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고양이 여인숙

조회수 14 15세 이상 이용가 등록 2026.08.19
고양이 여인숙

4화. 고양이 여인숙


길은 생각보다 험했다. 차의 배부분이 닿는 소리가 요란했다. 사람들은 흔히 르망이 나쁘
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이런 비포장 도로가 증명해 준다. 울퉁불퉁 곡선
을 그리며 차는 안개 속을 전진해 갔고 길에서 나는 흙먼지인지 아니면 안개의 또 다른 무
리인지 헤드라이터 불빛에 비친 전방은 점점 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해
갔다.
죤 카펜터스 감독의 <안개>란 영화에서처럼 정말 지금의 안개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 같
았다. 머리를 산발한 채 휘날리는 하얀 안개의 무리는 가끔씩 휘익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
곁을 지나가기도 했고 아니면 더 짙은 적막을 드리운 채 조용히 우리를 감싸안기도 했다
.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불안해져 갔다. 근 3시간을 이 비포장도로 위를 달렸건만 동네
라곤 흔적도 드러내지 않는다. 안개는 이젠 윈도우 와이퍼로 닦아내어야 할 정도의 아예
안개비에 가깝게 차에 질척거리며 달라붙었고 냉방기가 가동되지 않는 차의 내부에 갖
힌 우리 두 사람의 온몸은 차라리 땀으로 목욕을 할 지경이었다.
숨이 턱하니 막혀왔다. 어느새 차츰 은주도 두려워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 바보가
아니라면 지금쯤은 그녀도 눈치를 챈 게 분명했다. 우리는 두 시간 전부터 같은 길을
헤매고 있다는 것을 .
비록 안개에 의해 주변이 가리워져 있다손 치더라도 꼭 이쯤되면 주기적으로 눈에 들어
오는 특이한 형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황당 나무같은 것이었는데 이미 추종자
들이 등을 돌렸는지 한때 위엄을 자랑하던 나무는 앙상하게 가지만 드러낸 채 빨간 천
몇 가닥 만이 바람에 펄럭이며 음산하게 나부끼고 있었다.
같은 길을 돌고 있다는 걸 눈치챈 건 비단 이 나무때문만은 아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바
닥에 부딪혀오는 둔중한 길의 굴곡들과 그놈의 성황당 중간에 설치되어 있는 확성기에서
나는 소리들이 분명히 우리가 뫼비우스의 미로로 빠져든 게 틀림이 없음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 확성기 곁을 지나칠 때마다 이상한 소리같은 게 들렸다. 그 소리는 너무도 소름끼치
는 카랑카랑한 노인의 목소리였는데 이 오밤중에 무슨 소식을 알리려는지 접속이 불량한
스피커선을 타고 잡음과 뒤섞인 채 드문드문 어둠 속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주민 여러분 그건 사실이 하 일동
그 교란된 언어의 분절들을 쫒아가던 나는 차의 창문을 꼭꼭 올렸다. 그리고 은주가 좋아
하는 반젤리스의 곡을 최대로 틀었지만 오히려 노인의 목소리는 반젤리스의 음산한 리듬
과 화음에 맞추어 더 모골이 송연하게 차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무슨 말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은 입 속에 갇혀 웅웅 돌 뿐 더 적막한 침묵만이
우리를 괴롭혔다.
[우린 지금 길을 잃었어.]
그 무겁고 장구한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은주 쪽이었다.
[이까짓 작은 섬에서 무슨 잃을 길이 있다고 그러는 거야?]
대충 얼버무리는 나의 대답에 은주는 더 차가운 물을 끼얹었다.
[기름이 다 떨어져 가잖아.]
제기럴 . 그걸 꼭 말해야 하나. 기름은 이미 경고등이 켜진지 오래고 힘을 잃어가는 엔
진의 마지막 호흡이 거칠게 들려왔다. 난감했다. 기름이 완전히 바닥나기 전에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밤을 세울 것인가, 아니면 계속 이 힘든 행진을 강행하다가 기름이
떨어진 차 속에서 구조를 기다릴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했다. 후자보다는 전자를 택하기
로 하고 내가 막 차를 멈추려고 할 때였다.
[저길 봐.]
은주가 나즈막히 속삭였다. 은주가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안개 사이로 노란 불
빛 몇 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난 저속에 놓여져 있던 기어를 드라이브로 변환하고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 빛들은
성황당 나무를 거진 스무번째 스쳐 지나갈 때 아주 우연찮게 발견한 것으로 성황당의 뒷
쪽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정말 성황당으로 차를 바짝 갖다대자 나무의 뒷쪽으로 겨우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다란 길이 나있는 게 아닌가. 비포장도로였지만
꽤 잘 닦여져 있었고 그 길을 따라 얼마 가지 않아 불빛들의 형체는 점점 더 또렷히 읽을
수가 있었다. 불빛들은 마을 초입구부터 늘어서 있는 식당들에게서 삐쳐나오고 있었는데
아마도 이 마을은 섬의 또 다른 귀퉁이에 위치한 항구마을이리라고 짐작하며 천천히 차를
몰고 마을로 들어섰다.
정말 마을의 횟집들이 저 길끝의 항구까지 줄을 지어 서있었고 새벽 두 시를 알리는 시각
에도 불구하고 식당 앞엔 사람들이 드문드문 나와 앉아 있었다. 식당의 푸른 빛을 받아
마치 유령같은 마을 사람들이 +-+형의 의자에 앉아 이 낯선 이방인들을 처음 본다는 식의
다소 황량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내가 모는 차는 마치 54프레임으로 돌려지는 활
동사진처럼 아주 느리게 마을 사람들 사이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때 난 나를 녹일 듯이 노려보는 뜨거운 시선 하나를 발견하곤 섬뜩해했다. 음산하게 생
긴 한 남자가 식당 앞 이끼가 파랗게 낀 수족관에 손을 넣고 시커먼 상어새끼를 잡으려고
바둥거리고 있었고 상어란 놈은 남자의 손가락을 뚝뚝 잘라먹으며 이리저리 피해다니고
있었다. 남자의 손에서 나온 피들이 수족관의 기포 방울과 함께 어우러져 펑펑 쏟구치
고 있었다. 아마도 난 지금 너무나 피곤해서 헛 것을 보고있는 게 틀림 없다라고 얼버무
리며 막 고개를 돌리려 할 때였다. 그 끔찍한 남자의 곁으로 까만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한 소녀가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너무도 강렬해서 십 대의 소녀가 뿜어내
는 그것 치곤 뇌쇄적인 마력으로 날 가두고 있었다.
내 차가 그 소녀의 앞을 지날 때에 소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순간 슬
픈 표정으로 변하던 소녀가 무어라고 말을 하려는 듯이 입술을 움직였다.
[저기 여인숙이 보이네요.]
은주가 나의 시선을 다시 전방으로 향하게 했다. 항구 쪽의 여인숙은 이름도 없는 그냥
여인숙이라고 적힌 간판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우린 우선 이 지겨운 안개에서 탈출
하는 게 급선무였기에 급히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다행히 여인숙 안은 안개도 없었고 무척 깔끔했다. 반들하게 닳아빠진 세멘트 바닥이 안
개의 습기를 받아 물기로 촉촉히 젖어 있었고 대청마루 위에 달려있는 형광등의 불빛은
여인숙을 더욱 고즈넉한 분위기로 만들고 있었다. 여인숙은 한국의 통속적인 사각형 구
조를 띄고 있었는데 마당의 중앙엔 작은 정원이 꾸며져 있었다. 정원엔 온갖 이름 모를
야생 꽃들이 버팀목을 중심으로 치렁치렁 타 올라 가고 있었고 수돗가의 물 흐르는 소리가
모든 긴장을 다 풀어주는 듯했다.
[그나마 이 방이 시원할 거구먼 .]
잠에서 깨어난 늙은 주인여자는 수돗가 옆의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수돗물이 시원하
게 틀어져 있고 그 아래 고무 바켓츠엔 수박이며 참외, 캔 맥주들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
[아따, 아저씨들. 그만 좀 하고 주무셔. 참말로 시끄러워 잠을 못자겠네.]
돌아서던 주인 여자가 우리 방의 맞은 편 방을 향해 소리쳤다. 여인숙을 들어설 때부터
나던 소음의 주인공들인듯한 40대의 남자들이 고스톱 판을 벌여놓고 있었다. 그만 치자
라는 말로 봐선 일찍부터 여인숙에 투숙한 모양인데 반바지와 런닝 차림의 남자들이 기분
나쁜 눈으로 힐끗거리며 우리를 훔쳐보곤 했다.
두 개의 방문이 나란히 위치한 좁은 방 안으로 들어가자 마자 우리 두 사람은 털썩 드러
눕고 말았다.
[힘들었지?]
마치 전투에서 살아남은 패잔병처럼 내가 물었다.
[건석씨가 힘들었지, 제가 한일이라도 있나요 .]
[샤워부터 해.]
일제히 긴장이 풀리자 우선 온 몸에 배인 땀의 찌꺼기를 해결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키고 서있을테니까 가자구.]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불현듯 은주의 슬픈 목소리가 날 잠시 주춤하게 했다.
[건석씨, 날 언제까지 지켜줄 거야?]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야?]
[내 삶에 지금보다 더한 안개가 밀려와도 내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
[바보같은 소리. 우리의 인생에서 더 이상 안개란 없어. 빨리 일어나 샤워하러 가자구.]
내가 지친 은주의 팔을 잡고 일으키자 은주가 일어나면서 갑자기 날 벽으로 몰아 세웠다.
두 개의 문이 다 열려 있었고 그 문 사이의 좁다란 벽에 날 밀치고 마구 입술을 찾는다
.
은주의 갑작스런 행동에 비해 난 오히려 밖의 남자들에게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들의 키득거리는 음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여인숙의 모서리에 화장실과 같이 위치한 제법 큼지막한 공동 샤워장 안으로 은주를 먼저
들여보냈다. 그리고 난 화장실 변기 위에다 몇 시간 동안 고인 방광의 이물질들을 쏟아
내며 은주가 물을 끼어 얹는 소리를 조용히 음미했다.
샤워를 마친 은주가 청아한 비누냄새를 풍기며 물기에 젖은 머리칼을 수건으로 비비며 나
왔다. 바톤을 이어받은 내가 샤워장으로 뛰어 들어가서 허겁지겁 옷을 벗어 던진다. 얼음
처럼 차가운 물줄기가 골수까지 파고드는 듯 했다.
방에 들어왔을 땐 은주는 이불 위에 곧게 누워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이미 잠이 들어 있
었다. 난감했다. 앞 방의 남자들이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이 서로 수근거리며 우리 쪽을
훔쳐보고 있는데 방문을 잠그자니 웬지 거북했고 그렇다고 보란 듯이 열어 놓을 수는 없
는 일이 아닌가.
하는 수 없이 문 하나를 잠그고 나머지 하나를 반쯤 열어놓은 채 은주 곁에 누웠다. 방은
작고 좁아 후덥지근한 열기가 선풍기 바람에 스물거리며 가득 고여 있었다. 은주는 어느
새 새근거리며 가느다란 숨소리를 내 목에 뿜어댔다.
피곤이 홍수처럼 몰려왔다. 잠이 들듯할 때마다 결정적으로 날 깨우는 소리들이 있었다
. 쌌다!! 씨팔!! 건너 방의 남자들이 지저분한 상상력에 도취되어 쌍소리와 함께 낄낄
거리며 화투장을 던지는 소음들이 바로 곁에서 들리는 듯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불
쾌한 소음들은 내 신경을 극도로 자극했고 마침내 난 뭐라고 한 마디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막상 밖으로 나오니 그들의 저속한 여흥을 깨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는 일이었다.
내가 대청 마루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빡빡 피워대며 아주 떫은 감씹은 표정을 하고
있을 때 그들 중 그나마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가 불편한 내 심기를 눈치챘는지 동료들
에게 말한다.
[이제 그만하자, 딴 사람들도 생각을 해야지!]
[아, 한 판만 더하구요!! 이런 델 자러왔나? 놀려구 왔지!! 에이, 씨;^ 더럽게 안 풀리
네!!]
인상이 고약한 사내 놈이 대꾸한다.
그 나이든 남자가 날 다시 힐끗 쳐다보며 말한다.
[거 형씨, 더운데 수돗가에 담가 논 맥주라도 좀 마시구려.]
정말 그 남자의 말 한 마디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난 기다렸다는 듯이 수돗가로 성큼 뛰어
내려갔다.
[그럴까요?]
캔 맥주 하나를 차가운 물 속에서 건져내어 꿀꺽꿀꺽 마시곤 주책스레 금새 얼굴에 생기
를 되찾는 날보고 그들 중 꽤 젊은 남자가 말한다.
[참외도 먹으슈.]
[됐습니다. 맥주나 하나 더 마시겠습니다.]
[안개가 좀 걷히던 가요? 바다 낚시 왔다가 이게 무슨 꼴이람.]
[아마도 오래 갈 것 같던데요. 근데 이 동네 이름이 뭐죠?]
[알 게 뭡니까? 우릴 내려준 버스 기사 말로는 백사장이라는데, 이 년 전에 왔던 백사장
과는 영 딴판이니 .]
순간 난 먹던 맥주가 목구멍에 턱하고 걸리는 느낌을 받았다. 입술을 닦으며 그들에게 말
한다.
[백사장은 아닐 겁니다. 저희들이 백사장에서 오는 길인 걸요.]
그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
[그럼 어떻게 된 거야? 그 기사양반이 잠시 맛이 갔나보군.]
[백사장이란 마을이 두 갠가 보지, 뭐.]
[에이, 씨;^ 그러길래 내가 동해안으로 가자니까, 여기 무슨 고기가 있다구.]
이런저런 말들이 오가는 사이에 단숨에 들이킨 캔 맥주 두 개는 내게 치명적이었다. 확
몰려오는 치기와 함께 어찔한 기분이 들었다. 곤히 자는 은주에게 방해가 될새라 나는
잠시 은주가 자고 있는 옆 방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 넓은 여인숙들의 방은 두 개만 제외하곤 텅 비어 있었고 그냥 선택만 하면 모두가 내
방인양 난 텅 빈 방에 큰 대자로 털썩 드러누웠다. 눈을 감아도 천정이 빙빙 돌며 내게
로 내려오는 것 같았다.
맥주는 효과가 있었다. 금새 잠이 몰려왔다. 그들의 고스톱 판이 제발 멈추길 빌며 난
아련히 아래로 가라 앉는다.
얼마나 잤을까? 지금부터의 모든 기억들은 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아직도 현실
의 상태에서 일어났는지, 아니면 정말 꿈을 꾸는 상태에서 내 혼이 빠져나가 전이적인 시
선에서 사건들을 바라보았는진 확실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히 뼈마디 하나 하나에
부딪혀오던 그 살을 파고드는 그날 새벽의 공포의 무게 만큼은 난 한순간도 잊을 수가 없
다.
문득 이상한 감촉에 눈을 떴다. 주위는 너무도 고요했다. 정말 그 지겹던 고스톱 판도 끝
이났는지 그야말로 주변은 너무도 고요한 적막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분명히 나의 발 쪽
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