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제1장 - 귀로(歸路) 1

조회수 6 15세 이상 이용가 수정 2026.09.19
독로무한
2화. 제1장 - 귀로(歸路) 1


세월의 강은 흐르고 흘러서 어디까지 가는 것일까?
인생이란 산을 넘고 넘으면 거기엔 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천독문에서 새로운 사제지연(師弟之緣)이 맺어진 후로 오(五) 년(年)이 흘렀다.
* * *
절강성 운주부의 홍운산(紅雲山)에 면한 어느 인적없는 관도 위.
옷차림이 남루한 청년이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걸음걸이가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는 게, 어딘지 색다른 데가 있는 청년이었다.
아닌게아니라 어지럽게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얼굴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 꽤 심각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참을 느리게 전진하던 그는 이내 나는 듯이 걸어가며 어깨에 둘러멘 봇짐에서 뭔가를 꺼내 씹기 시작했다.
건량인가 했더니 풀이었다. 그것도 꼬들꼬들 말라 가는, 푸른 잎 한가운데에 자주색 줄이 하나 주욱 그어져 있는 게 영 께름칙하게 생긴 풀이었다.
풀을 씹어대면서도 그의 눈은 시종일관 지면(地面)을 따라가고 있었다.
바닥에 돈이라도 흘린 걸까?
아무튼 땅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청년의 모습도 이상한 광경이었지만 그의 입 속으로 쉴새없이 들어가는 풀도 결코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독 혹은 의술에 일가견(一家見)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풀을 보고 비명과 함께 뒤로 깔딱 넘어가리라.
자선절영초(紫線切靈草)!
자선절영초는 일명 단혼초(斷魂草)라고도 불리는 독초(毒草)의 일종으로, 의술이 고명(高名)한 사람이라면 오장(五臟)의 기(氣)가 허한 사람을 위해 약으로도
쓸 수 있을 것이나 대개는 극독(劇毒)을 제조하는 데 쓰이는 풀이었다.
좋은 쪽으로 쓴다면 극소량(極少量)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오장의 부기(浮氣)를 빼주고 장내의 탁기(濁氣)를 없애 주며 기의 순환을 원활하게 해줄
수 있지만, 나쁘게 사용하고자 한다면 한 포기
꺾어서 즙을 먹이는 것만으로도 서서히 정신을 혼미(昏迷)하게 하고
사고력을 잃게 하여 종국에는 사람을 백치로 만들 수도 있었다.
한데 그런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우적우적 잘도 먹어대고 있는 청년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손 안에 한 움큼 있던 것을 금세 다 먹어 치우고 난 청년이 무심결에 봇짐 안을 뒤적였다. 그러나 다시 나오는 손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순간 처음으로 그의 시선이 바닥으로부터 떨어졌다.
“더 없나?”
아쉬운 얼굴로 봇짐을 뒤지던 그의 몸이 느닷없이 앞으로 확 쏠렸다.
발끝이 저릿한 느낌과 동시에 길바닥의 작은 돌덩어리가 커다랗게 눈에 들어오는
순간, 청년은 재빨리 소매를 떨쳐 바닥을 향해 가벼이 일장을 쳐냈다.
푸르스름한 장인(掌印)이 바닥에 푸욱 찍히면서 그의 신형이 공중에서 앞으로 한 바퀴 제비를 돌았다.
흙먼지 푸석거리는 땅에 사뿐히 내려서자마자 그는 오만가지 인상을 쓰며 발끝을 부여잡았다.
한 발로 껑충거리다 말고 그는 자신이 일장을 쳐낸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흙바닥에 점점이 박혀 있는 돌덩어리 주위로 몇 포기의 이름 모를 잡초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누렇게 말라서 죽어 있었다.
물론 때가 겨울이니 시퍼런 잡초들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다만 특이하게도 장력에 스친 곳의 잡초들은 끝 부분이 남빛에 가깝게 변색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독기(毒氣)를 발출했군.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던 게 천만다행인데……?”
청년은 그제야 겨우 두 발로 땅을 딛고 서며 중얼거렸다. 그러다 말고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죽어 있는 잡초 앞으로 다가가 쪼그리고 앉았다.
하나하나 잡초들을 정성스럽게 뽑던 그의 움직임이 어느 순간 딱 멈췄다.
그의 시선은 왼쪽 길가 풀숲에 고정되어 있었다.
풀숲에 섞여 있는 풀 한 포기가 그의 눈길을 끈 것이다.
일견해서 주위의 잡초들과 별로 다를 게 없었지만 그는 손에 쥔 잡초를 봇짐 속에
밀어 넣고 나서 그 앞으로 다가갔
그는 신중하게 손을 내밀어 주위의 풀들을 한쪽으로 몰았
찬찬히 살펴보자 홀로 남은 풀잎사귀의 모습은 다른 것들과는 확연히 구별이 되었다.
누르스름한 잎사귀 끝에 작은 씨알처럼 맺혀 있는 샛노란 알맹이가 눈길을 끌었고 잎사귀 뒷면이 유달리 하얀 것도 특이했다.
게다가 잎의 아랫단은 기이하게도 흐릿한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다른 잡초들과 이리저리 뒤섞여 있을 때는 몰랐는데 따로 떼어 놓고 보니 그 생김새가 실로 범상치 않았다.
“한참 동안 안 보인다 했더니 여기 숨어 있었군. 이놈! 네 동족들의 흔적을 따라오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아냐? 목 떨어지는 줄 알았다, 이 녀석아!”
청년은 풀잎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씨익 웃었다.
사실인즉, 그가 땅바닥에 눈을 붙이고 다닌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이 풀, 황자초(黃子草)를 찾기 위함이었다.
물론 애초부터 황자초를 찾기 위해 절강성에 온 것은 아니었다.
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절강성 땅을 밟게 된 데는 어처구니없다고 할 만한 다른 사정이 있었다.
“길눈 어두운 것도 좋을 때가 있네!”
밑둥에 대고 장난하듯 가볍게 손을 그어 황자초를 베어 낸 청년이 자리에서 훌쩍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그 말 그대로였다.
원래 강소성으로 가야 하는 그가 절강성까지 오게 된 것은 순전히 그의 지리적인 감각에 문제가 있는 탓이었다.
십만대산에서 출발할 때 그는 분명 복건성을 거쳐 강소성으로 올라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경공 실력이 너무나 뛰어난 탓인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람들은 생판 다른 말을 지껄여대고 있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그 말은 심한 절강성 사투리였다.
어쨌거나 조금만 더 가면 동해바다가 보일 거라는 얘기를 뒤로하고 돌아서서 부랴부랴 길을 재촉하던 중에
뜻밖의 수확을 거뒀으니 그나마 불행중다행인 셈이었다.
“이봐! 도대체 넌 왜 절강성에 살고 있지? 사부님께서 제대로 가르쳐 주셨다면 넌 분명히 황자초일
텐데…… 황자초가 어떻게 이런 곳에서 자라냔 말이야? 네 고향은 원래 북쪽이잖아? 기후가
온화한 강남(江南)은 너한텐 치명적일 텐데…… 너도 추위 타냐?”
되지도 않는 농담 끝에 청년은 피식 웃었다.
그의 얼굴이 저만치 보이는 홍운산 봉우리와 맞닿아 있는 듯한 눈앞의 숲속으로 향했다.
“호기심을 안 풀고 가면 내가 몽뇌산이 아니지. 하기사 나 아니면 누가 너의 군집지(群集地)를 찾아 비밀을 밝혀 줄까?”
청년, 바로 십만대산에서 사 년여 동안의 수련을 마치고 사문으로 귀환하던 몽뇌산은 사부님께서 늘상 강조하시던 독문인(毒門人)으로서의 책무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근처 어디에 황자초가 무리 지어 서식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몇 놈만 특이하게 멀리 여행을 온
건지 확인해 보는 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았다.
몽뇌산은 이내 활기차게 발을 내디뎠다.
잠시 후 몽뇌산은 서서히 걷는 속도를 늦췄다.
아까처럼 황자초를 발견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존재가 그가 가고 있는 길 앞에서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비록 먼지가 좀 묻긴 했지만 최고급으로 보이는 화복을 맵시있게 차려입은 채 바위 위에 살짝 앉아 있는
귀공자와 눈동자를 쉴새없이 굴리며 귀공자를 향해 매끄럽게
혀를 놀려대는 청의대한!
몽뇌산이 보기에 눈앞의 상황이 뜻하는 것은 하나였다.
사기(詐欺)!
그리고 그것은 얼마 안 있어 강도질로 이어질 게 분명했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평지보다 산에서 더 많이 생활했으니 그가 귀공자에 대해 아는
것은 전무(全無)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산적이라면 좀 알고 있었다.
사실은 ‘좀’이 아니라 엄청나게 잘 알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묘하게도 청의대한은 그가 보아 왔던 수많은 산적들과 흡사한, 그것도 아주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봇짐 밖으로 비어져 나온 신호탄의 점화선까지도 눈에 익었다.
몽뇌산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 * *
길은 도무지 끝날 줄 모르고 앞으로 계속 뻗어 있기만 했
손을 이마에 갖다 붙이고 끝없이 이어진 길을 바라보며 장봉황은 짙은 눈썹을 한껏 찡그렸다.
아무리 천하유람에다 미인 신부감을 찾으려는 생각에 이성을 잃고 집을 나왔다지만,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말 타고 여행할 생각을 다 했을까?
‘난 마차 체질인데……’
아무래도 스물두 번째로 여인한테 차인 충격이 생각보다 심했던 것 같았다.
비록 그의 별호가 실연공자이긴 하지만, 사실 스물두 번의 실연은 좀 과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두고 보라구! 기필코 천하제일의 미녀를 아내로 맞아 돌아갈 테니……”
주먹을 불끈 쥐던 장봉황은 그러나 굳은 결심도 잠시, 등줄기가 뻐근해져 오자
그만 짜증이 났다. 그렇다고 말에서 내려 고삐를 쥔 채 걸어가자니 영 모양새가 안 좋을 것 같았다.
그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다행히 관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장봉황은 조심스럽게 말 등에서 내려섰다.
말을 나무에 매어 놓고 바위 위에 수건 한 장을 곱게 깐 뒤, 엉덩이를 기품있게
착 걸치고 앉으니 허리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팔십 먹은 노인네처럼 허리를 돌리며 죽는시늉을 하던 장봉황은 저만치에서 커다란
봇짐을 둘러맨 삼십대 청의대한 하나가 잰 걸음으로 다가오자 얼른 자세를 바로했다.
“자! 여기서 좀 쉬어 갈까?”
턱에 수염이 듬성듬성 나고 얼굴에 비해 눈이 좀 작은 청의대한은 그가 앉아 있는 바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짐을 내렸다.
길가 풀숲에 아무렇게나 주저앉는 그를 보고 장봉황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곧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청의대한은 허리춤에서 술병을 끌러 한 모금 쭈욱 들이켰다. 목을 뒤로 젖히며 뿌연
탁주를 달게 들이키는 그에게선 시원스레 목젖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장봉황은 고개를 슬쩍 돌려 그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목이 말랐다.
장봉황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청의대한이 술을 마시다 말고 턱을 내리고는 작은 눈으로 그를 건너다보았다.
“공자! 한잔하시겠소? 보아하니 귀한 집 공자이신 듯한데 이런 탁주가 입에 맞을는지……
뭐, 상관없다면 한잔하시구려.”
청의대한은 털털하니 인심 좋게 권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장봉황 쪽으로 다가와 술병을 디밀었다.
장봉황은 살짝 얼굴을 붉혔지만 눈앞에 내밀어진 술병을 거절하진 않았다.
‘항주에 있는 지우(之友)들이 이런 싸구려 술을 마시는 자신을 본다면 기겁을 하겠지’ 하는 생각에
잠시 우울해졌지만 그는 억지로 그런 생각을 털어 버렸다.
‘이미 집을 떠나올 때, 미인을 아내로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고생을 감수하기로 한 내가 아닌가!’
장봉황은 조금씩 술을 넘겼다.
술은 혓바닥이 화끈거릴 정도로 쓰고 독했지만 그럭저럭 마실 만했다.
“음! 잘 마셨습니다.”
장봉황이 앉은 바위 옆 길가에 털썩 주저앉은 대한이 술병을 받아 한 모금 길게 마시고 나서 물었다.
“카아`─ 좋다! 한데 유람 나오셨소?”
“그렇습니다. 한데 길이 끝이 없으니, 혹시 얼마나 더 가야 마을이 나올는지 아십니까?”
“글쎄, 족히 몇십 리는 더 가야 마을이 있지, 아마!”
장봉황은 말을 쳐다보며 긴 한숨을 쉬었다.
대한이 그런 그의 모습을 슬쩍 쳐다보았다.
“너무 멀다 싶으면, 몇 리 더 가서 갈림길을 지난 후에 산으로 접어드는 길이 하나 있는데 그 길로 가보시구려.”
“산이요?”
“그렇소이다. 그 산속에는 유명한 주루가 하나 있다고 합디다. 신선이 내려와 담근 술을
판다고도 하고 선녀같이 예쁜 여인들이 그 주루를 운영한다고도 하고…… 길을 계속 가기가 뭐하면 지나가는 길에
그곳에 들러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한데…… 뭐, 공자 하고
싶은 대로 하시구려. 아! 그곳에 가려면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가야 하오. 왼편, 꼭 왼편이오.”
장봉황은 대한의 친절한 권유에 잠시 갈등했다.
그러나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친절히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장봉황은 고개를 기품있게 숙여 보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전히 제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대한에게 눈웃음을 보내며 장봉황은 몸을 돌렸다.
돌리긴 돌렸는데 몸이 앞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채 일 장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웬 남루한 몰골의 사내 하나가 자신을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건 바로 호기심이었다.
나이는 어림잡아도 이십대 중반 이상은 아닌 것 같았는데 뒤에서 하나로 동여맨 머리카락이 얼굴에 이리저리 흘러내려 그것도 정확하지는 않았다.
옷차림은 남루했지만 키가 훤칠하니 체구가 탄탄해 보였고,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흘낏 내다보이는 이목구비(耳目口鼻)도, 매끈하니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으나 제법 또렷해 보였다.
그러나 장봉황의 관심을 끈 것은 입꼬리를 장난스럽게 치켜 올리고 있는 사내의 야릇한 표정이었다.
장봉황은 보일 듯 말 듯 인상을 썼다.
장시간의 여행을 한 듯 온통 먼지투성이인 그 사내는 장봉황의 얼굴을 한동안
빤히 바라보더니 이번에는 청의대한을 뚫어지게 내려다보았다.
장봉황이 걸음을 멈추자 고개를 들던 청의대한은 눈앞에 이상한 사내 하나가 서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자 눈빛을 아연 긴장시켰다.
장봉황이 눈살을 찌푸리며 뭐라고 입을 열려는 찰나, 사내는 고개를 휙 돌리더니 휘적휘적 그들을 지나쳐 앞으로 걸어가 버렸다.
먼지투성이의 사내가 사라지고 나자 청의대한의 눈에 두드러지게 안도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공자! 출발 안 하시려오?”
“예? 아, 가야지요.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군. 꼭 산적같이 생겨 가지고……”
눈으로 줄곧 사내의 뒤를 쫓던 장봉황이 투덜거리면서 천천히 말을 매어 둔 곳으로 다가갔다.
“켁! 커억, 쿨럭쿨럭`─`!”
청의대한의 입에서 발작적인 기침이 터져 나왔다.
“아니, 사레 들리셨습니까? 본래 술은 천천히 마셔야 하는 법인데…… 조심해서
드십시오. 좋은 곳을 가르쳐 주신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럼, 소생은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장봉황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가슴을 두드리면서도 연신 손을 흔들어 보이는 대한에게 가볍게
목례(目禮)를 보내며 멋들어지게 말을 출발시켰다.
그의 모습이 한 점으로 화하자, 대한은 술병을 내던지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줄줄이 쏟아지는 욕설과 함께 그의 작은 눈동자가 교활한 빛을 뿌리며 떼구루루 굴렀다.
“이제 신호를 보내야지. 그러나저러나 저놈의 허여멀건 애송이 때문에 하마터면 사레 들려 죽는 줄 알았네. 그 거지 같은 자식은 왜 하필 그때 길을 지나고 지랄이야. 염병할! 하마터면 다된 밥에 초 칠 뻔했잖아.”
거칠게 입을 놀리던 대한은 땅에 내려놓은 커다란 봇짐 속에서 신호탄(信號彈)을 꺼냈다.
잠시 후 찬란한 겨울 햇살 속에서 푸른 불빛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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