진 기어를 넣고 뒤를 돌아
다 봤다. 차를 돌리기엔 길이 너무 좁았고 후진으로 가자니 안개는 너무도 잔혹했다.
그때 헤드라이트 불빛에 비친 전방의 길이 눈에 확 들어왔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출입금
지란 푯말과 함께 통나무로 막혀져 있던 봉쇄된 길이 사고 순간 그 방어물들이 옆으로 비
껴난 게 틀림이 없는 듯 했다. 난 미련도 없이 그 어두운 입구 쪽을 향해서 차를 몰았다.
어차피 섬이란 게 한 바퀴 도는 형식의 사통팔통으로 뚤린 길의 복합체가 아닌가. 저
쪽으로 가도 백사장으로 갈 수 있을 거란 내 인생에서 가장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결단
을 내린 채 그렇게 지옥 속으로 성큼 발을 내디뎠다.
작가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에피소드 본문 복사가 제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