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제5장 - 의혹(疑惑) 1

조회수 6 15세 이상 이용가 등록 2026.09.20
독로무한
10화. 제5장 - 의혹(疑惑) 1


몽뇌산은 갈림길에서 만났던 백의여인 덕에 바위투성이의 산길을 가느라 고생하고 있었다.
산에서 평생을 살아 온 그에게 산 타는 것이 뭐가 대수랴마는 바위투성이의 산을 넘는 게 배를 타고 가는
것보다 힘든 건 사실이었다.
몽뇌산은 얌체처럼 냉큼 왼쪽 길로 뛰어들던 백의여인, 모용도도의 얼굴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그래도 조금은 평탄한 길에 막 접어들었을 때였다.
별안간 뒤에서 와, 하는 함성이 들려 왔다.
몽뇌산은 그 자리에 서서 의아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산적들을 소탕하려는 토벌군(討伐軍)인가?”
그러나 깊은 산중도 아닌 이런 곳에 산적이 있다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이었다.
그사이에도 함성 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멀리서 자갈 튀는 소리가 산속을 요란하게 울렸다.
삐죽삐죽 솟은 침엽수들 사이로 햇살에 부딪혀 반짝이는 병장기들의 광채가 눈을 현란케 했다.
“족히 열대여섯은 되는 것 같은데, 저만한 숫자의 무림인들이 무슨 일로……?”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뜻밖의 일에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함성은 지척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리의 선두에 서 있던 자들이 마침내 몽뇌산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때,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저자가 몽뇌산이 맞느냐?”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들먹이자 몽뇌산은 눈을 크게 떴
“예! 맞습니다, 방주님! 저놈이 바로 소질을 이렇게 만든 자이올시다.”
몽뇌산은 귀에 익은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 속으로 웬 덩치 큰 금포인 뒤에 딱 붙어 서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화복청년의 모습이 들어왔다.
몽뇌산은 피식 실소를 흘렸다.
“복수하러 왔나, 호룡? 용케 잘도 찾아왔군.”
몽뇌산은 다시 보았다는 얼굴로 호룡을 응시했다.
“그 뒤로 날 줄곧 쫓아다닌 건 아닐 테고, 어떻게 날 찾았지?”
그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호룡이 패진장주 강추룡의 등뒤로 몸을 숨기며 악을 썼다.
“네놈이 어딜 간들 패진장의 이목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여기 방주께서 직접 네놈을 혼내 주러 나오셨다!”
“패진장?”
몽뇌산은 금포인과 그 옆에 선 갈의인 뒤에 늘어서 있는 무사들을 흘끗 쳐다보았다.
과연 적의를 입고 있는 그들의 가슴팍엔 전자체로 크게 ‘패(覇)’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몽뇌산도 물론 패진장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다만 호룡이 복수한답시고 패진장주까지 끌고 나온 건 좀 의외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나타나고부터 주위에 뭔가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것도 심상치가 않았다. 일대를
휘감은 그 기운은 얼마 전 포하구 갈대밭에서 감지했던 것과 유사했다.
다만 지난번의 기운은 잘 드는 칼처럼 고도로 정제된 것이었다면 이번 것은 안개처럼 모호해서 그로서도
착각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라는 게 차이라면 차이였다.
“패진장주도 한심하군. 얼마나 할 일이 없었으면 사질의 복수를 한답시고 나 같은 무명인(無名人)을 쫓아다닐까?”
혼자말처럼 뇌까리는 몽뇌산의 말에 강추룡의 얼굴이 슬쩍 붉어졌다.
듣고 보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 게냐? 내 오늘 널 패진장으로 잡아가 본 장주를 우습게 여긴 죄를 묻겠다. 여봐라! 저놈을 잡아와라`─`!”
강추룡의 우렁찬 명령에 패진장의 무사들이 우르르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몽뇌산은 강추룡이 명을 내리기 무섭게 나무 아래로 가 언제 준비되었는지 모를 의자에 턱 하니 앉는 것을
보며 기가 찬 얼굴을 했다.
‘앉아서 구경이나 하시겠다? 날 어지간히도 우습게 본 모양이군.’
몽뇌산은 씁쓸한 얼굴을 했지만 길게 생각할 시간이 없었
그를 향해 짓쳐 오는 무사들의 모습은 일견 위맹하기 짝이 없었으나, 몽뇌산에겐 별다른 위협이 될 수 없었다.
다만 아까부터 계속 그를 신경 쓰이게 하는 기운이 그 속에서 잠깐씩 번쩍이다 다시 스러지는 게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았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자가 평범한 무리 사이에 모습을 감출 수 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몽뇌산은 일단 부딪쳐 보기로 했다.
하나씩 추려 내다 보면 암중의 적이 누군지 결국은 드러나게 될 것이다.
“방주께서 약속하신 상금은 내 것이다! 이리 와라, 내 상금`─`!”
의기 양양하게 외치며 몽뇌산에게 제일 먼저 밀어닥친 자는 턱 끝이 유난히 뾰족한 적의무사였다.
몽뇌산은 창끝으로 허공을 현란하게 찌르며 달려드는 그의 앞에 유령처럼 불쑥 다가들며 대뜸 창대를 잡아 갔다.
“어엇!”
적의무사의 입에서 터져 나온 당혹성이 채 가시기도 전에 몽뇌산은 손목을 살짝 비틀었다.
창대가 부르르 진동하며 윙, 하는 소리를 냄과 동시에 무사의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으아아`─`!”
쿵!
몽뇌산은 비명과 함께 저만치 날아가 바닥에 처박힌 적의무사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또 다른 무사의 무기를 잡아 갔다.
빠르고 정확한 움직임이었다.
삽시간에 칠팔 명의 무사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한번 처박힌 그들은 좀처럼 다시 일어날 줄을 몰랐다.
한쪽에서 느긋하게 보고 있던 강추룡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밥버러지 같은 놈들! 돌아가면 당장 모가지다, 네놈들은! 그러나저러나 제법 한가락하는 놈이었군. 네 제자 녀석이 당할 만도 하다, 홍안자야!”
강추룡의 옆에 줄곧 시립하고 있던 갈의인이 무안한 듯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제자 하나 잘못 둬서 참 많이도 씹히는구나. 사형이랍시고 걸핏하면 무시나 하고!’
홍안자는 푸념 반 분노 반으로 쓰디쓴 한숨을 삼켰다.
그의 시선이 장내를 뚫어져라 주시하고 서 있는 호룡에게로 향했다.
쓰러지는 수하들을 보면서도 별로 걱정하는 빛이 없는 강추룡과는 달리 호룡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로서는 금방 제압당할 것 같았던 몽뇌산이 팔팔하게 장내를 휩쓰는게 영 불안한 듯했다.
호룡이 애를 태우며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몽뇌산은 진중한 눈빛으로 남아 있는 무사들을 살피고 있었다.
‘이들 중에 진짜가 있을 것이다.’
몽뇌산은 제일 가까운 데 있는 무사의 도신에 선뜻 손을 내밀었다.
절금단옥(切金斷玉)하는 보검이 아닌 다음에야 십만대산에서의 수련으로 강철같이 단련된 그의 손에 상처를 낼
수 있는 무기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하얗게 날이 빛다던 도는 쉽게 손에 들어왔다.
순간 몽뇌산의 표정이 좀 묘해졌다.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
비록 적의무사들 몇이 실력이 모자라 그의 손에 무기를 잡히긴 했어도 처음의 무사를 제외하고는 그의 손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저항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너무 쉬웠다. 이건 기다렸다는 듯이 내민 도를 잡은 꼴이 아닌가?
그가 경각심을 일깨우는 찰나,
채앵`─`!
도끝에서 번개처럼 튀어나온 비수가 그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암수(暗手)였다.
“하나!”
몽뇌산은 기이한 외침을 발하며 도를 쳐 올림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비수가 아슬아슬하게 목을 비껴 갔다.
“널 제압하면 네 동료들이 하나씩 정체를 드러내겠지?”
몽뇌산은 재빠르게 내뱉으며 회전한 기세를 빌려 그대로 상대를 밀어붙였다.
그의 손이 뽀얗게 빛나면서 대기가 파도처럼 밀려 나갔다.
순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적의무사들과 별다를 게 없어 보이던 상대의 기세가 일변했다.
몽뇌산은 허물을 벗듯 적의를 벗어 던지며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지는 적의 모습에 속도를 배가시켰다.
파바바밧!
전광석화와 같이 적에게 다가든 그의 손이 막 사라지기 직전인 몽롱한 형체에 작렬했다.
퍼엉`─`!
북 치는 소리와 함께 안개가 산산이 흐트러졌다.
몽뇌산은 튕겨지듯 뒤로 물러서며 긴장된 눈으로 사위를 살폈다.
어느새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네댓 명의 패진장 무사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고 오로지 한 명의 무사만이 남아 어리둥절한 눈으로 사방을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은신해 있다가 한꺼번에 공격하겠단 수작인가? 사라진 자들은 모두 다섯! 다섯 명의 위치를 모조리 찾아 내야 한다. 그 중 하나라도 놓치면 내가 당한다.’
몽뇌산은 손을 늘어뜨리고 조용히 사방의 기척을 살폈다.
적은 한 순간에 하늘로 솟은 듯 좀처럼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그의 눈에 홀로 남아 우두커니 서 있는 적의무사의 모습이 들어왔다.
순간, 몽뇌산의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그의 몸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강추룡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종종 그의 화를 부추겼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어찌 자신이 거느리고 있던 수하들 중에 저런 은신술(隱身術)의 대가들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홍안자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봐라, 응? 저런 건 내가 듣기로
일류살수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라던데, 우리 패진장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살수들을 키우기라도 한 거냐? 응? 대답해! 네가 그랬냐?”
강추룡은 쉴새없이 홍안자를 몰아붙였다.
홍안자는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한다는 듯한 얼굴로 강추룡을 바라보았다.
‘패진장이 무슨 살수단체인가, 살수를 키우게!’
속으로는 구시렁거렸지만 대답을 안 할 수는 없었다. 있는 대로 구겨진 강추룡의 얼굴을 보건대,
대답이 안 나오면 저들의 정체를 알아보기 전에 그부터 때려 죽이고 볼
게 뻔했
홍안자는 답답한 얼굴로 볼멘소리를 했다.
“사형! 아니, 방주님! 제가 무슨 살수대부쯤 됩니까, 살수를 키우게?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어요.”
“홍안자야, 홍안자야! 네가 그러고도 패진장 사람이냐? 부리던 수하의 정체조차 모른다니, 그것도 말이라고 해?”
강추룡은 길길이 뛰며 홍안자를 볶아댔다.
‘내가 부리던 수한가?’
어쨌거나 이 시점에서 강추룡을 진정시켜야 했다.
“뭔가 석연치가 않습니다. 누가 중간에서 농간을 부린 듯합니다, 방주님! 우리가 괜히 이번 일에 나섰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러니 일단 패진장으로 돌아가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는 게……”
홍안자는 나름대로 조리있게 말한다고 했지만 강추룡은 더 흥분하기 시작했다.
“돌아가? 누구 마음대로 돌아가! 네가 방주냐? 오자고 촐싹거리며 조를 때는 언제고,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재? 가`─`!”
“예? 가라뇨? 어딜……?”
홍안자는 불만을 누르며 의아한 얼굴로 되묻다가 강추룡의 손끝을 보고는 이내 사색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끝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바로 몽뇌산이었다.
“가서 저놈을 데려와! 저놈은 뭔가 아는 얼굴이니. 네가 사부님께 배운 멸절장(滅切掌)을 얼마나 익혔는지 오늘 한번 확인해 보자!”
강추룡의 말인즉슨 말로 안 되면 무력으로라도 몽뇌산을 끌고 오란 뜻이었다.
홍안자는 염소수염이 축 늘어지도록 울상을 지었다.
그의 성취가 보잘것없다는 걸 알면서 어찌 이럴 수가 있는
게다가 상대는 패진장에서 제일 실력있다는 수하들을 족족 바닥에 메다꽂는 자였다.
그러나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한테 한 대 맞고 갈래, 그냥 갈래?”
홍안자는 눈을 염왕(閻王)처럼 부릅뜨는 강추룡을 보며 억지로 발길을 돌렸다.
강추룡 옆에 서 있느니 차라리 몽뇌산이란 자의 손에 한 대 맞고 쓰러지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굼벵이처럼 걸음을 옮기던 홍안자는 단단히 결심을 하고는 앞으로 맹렬히 달려나갔다.
“이야야압! 간다`─`!”
* * *
휘이익!
몽뇌산은 허공에서 벼락같이 몸을 뒤집으며 방향을 바꿨
그가 막 하나 남은 적의무사를 제압하려는 순간, 느닷없이 튀어나온 갈의인 때문이었다.
빨간 얼굴로 성난 멧돼지처럼 달려드는 그를 보자 몽뇌산은 다급해졌다.
자칫 그가 생각한 계획이 틀어질까 염려한 탓이었다.
몽뇌산은 사생결단을 내려는 듯 달려드는 갈의인을 향해 빠르게 일장을 내갈겼다.
반격이 있을 것을 예상해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순간, 어이없게도 갈의인은 장력에다 그대로 몸을 디밀었다.
펑, 소리와 함께 요란한 비명이 울리며 갈의인의 몸이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올랐다.
몽뇌산은 저만치 바닥에 처박혀 납작하게 뻗어 버린 그를 보며 황당한 얼굴을 했다.
어쨌거나 지금은 상황이 급했다.
몽뇌산은 곧 몸을 돌려 원래대로 적의무사를 덮쳐 갔다.
“네가 그렇게 어리숙한 척하고 있다고 해서 놈들과 한패란 걸 내가 모를 줄 아느냐?”
호통과 함께 몽뇌산의 손에서 뻗어 나온 경기가 주춤 물러서는 적의무사의 가슴을 강타했다.
바로 그때였다.
몽뇌산이 장력을 쏟아 낸 직후 사방에서 칼날같이 예리한 기운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기운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허공과 땅바닥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살기 어린 도의 움직임 때문에 몽뇌산은 금세 위기에 처했다.
‘먼젓번 그자들보다 더 대단하다!’
몽뇌산은 가슴을 갈라 오는 도를 쳐내며 몸을 옆으로 뺐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측면에서의 공격이 이어졌다.
도는 끊임없이 전신을 난자할 듯 몰아치건만 적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으니 어찌 보면 귀신의 장난 같았다.
몽뇌산은 당황한 듯 손발을 어지럽게 놀리고 있었으나 눈동자 깊은 곳엔 기이한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피를 뿌리고 쓰러질 것 같던 그가 어느 순간, 면전으로 다가온 도를 단숨에 두 토막내며
뒤로 돌아서더니 그대로 전면을 덮쳐 갔다.
“나와라`─`!”
그의 손이 허공을 움켜쥐며 끌어당기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공기가 요동을 치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장막이 열리듯 허공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혼탁한 회색빛 장화 한 짝이 주르르 끌려 나왔다.
‘응? 전에하고 다른 자들인가? 어쩐지 느낌이 비슷해 한패가 아닐까 했었는데……’
몽뇌산은 고개를 저으며 손에 공력을 배가시켰다.
옷이란 같은 집단 내에서도 지위에 따라 다르게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적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며 몽뇌산은 상대의 가슴께를 향해 남은 한 손을 흔들었다.
그의 손이 약간 파르스름한 빛을 띠는가 싶더니 이제까지와는 다른 기운이 흘러나왔다.
위험을 느꼈음일까?
상대의 손에서 도광이 충천하더니 몽뇌산의 손을 베어 왔.
사사삭!
도광을 향해 재차 손을 휘두르던 몽뇌산이 별안간 흠칫하며 뒤로 몇 발짝 물러났다.
그는 경악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적의 발을 잡아 끌어당기던 그의 손엔 뿌연 회색빛 장화만이 남아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었다. 장화는 피를 흘리지 못할 테니까.
몽뇌산은 완전히 질린 얼굴이었다.
“자신의 발을 자르다니, 지독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장화를 바닥에 떨구며 몽뇌산은 그가 멈칫한 사이를 놓치지 않고 공격해 들어오는 네 자루의 도세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그의 눈빛은 알 수 없는 섬뜩함으로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
강호의 어떤 무리가 이처럼 비정할 수 있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잡으면 알게 되겠지.’
몽뇌산은 단단히 마음먹으며 공력을 있는 대로 일으켰다.
단전으로부터 치솟은 진기가 진천독공의 운기에 따라 전신을 돌았다.
쫘악 펼쳐진 그의 양손이 순식간에 투명한 하늘빛을 머금었다.
솜털이 다 곤두설 정도로 엄청난 살기를 담은 도기가 그를 휘어 감는 순간, 손끝에 불룩하게 모였던 기운이 빨랫줄처럼 쭈욱 뻗었다.
사문의 독문무공 만청독수, 그 중에서도 제사수 독영만리(毒影萬里)였다.
콰과광`─`!
천지가 들썩거리며 자갈들이 튀어올랐다.
쿵쿵쿵!
몽뇌산은 깊은 족적을 찍으며 크게 세 걸음을 물러났다.
입 안이 비릿했다.
가슴이 쪼개질 것처럼 아픈 걸 무릅쓰며 몽뇌산은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제오수 독영파천(毒影破天)의 기수식을 취했
칙칙한 회색 장포를 걸친 적들이 모습을 드러낸 채 천천히 도를 겨누고 있었다.
흉험 무비한 상황!
일촉즉발의 긴장이 감도는 순간, 회포인들의 도약이 시작됐다.
한데 그때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강추룡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멀쩡하게 잘도 날뛰던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허공에서 녹아 내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바닥에 나뒹구는 네 자루의 도는 강추룡으로 하여금 눈앞의 사실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오늘 살신(殺神), 아니, 독신(毒神)을 만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추룡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까딱하다간 자신도 저런 꼴이 될지 몰랐다.
그걸 생각하자 진작에 납작하게 뻗어 버린 홍안자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추룡은 옆에서 비실거리며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호룡은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몽뇌산의 눈치를 살폈다.
금방이라도 독수가 날아오지 않을까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있는 그의 생각과는 달리, 몽뇌산은 오 장쯤 떨어진 곳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가 보고 있는, 나무 옆에 쓰러진 회포인은 한 쪽 발이 잘려져 있었다. 그것은 그가 좀
전에 몽뇌산에게 발목이 잡혔던 그자라는 증거였다.
한데 스스로 발목을 자르고 모습을 감췄던 그가 여기에 이렇게 죽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또 살인멸구인가? 당했군.”
몽뇌산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회포인의 미간에 박힌 가느다란 세침(細針)을 내려다보았다.
문득 그의 신형이 획 돌아섰다.
멀리서도 강추룡이 흠칫하는 게 보였지만 지금은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몽뇌산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회포인의 장화를 집어 올렸다.
그의 손이 빠르게 장화 밑창을 훑었다.
과연 그가 찾는 것이 있었다.
‘사(蛇), 특(特) 제칠호(第七號)’
몽뇌산은 패의 앞뒤에 음각(陰刻)된 글자를 보며 침음을 삼켰다.
역시 전에 보았던 영패와 같은 형식이었다.
몽뇌산은 영패를 품에 갈무리하며 이마를 접었다.
‘뭔가 나도 모르는 일이 내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다. 패진장에서 날 찾아 뒤쫓아온 것도 그렇고, 당문인들을 공격했던 자들과 같은 무리가
패진장 무사로 위장하여 날 공격한 것도 그렇다. 당문인들을 공격할 때도 그들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야월방을 이용했었다. 당문인들과
내가 같은 무리에게 공격받았다는 것은 그들과
내가 뭔가 연결고리를 가졌다는 뜻인데…… 설마 사부님께서 주신 물건을 노리고?’
그렇다면 사태는 심각했다.
그가 사부에게 물건을 받아 떠난 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적은 그에게 있는 물건을 노리고 귀신같이 찾아왔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정체는 거의 노출시키지 않았다.
몽뇌산은 다시 한 번 침음했다.
강호에 대해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은 그였지만 그만한 기동력과 정보력을 갖추는 게 쉽지 않은 일이란 건
알고 있었다.
오대세가 정도나 그럴 수 있을까?
그러나 신비세력은 오대세가 중 하나인 당문조차 우습게 알고 있지 않은가!
몽뇌산은 길을 서둘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상황을 명확히 아는 길은 하루라도 빨리 개봉의 만금장주를 만나는 것밖에 없었다.
그라면 자신이 지닌 옥합을 노리는 자들에 대해 모르지 않을 것이다.
몽뇌산은 아까부터 안절부절못하며 그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강추룡과 호룡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도 안 가고 있었습니까? 복수를 못 해서 안 가는 건가요?”
얼굴을 찌푸리는 그에게 강추룡이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가도 되겠습니까, 소협?”
“누가 붙잡는답니까? 수하들 데리고 빨리 가세요. 나도 갈 길이 바쁜 몸이니.
아, 그리고 한 가지! 오늘 여기서 본 일은 전부 잊는 겁니다. 당분간
장원을 봉문한다면 더욱 좋겠죠.”
“예? 아! 예, 알겠습니다!”
몽뇌산은 싹싹하게 대답하는 강추룡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호룡을 한 번 흘끗 보아 주고는 이내 몸을 돌렸다.
호룡의 행동이 괘씸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어차피 그가 아니어도 호룡은 돌아가서 강추룡에게 충분히 괴로움을 당할 터였다.
몽뇌산은 찌르르하게 울리는 가슴을 누르며 신형을 날렸
저 멀리 호북성의 경계가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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