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서장 - 입문(入門)

조회수 5 15세 이상 이용가 수정 2026.09.19
독로무한
1화. 서장 - 입문(入門)


“왜 여기로 왔느냐?”
서탁과 작은 철궤 하나를 제외하고는 기물(器物)이 거의 없어 썰렁함마저 느껴지는 방안에서,
찬바람이 도는 매부리코에다 눈매가 퍽이나 쌀쌀맞아 보이는 노인이 물었다.
“제일 만만할 것 같아서요.”
이제 열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당돌하게 말했다.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이 제법 듬직해 보이는 소년이었다.
노인은 그러한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몸을 움찔했다. 그는 소년을 뚫어지게 쏘아보았으나 뜻밖에도 화는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눈가엔 기이한 웃음기마저 돌고 있었다.
“어디가 그렇게도 만만하더냐?”
이번에도 소년은 거침이 없었다.
“명문정파(名門正派)에서는 출신이니 뭐니 귀찮게 따진다는데, 여긴 그렇지 않다고 들었거든요.”
“한데 왜 본 문을 택했느냐? 만만한 데라면 여기만이 아닐 텐데……
평소 독공(毒功)에 따로 관심이라도 있었느냐?”
노인의 음성엔 호기심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독공이요? 여기가 독공을 연마(硏磨)하는 곳인가요?”
당혹감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소년의 반문에 노인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오다가 정문에 천독문(天毒門)이라고 쓰인 현판도 보지 못하였느냐?”
“정문……? 정문에 그런 게 걸려 있었던가? 저는 그냥, 옆집 아저씨가 가까운 데 두고 먼데까지 갈 거
뭐 있냐면서 여길 가르쳐 주기에
찾아온 것뿐인데…… 그러니까 여기가 독공을 익히는 곳이었군요?”
이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심각하게 되묻는 소년의 음성에 노인은 잠시 기가 찬 얼굴이 되었다.
“왜, 알고 나니 마음이 바뀌느냐?”
어느새 평정을 회복한 노인의 물음에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뭐…… 원래는 이웃에 살던 조씨 아저씨네 둘째 아들처럼 칼쓰는 법이나 익혀 표사나 해볼까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독공을 배워 약방을
차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근데, 독술과 함께 의술과 약 조제법도 가르쳐 주시는 거죠? 약방을 차리려면 독술만으론 안 될 텐데……”
한쪽으로 고개를 갸웃하고 기울이는 게 딴에는 퍽 진지한 듯했다.
소년의 엉뚱하다 못해 어처구니없기까지 한 생각을 듣고도 노인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안 되지. 그럼 여기서 한 일 년간 배워 보려느냐? 본 문의 무공을
익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고통이 많이 따를 게다. 죽을 고비도 많이 넘길 테고, 어쩜 고비를 못 넘기고 그냥 죽을 수도 있겠지.”
입문하려 찾아온 자에게 하는 말치고는 퍽이나 고약한 말이었다. 그러나 소년은 노인의 괴팍한 태도에 질리지도 않는 듯했다.
“재미있겠네요. 사부를 모실 때는 구배(九拜)를 올린다는데 지금 할까요?”
노인은 자리에서 힘차게 일어나는 소년을 만류하고는 선심 쓰듯 말했다.
“지금 할 필요 없다. 일 년 후에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거든 그때 하려무나. 네가 일 년간 기초를 쌓은 다음에도 계속할 마음이 남아 있다면
본격적인 독공 수련을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할 것이다.”
“어디로요?”
다른 데로 가야 한다는 말에 소년을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해 주마. 이만 가서 쉬어라. 참! 네가 쓸 방은 오른쪽 건물의 첫 번째 방이다.”
소년이 인사를 꾸벅이고 방을 나가자 노인은 생각에 잠겼
십칠 년 만에 받아 보는 제자는 영기(營氣) 발랄(潑剌)하다거나 재지(材知)가 출중(出衆)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괜찮은 녀석이 들어와 섣부른 기대감에 젖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을지도 몰랐다.
하긴 천독문의 처지에 비추어 보아 괜찮은 제자란 게 어디 가당키나 한가!
“네가 모든 고통을 재미로 알고 견뎌 주길 바란다. 그래야 본 문의 대가 끊기지 않을 테니까. 사실 독문인(毒門人)이 되는 것은 힘든 길이지. 고생한 만큼 명예도 따르지 않는 고된 길……!”
탄식처럼 중얼거리다 말고 노인은 문득 방문을 빤히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냐?”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이 빠끔히 열렸다. 그 사이로 방금 나갔던 소년의 얼굴이 보였다.
“저기, 이름 물어 보시는 걸 잊으신 것 같아서……”
“아! 그래, 네 이름이 뭐냐?”
노인의 물음에 소년이 씨익 웃으며 또박또박 말했다.
“몽(夢), 뇌(雷), 산(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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